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8.23 20:03
수정 : 2010.08.2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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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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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그것은 인간이 본래 거짓말을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꼭 나쁜 의도로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란 역설로 충만한 곳이기에 살다보면 선의의, 무해한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문제는 질이 나쁜 거짓말이다.
거짓말에 관련해서, 한 철학도의 기억할 만한 이야기가 있다. 간 스에하루(菅季治)라는 이 일본인 청년은 태평양전쟁 중에 하급사관으로 복무했고, 패전과 함께 소련에 억류되어 포로수용소에서 지냈다. 그와 함께 억류되었던 많은 일본인들이 전쟁 종결 후 여러 해가 지나서야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들의 귀환이 지연된 것은 당시 일본공산당 지도자가 소련 당국에 보낸 비밀편지에서 “공산주의자로 전향을 하지 않은 포로들은 일본으로 보내지 말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냉전시대가 개시되면서 다시 우익세력이 준동하기 시작하던 일본에서 이 소문은 곧 격렬한 정치적 쟁점이 되었고, 1950년 3월 국회에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때 스에하루는 집중적인 심문 대상이 되었다. 소문의 근거는 시베리아의 한 수용소에서 있었던 소련인 장교의 연설이었음이 드러났고, 그때 그가 통역을 맡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다만 소련 장교의 연설을 통역했을 뿐이라며, 그 말을 그대로 인용했다. “언제 여러분이 돌아갈 것인가는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일본공산당 서기장은 여러분이 반동분자가 아니라 잘 준비된 민주주의자로서 귀국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우익계 국회의원들은 이 증언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증인이 ‘요청했다’라는 러시아말을 ‘기대했다’라는 말로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집요하게 따졌다. 동시에 전국에서 협박편지가 날아들었다. 견디다 못한 그는 철로에 뛰어내려 투신자살을 했다. 32세의 이 철학도 주머니에는 문고본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들어 있었다.
스에하루는 공산주의자도, 공산당 동조자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공산당에 엄중한 항의를 했다. 그런 청년이 다만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자신의 양심 때문에 죽음을 택한 것이다. 시대의 광기는 순결한 젊은 영혼을 희생시켰다.
살기 위해서라고 하면 웬만한 거짓말은 다 용인되는 생활에 길들여진 지금 우리들의 감각으로는 이 청년의 이야기는 좀 극단적으로 들릴 것이다. 아마 우리 같으면 자신의 기억의 불확실함을 구실로 심문자들의 요구에 적당히 응하면서 편안해지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상황이 있다.
지난 4월 명동성당에서 4대강 문제 토론회가 있었다. 그때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는 4대강 사업이 대운하 공사의 위장임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청중 속에 있던 국토해양부 소속 고위공무원은 대운하와 무관한 사업을 왜 자꾸 그렇게 말하느냐고 항의했다. 김정욱 교수의 답변은 간명했다. “당신의 양심에 물어보라.”
사실, 전제(專制)는 국가권력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권력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의 거짓말에도 절도가 있어야 문명국가가 가능하다. 그리고 국가가 행하는 거짓말의 질은 궁극적으로는 통치자, 참모, 관료 개개인의 인간됨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공무원도 결국은 개인이지, 언제까지나 국가라는 괴물에 복속된 기계가 아니다. 누구보다 진실을 잘 알면서도, 마구잡이로 진행되는 이 거대한 국가적 프로젝트가 가져올 엄청난 재앙을 외면하고,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는 공무원, 정치가, 언론인, 학자들도 그들이 인간인 이상, 언젠가는 거짓말을 못해서 자살한 저 청년 철학도의 죽음을 이해할 정신적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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