복싱 밴텀급에서 은메달을 딴 한순철이 13일 밤(한국시각) 카타르 도하 아스파이어 복싱경기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밝은 표정으로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도하/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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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은’ 한순철 “금 약속 못지켜 죄송”
복서의 오른쪽 눈 밑은 점점 시퍼런 멍이 들어갔다. 상대는 가드를 내리고 툭툭 치며 점수를 쌓아갔다. 금메달이 조금씩 멀어져 가는 복서는 마음이 아프다. 한순철(22).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아버지는 동네분들에게 아들 자랑을 하며 술도 꽤 샀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는 3개월 뒤 자신이 몰던 레미콘 트럭을 정비하다 돌아가던 모터에 옷이 끼면서 목이 눌려 세상을 떠났다. “체육관에서 훈련하는데 학교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닌 줄 알았는데…. 병원에 가니 정말 돌아가셨더라고요.” 속초에 살던 어머니는 원주로 가 조그만 매운탕 가게를 열었다. 그는 두살 아래 동생과 속초에서 지내며 일주일에 한번씩 어머니를 만났다. “오실 때마다 용돈을 주고 가셨죠. 그런데 그 가게도 터가 안 좋은지 1년 반 정도 하다가 그만두셨어요.” 수입이 끊긴 뒤 생활을 어떻게 했냐고 묻자, “빚을 많이 졌죠”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서울시청에 입단했다. 가족의 생계를 이젠 자신이 책임져야 했으니까. “첫 월급을 타고 어머니 내복을 사드렸죠.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는 이제 어머니께 100만원 남짓의 생활비를 보내드린다. 남은 돈은 통장에 저축을 하고 있다. 아들은 도하에서 아버지의 기일(9일)을 맞았다. “기도를 드렸어요. 금메달을 딸 수 있게 하늘에서 도와달라고….” 13일 열린 남자복싱 밴텀급(54㎏) 결승전. 필리핀의 요앙 티폰은 상당히 빨랐다. 한순철은 지난해 8월 아시아선수권 준결승에서 바로 이 티폰에게 져 3위에 그쳤다. “한번 이겨보고 싶었는데….” 2분씩 4라운드를 마치고 나니 10-21. 그래도 한순철은 마지막 종이 울릴 때까지 쉴새없이 상대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오른쪽 눈 밑이 아프지 않냐”고 했더니, “첫날 경기에서는 왼쪽 눈이 퉁퉁 부었었는데요. 뭘” 하며 웃는다. “아버지 산소에 찾아뵙고 메달을 드려야죠. 금메달을 올리고 싶었는데. 어머니께도 약속을 하고 왔는데, 죄송하네요.” 그는 복싱이 좋다고 했다. 링에서 반드시 한대는 맞아야 하는 경기이지만, 시상대에 오를 때 그 쾌감을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얘기했다.“중학교 때 복싱부가 4교시 끝나면 운동하러 가길래 저도 복싱을 시작했는데, 이젠 복싱이 정말 좋아요. 많이 관심을 가져주면 더 신날텐데.” 그러면서 웃음을 짓는데, 순간 웃음 주름 사이로 멍이 살짝 숨어버렸다. 도하/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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