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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06 20:47 수정 : 2013.10.09 20:47

낙동강 지천 맥도강에 들어선 수상가옥들엔 일용 노동자나 어업 등에 종사하는 이들이 산다. 부산시와 한국수자원공사는 에코델타시티 사업을 벌이며 이 가옥들을 철거할 방침이다. 부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현장 쏙] 삐걱대는 부산 ‘친수구역 사업’

부산 강서구 낙동강 인근 ‘에코델타시티’ 사업에 4대강 사업 후폭풍이 드리우고 있다. 부산시와 한국수자원공사가 5조4000억원을 들이는 사업이다. 주민들의 반발, 초대형 개발사업 후유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여서(여기서) 나가란 말입니꺼? 내사(나는) 마 여기서 죽을랍니다.”

2일 부산 강서구 대저2동 신노전마을 경로당 앞에 모인 할머니들은 이웃한 명지동 주민들이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토지보상 통지서를 받았다는 소식에 전전긍긍했다. “19살 때 결혼해 남편 따라 타지로 갔다가 29살부터 이 마을에서 살았지예. 근데 이제 와서 고향을 떠나라고 카니 기가 막힙니더. 내사 마 보상도 필요 없어예.” 장학림(80) 할머니의 목소리엔 착잡함이 묻어났다.

지난달부터 토지보상 통지서가 날아든 명지동 마을 곳곳엔 ‘에코델타사업 철회’를 촉구하고 ‘낮은 보상가격’을 비난하는 펼침막이 곳곳에 내걸려 있었다. 이날 강서구청에서 에코델타시티 환경영향평가 초안을 설명하는 공청회는 주민들을 더 화나게 했다. 토지보상 문제는 논의 대상에 없기 때문이다.

에코델타시티는 2018년까지 5조4000억원을 들여 부산 강서구 강동·명지·대저2동 1188만㎡를 친환경 수변 자족도시로 만드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부산시가 1990년대부터 부산신항을 동북아 허브항으로 육성하려면 부산신항의 배후에 있는 강서구를 물류거점 도시로 육성해야 한다며 추진하다가,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본격화했다.

애초 이름은 국제산업물류도시였다. 총면적 3300만㎡, 사업비는 약 11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개발사업이다. 이 가운데 1단계 570만㎡는 2010년부터 기업들이 직접 터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에코델타시티 터가 포함된 2단계 2300만㎡는 부산시가 2009년 3월 당시 한국토지공사, 곧 현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와 사업비를 30%(부산시)와 70%(한국토지공사)로 분담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나 2010년 3월 토지주택공사가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발을 빼면서 중단됐다.

표류하던 국제산업물류도시는 2010년 12월 4대강 사업 수변구역의 개발을 허가하는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친수구역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기사회생했다. 4대강 사업으로 진 빚 8조원을 회수하려는 한국수자원공사와 대형 지역 개발사업을 추진하려는 부산시가 이름을 에코델타시티로 바꿔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택지개발 전문 공기업인 토지주택공사가 포기한 사업을 물 관리 전문 공기업이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퇴임 직전인 2012년 12월 친수구역으로 지정했다. 윤일성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에코델타시티는 지역 개발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4대강 사업에 뛰어들어 8조원의 빚을 진 수자원공사한테 국가가 보상하려는 것이다”고 말했다.

■ 분양 성공 장담 못해 에코델타시티 사업비 5조4000억원은 부산시 산하 공기업인 부산도시공사가 1조800억원(20%)을, 한국수자원공사가 4조3200억원(80%)을 부담한다. 부산도시공사와 수자원공사는 터를 조성한 뒤 기업들에 분양해 투자비를 회수하고 내심 수천억원 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수요이다. 부산도시공사와 수자원공사는 에코델타시티 터 1188만㎡의 255만㎡(23.4%)를 연구개발·첨단산업·물류 관련 기업에 조성원가로 공급할 계획이지만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 분양 성공을 장담하지 못한다. 박재운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는 “수자원공사의 타당성 조사 보고서는 2007년 한국산업단지공단 산업입지연구센터가 추정한 자료를 그대로 가져와 쓰는 등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부산 에코델타사업 계획 터 안에 들게 된 부산 강서구 대저2동의 할머니들이 2일 “평생 살아온 삶터를 두고 어디로 떠나란 말이냐”고 항의하듯 말하고 있다.

친수구역 개발로 회생
국제물류도시 추진하다 좌초
‘4대강 빚’ 수공과 손잡고 재기
5조원 들여 주거·상업지구 건설

보상문제 거듭 난항
“현 보상비로는 대체농지 못사”
공시지가 기준 수용불가 고수

인천 영종하늘도시 전철 밟나
경기침체 계속땐 무더기 미분양
도심 접근성 떨어지는 문제도

환경 파괴 논란 거세
철새서식지 옆 레저시설 계획
생태계 교란 “무늬만 생태도시”

대형 건설회사와 단독주택 희망자들에게 분양할 234만5000㎡(21.6%)는 위험이 더 커 보인다. 건설회사들에 2만8518가구 규모 아파트를 짓도록 할 계획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뒤 미분양 사태에 빠졌던 인천 중구 영종하늘도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문화 기반시설이 미흡하고 도심 접근성도 떨어지는 구조적 약점을 메우지 않으면, 일부 건설회사들을 부도에 이르게 한 에코델타시티 근처 명지지구 아파트들을 닮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업비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주민들은 보상가격에 불만이 적지 않다. 보상비가 더 늘어나 이를 조성원가에 포함하면, 기업·주택용지 분양에 부담 요인이 된다. 부산시의 재정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2012년 12월 말 부산시 부채는 2조8994억원으로 지난해 예산 9조4350억원의 30.7%가량이다.

■ 갈 곳 없는 농민들과 업체 부산시와 수자원공사는 명지·강동·대저2동의 사유지 960만㎡ 소유자들에게 2015년까지 보상을 끝내려 한다. 지난달부터 명지동 274만㎡에 보상하기 시작했다. 주민 반발에 집 실거래값 조사를 하지 못하자 논밭만 3.3㎡당 평균 40만~60만원을 주겠다고 통보했다. 수자원공사와 부산시는 현재 사는 농민들의 이주단지를 조성하고 임대 농민에겐 농작물 보상비와 이주비를 줄 방침이다.

주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보상값 산정 기준부터 잘못됐다는 것이다. 명지동 주민 최아무개씨는 “1970년대에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로 묶여 원주민들이 빚만 안고 살고 있는데 공시지가 기준으로 보상하려는 것은 두 번 죽이는 것이다. 40여년 동안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던 농민들을 보상하는 차원에서라도 산정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땅에 농사짓는 농민도, 남의 땅을 빌려 농사하는 임대 농민도 절박함을 호소했다. 보상비를 받아도 대체 농지를 살 수 없다는 것이다. 30여년 임대 농업을 해왔다는 이상우(55·명지동)씨는 “경남 김해 등의 논을 빌리려고 돌아봤는데, 팔겠다는 농지만 있었다. 쥐꼬리만한 농작물 보상비를 받아서 3.3㎡당 40만원이 넘는 논을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농민들은 특별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4대째 농사해온 이철호(56·대저2동)씨는 “25년 동안 농사를 짓고 살았다. 이 나이에 농사 말고 무얼 하겠는가. 다른 지역에 가서 논을 빌리려 해도 낯선 이에게 쉽게 임대해주겠나. 먹고살 생계 대책이 없으니 이주단지에 입주할 수도 없다. 정부가 장기간 저리로 논을 살 정책자금을 지원해달라”고 하소연했다.

현지 업체들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상덕 에코델타시티 기업비상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명지동 조성원가가 3.3㎡당 270만원이라고 하는데, 보상금이 적은 영세업체들은 공장 터를 줄이거나 문을 닫아야 한다. 에코델타시티가 조성되면 200~300개 업체 종업원 수천명이 해고될 수 있다”고 말했다.

■ 환경 파괴 논란 세계적 철새도래지인 을숙도와 가까운 에코델타시티는 ‘친환경 수변 자족도시’를 지향한다고 한다. 주요 철새 서식지이자 이동경로인 서낙동강 기슭부터 100m까지는 건물이 들어서지 못하게 생태보전구역으로 지정하고 66만㎡ 규모 철새생태습지공원 등 5곳의 생태공원과 2곳의 철새서식지를 만들 계획이다. 곳곳에 물길을 만들어 빗물이 흐르도록 하고 공원·녹지율을 30.8%까지 계획하고 있다.

그러려면 현재 3~4급수인 서낙동강과 평강천, 맥도강의 수질을 개선하는 것부터가 숙제다. 2급수 수준으로 올리려면 김해 등에서 유입되는 오·폐수를 차단하는 시설을 설치하는 예산만 1조원이 넘는다. 부산시는 정부로부터 지원받으려 하지만 불투명하다. 현 정부 들어서 감사원은 4대강 사업의 위법성과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감사 결과를 내놓은 상황이다. 올해 신청한 서낙동강 준설비용 200억원마저 내년 예산안에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서낙동강 등에 유입되는 낙동강 원수의 수질도 더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에 대형 보 8개를 설치한 뒤 강물 유속이 느려지고 녹조 등도 빈발하는 상황이다. 이남주 경성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에코델타 사업 환경영향평가 초안의 수질 모델링을 신뢰하기 어렵다. 4대강 사업 뒤 낙동강 본류의 수질 악화에 대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에코델타시티 상공에서 훈련하는 공군 항공기, 서낙동강 기슭에 설치한다는 마리나시설 등에서 발생할 소음도 문제로 꼽힌다. 환경단체 ‘습지와 새들의 친구’의 김경철 사무국장은 “철새 보호를 위해 철새먹이터와 생태보전공간을 만든다고 하면서 요트, 모터보트 등 정박지인 마리나를 근처에 설치하겠다니 납득되지 않는다. 무늬만 생태도시다”고 말했다. 김영철 부산시 국제산업물류도시개발단장은 “제기된 문제들은 민관 협의기구를 통해 풀어가겠다”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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