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독자칼럼] 강은 결국 그대로 흘러갈 것이다 / 정미경 |
지난 9월에 개봉한 <마루 밑 아리에티>를 보았다. 이를 제작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전 여러 애니메이션 영화와 마찬가지로 영화적 감동과 재미를 준다. 자연과 환경 그리고 여성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미야자키 감독의 전작들을 보면 과학기술의 발달과 인간의 탐욕, 전쟁 등으로 일어나는 환경파괴로 고통받는 생명들이 등장한다. 또 여성성을 발휘하여 그들을 구원하는 역의 주인공 여성이 나온다. 에코페미니즘에서는 자연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영성을 지니고 상생과 배려, 사랑의 마음을 발휘하여 자연과 공생하고 동반자적 관계에 기반한 공동체를 구현하는 실천원리를 여성성이라 하였다.
이 영화에서도 그러한 여성성의 발현 주체로 용감하고 지혜로운 아리에티라는 소인이 등장한다. 아리에티는 가족 내에서 재생산 활동을 전담하는 어머니를 도와주기도 하지만 필요한 것을 빌리는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기 위해 준비한다. 여성성을 발휘하여 어려움을 극복하고 때론 매우 위협적인 존재일 수 있는 인간과 교류하기도 하며 자신의 삶터를 지켜나간다.
에코페미니즘은 자연과 여성의 연관성(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원리와 양상이 같다)과 자연과 여성의 동일시, 자연과 인간의 동반자적인 관계를 강조한다. 에코페미니즘에서 언급하는 여성적 존재들은 여성뿐만 아니라 빈민층, 소외계층, 어린이 등의 사회적 약자들이다. 개발과 과학기술로 인해 오염된 환경은 생태계의 생명체들뿐만 아니라 여성적 존재들에게 더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기 마련이다. 영화에서도 인간의 위협으로 큰 피해를 본 이는 재생산 활동을 주로 했던 약한 아리에티의 어머니였다.
아리에티는 인간인 쇼우로부터 ‘너희 종족은 곧 멸망할 것’이라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듣고 현실에 직면한다. 그녀는 자신들은 생존할 것이고 열심히 살고자 한다고 항변한다. 소인들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들만 인간들에게 빌려 쓰고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저 마루 밑에서 더불어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과 다른 종이란 이유로 도둑으로 몰려 인간들에 의해 멸종해 갈 수밖에 없다.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리에티와 가족들은 인간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자연이다. 발전과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삶의 터전을 잃는 수많은 생명과 여성적 존재들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공사중인 4대강 주변에서도 무수한 생명체들이 내는 항변의 부르짖음이 들리는 듯하다. 4대강 토건공사 사업은 강의 생태계뿐 아니라 우리의 삶까지 파괴할 것이다. 강을 살리기 위해선 불도저나 삽이 필요없다. 자연과 더불어 살려는 마음과 자연과 공생하려는 실천의지로 강을 그대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 살리는 길이다.
<마루 밑 아리에티>의 마지막 장면에는 인간에 의해 파괴된 보금자리를 뒤로한 채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주전자를 타고 강줄기를 따라 떠나는 모습이 나온다. 그들은 숲에서 만난 또다른 소인과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자급자족하고 필요한 물건은 빌리면서 여전히 위협적인 인간들과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 그들은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최소한의 것들만 빌려 써도 우리의 삶은 유지되고 자연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여성성을 발휘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4대강 토건사업을 가능한 한 빨리 중지시키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은가? 각자의 위치에서 힘을 모아 연대하자. 강은 결국 그대로 흘러갈 것이다.
정미경 서울 송파구 장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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