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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2조2500여억원을 들여 개통한 경인아라뱃길(경인운하)의 서해로 이어지는 아라뱃길 컨테이너 부두에 물동량이 없어 부두가 텅 빈 채 26일 저녁 해가 지고 있다. 김포/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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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철도·교량 등 사회간접자본(SOC) 문제의 핵심은 수요예측이다. 수요예측은 시설을 지으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과 차량 등이 이용할지를 전망하는 것이다. 수요예측은 열에 아홉 건 이상이 과다 추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단지 잘못 예측하는 게 아니라, 의도적이라 할 만큼 거의 예외 없이 과대 포장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실제보다 많을 것이란 수요 전망은 경제성을 부풀려 안 해야 할 에스오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근거를 제공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시설의 과잉을 낳고 있다.
수요예측을 수행하는 전문가들은 표를 얻으려 성장과 개발 논리를 추구하는 정치인의 요구에 ‘봉사’한다. 수조, 수천억원의 세금 낭비를 불러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비용은 온전히 시민들의 몫이다. 전문가주의에 숨어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에스오시 사업의 ‘수요예측’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왜 계속 잘못이 되풀이되는지 그 구조적인 문제와 대안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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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기자가 찾아간 아라뱃길 검암역 지구는 한가한 가을 오후의 정취가 가득했다. 따가운 가을볕에 강바람이 시원하게 부는데, 바람 끝에선 바다 내음과 막힌 물에서 올라오는 퀴퀴한 쩐내가 한데 섞여 있었다. 이날 검암역 지구에서 아라뱃길의 가을 정취를 함께한 시민은 모두 12명. 9명은 자전거를 타다 다리 밑 그늘에서 한숨 돌리는 라이딩족이었고, 2명은 산책을 나선 연인, 1명은 강아지를 이끌고 산책을 나온 동네 주민이었다. 그러나 검암역 지구 벤치에 2시간여 앉아 있는 동안 정작 물길에 배가 떠다니는 모습은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2조2500억원을 들여 완성된 ‘배가 뜨지 않는 운하’인 셈이다.
아라뱃길은 기나긴 논란 끝에 태어났다. 태풍 셀마가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낸 1987년 여름, 인천 부평·계양 지역에서는 큰 물난리가 났다. 한강보다 지대가 낮아 비가 많이 쏟아지면 지역에 흐르는 굴포천 유역을 중심으로 물이 차올랐기 때문이다. 3만여명의 수재민이 나왔고, 그들에겐 군용 모포, 라면 등 의식주를 해결할 정도의 간단한 구호물품이 전달됐다. 6월항쟁 직후였던 당시 16년 만에 대통령 직선제의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선거를 앞둔 당시 집권 여당의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부평을 찾아 ‘굴포천 치수종합대책’을 공약했다. 아라뱃길 사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굴포천 치수종합대책은 애초 몇가지 시나리오에 따라 검토됐다. 물길을 뚫어 부평·계양 저지대에 모인 물을 서해로 흘려보내거나, 김포 쪽 미개발 지역을 유수지로 활용하는 방식 등이었다. 비용만 따지면 김포의 저개발 지역으로 물길을 돌리는 편이 가장 경제적이었지만,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은 한국 경제가 거침없는 성장세를 보일 때였다.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건설 경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정부는 서해안 쪽으로 너비 40~80m, 길이 14.2㎞의 방수로를 뚫는 방안을 확정했다. 이어 내친김에 한강까지 3.8㎞ 물길을 마저 연결하는 경인운하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운하를 염두에 뒀기 때문에 서해안 쪽 방수로의 너비는 배를 띄울 수 있는 80m로 결정됐다. 정부는 논의 끝에 경인운하를 민자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고, 1995년 현대건설을 중심으로 한 ㈜경인운하가 주간사업자로 선정됐다.
지역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를 중심으로는 과도한 토목사업으로 경제성이 없다는 주장과 한남정맥을 관통하는 바닷물길이 생태계를 교란할 것이라는 반대 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사업을 추진하려는 건설자본과 건설교통부는 수차례 수요예측과 경제성 분석 보고서를 내놓으며 사업 추진의 정당성을 입증하려 했다. 수요예측과 비용편익분석 보고서를 중심으로 전선이 형성된 것이다. 그 결과 경인운하에 대해서는 모두 8차례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1989년 한국수자원공사가 내놓은 경인운하 보고서는 비용편익(B/C)분석 점수가 2.08에 이르렀고, 1996년에는 2.2라는 높은 점수를 받은 보고서가 작성됐다. 경기 활황세가 계속 이어질 거라는 예측 아래 물류, 교통량 분산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경과 효용성 논란이 계속됐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까지 찾아왔다. 결국 삽을 뜨지 못했던 것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뒤인 2002년, 건교부는 다시 한번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수요예측 및 비용분석 보고서를 의뢰했다. 그러나 8월에 완성된 보고서 초안에서는 비용편익분석치가 0.8166에 그친 것으로 나왔다. 들이는 비용에 비해 사업의 편익이 못미친다는 의미였다. 건교부는 13개 항목을 수정해 재분석을 요청했지만, 그 결과는 0.9206. 모두 사업성 판단의 기준인 1에 미치지 못했다. 건교부는 한국개발연구원의 용역 보고서 인수를 거부하고 용역비 지급까지 미루면서 다시 한번 보고서를 조정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한번 수요예측 및 경제성 보고서를 작성했다. 주운수로의 너비와 공사 방법, 도로의 유료화 여부를 달리해 8개 시나리오로 나눠 비용편익분석을 한 것이다. 그 결과는 0.9223~1.2807이었다. 일부 시나리오를 제외하고는 경제성 판단의 기준인 1을 넘긴 것이다.
이처럼 집요한 재분석 요청에 대해 학계에서는 ‘짜맞추기 분석’이라는 비판이 비등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환경계획)는 “용역을 수행하는 기관으로서는 기본적으로 발주처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다”며 “국토부처럼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일관된 의지를 가진 관료 조직이 계속해서 수정을 요청하면 분석 방향도 그쪽에 맞춰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감사원은 2003년 한국개발연구원이 내놓은 분석이 건교부에 의해 부풀려진 것을 확인하고, 사업 중단과 함께 담당 공무원의 징계를 요구했다. 당시 감사원이 재산정한 비용편익분석 결과는 0.7607~0.9317로 8개 시나리오 모두 1에 미치지 못했다.
비용편익분석 1 미만 나오자
원하는 결과 도출 때까지
건교부, KDI에 계속 수정 요청
여의치 않자 외국업체에 용역
이명박정부 들어서자 결국 첫 삽
개통 1년여뒤 예측대비 물동량 5%
반대쪽 수요예측 0.274와 비슷
매해 유지관리비 60억 세금 낭비
2조원짜리 배 안뜨는 운하 전락
국내에서 사업의 정당성을 찾기 어려워진 건교부는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렸다. 2004년 8월 네덜란드의 운하 전문 컨설팅 업체 데하베(DHV)에 20억원을 주고 용역을 맡겼고, 2007년 3월 1.76이라는 비용편익분석을 받아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08년 한국개발연구원은 데하베의 보고서를 재검증해 1.065의 비용편익분석을 내놓았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의 전초전으로 아라뱃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 각 기관의 수요예측 신뢰성은 상처를 입을 만큼 입었다. 사업 분석 기관에 따라 비용편익분석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데다, 건교부의 분석 조작 사실마저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의 구체적인 항목을 뜯어봐도 의문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먼저 보고서는 아라뱃길에 대한 이용자 선호도 조사를 생략한 것으로 드러났다. 운하를 이용한 물류수송을 할 것인지 각 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기 위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따왔다는 것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경민 교수(도시계획)는 “사업이 되게 하려는 정치권과 관료 집단이 계속해서 ‘되는 결과’를 요구하면 사소한 항목 하나 바꿔도 엄청난 차이를 만들 수 있다”며 “아라뱃길 수요예측 보고서는 전문가적인 양심을 기대하기 어려운 보고서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보고서에서 예측된 경인운하의 2011년 물동량 수요는 컨테이너 29만4000TEU, 바닷모래 633만t, 철강재 50만t, 여객 60만명 등이었다. 이 가운데 서해에 위치한 인천터미널의 물동량이 컨테이너의 80%, 바닷모래의 53%에 이르렀다. 운하를 통과하지 않는 물동량이 고스란히 아라뱃길의 수요예측에 포함된 것이다.
편익이 부풀려졌다면, 비용은 축소됐다. 아라뱃길의 시초는 굴포천의 방수로를 뚫는 사업이었다. 방수로를 한강과 연결해 경인운하로 활용할지를 두고 논란을 벌이는 동안, 이미 부평·계양 지역의 굴포천 수량을 서해안으로 보내는 방수로는 80m 너비로 완성됐다. 향후 운하 개발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여기에 들어간 사업비는 모두 4790억원. 그러나 한국개발연구원은 이 사업비는 아라뱃길 사업과 별개의 것이라며 비용편익분석에서 제외했다. 민주당 문병호 의원은 “운하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애초 40m 폭 방수로로 족했다”며 “비용은 축소하고 수요는 부풀린 전형적인 왜곡 보고서가 8차례나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야말로 수요예측이 사업 추진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개통 1년여가 지난 아라뱃길의 현실은 암담하다. 수요예측 대비 물동량은 5% 남짓이고, 무료로 변경된 수변도로 보상비 3000억원과 매해 유지관리비 수십억원이 세금으로 지원되고 있다. 사업성에 회의를 느낀 경기 김포시와 인천시는 지자체 관리 몫인 수변공원 등의 인수조차 거부하고 있다. 특히 아라뱃길의 물동량 수요는 부평 구의회 의원, 학계 전문가 등이 구성한 아라뱃길 재검증 위원회에서 만들었던 비용편익분석 0.274와 비슷한 수준에 그쳤다. 한국개발연구원과 한국수자원공사는 “사업성을 판단한 수요예측에는 문제가 없었다. 모든 항만은 개통 초기 2~3년 동안 어려움을 겪는다. 더구나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돼 세계 물동량 자체가 줄어든 탓도 크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청한 한 교수는 “수요예측 용역 자체에 드는 돈은 억원대 수준으로 몇조원에 이르는 공사비에 비하면 껌값에 불과하다. 사업 추진의 명분을 얻기 위해 수요예측을 반복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며 “경인운하 보고서에서 부풀려진 수요와 줄어든 비용을 보면 전문가적 양심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문가그룹이 만든 수요예측 보고서는 힘이 셌다. 20년 넘게 경인운하 반대 활동을 했던 가톨릭환경연대 권창식 사무차장은 “각종 공청회 등에서 반대론을 제기해봤자, 당시 건교부와 건설사들은 네덜란드 데하베가 운하 분야에서는 전세계에서 최고다. 너희들이 뭘 안다고 까부느냐는 답만 돌아왔다”며 “전문가들이 이름을 빌려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쟁을 벌이기조차 어려웠다”고 말했다.
부평에서 태어난 기자는 아라뱃길을 잉태한 1987년의 수재민 수만명 가운데 한명이었다. 이불을 포개놓은 장롱까지 휩쓸고 간 흙탕물의 공포와 깔깔한 군용 모포의 감촉, 위문품 라면을 끓인 그릇을 받아들고 환호성을 질러 어머니께 꿀밤을 맞았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또 초등학생이었던 기자는 학교 문집 <굴포천 아이들>에 ‘고려시대부터 추진된 경인운하의 역사와 필요성’이라는 산문을 싣기도 했다. 경인운하가 만들어지면 집값이 오를 거라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감이 은연중 배어든 것이었다. 그땐 그 결과물이 2조2500억원을 들인 ‘배가 뜨지 않는 운하’일 거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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