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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29 19:49 수정 : 2013.10.30 10:57

지난해 10월13일 강원도내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강원도청 앞에 골프장 공사 과정 중 묘지 불법 훼손에 항의하는 뜻을 담은 꽃상여를 메고 와 골프장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강원도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범도민 대책위원회 제공

[지구와 환경] 환경영향평가법 개정 목소리

서비스 대상 고객 수로 정부 부처의 순위를 매긴다면 가장 유력한 1위 후보는 환경부다. 대부분의 부처는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환경부는 이와 달리 인간은 물론 ‘말 못하는 동식물과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의 안전과 삶의 질까지 고려 대상으로 삼는다고 공언한다. 환경부가 생태계 보전, 생물다양성, 지속가능성 등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그것과 관련된다.

환경부가 ‘말 못하는 동식물’을 대변하는 통로가 바로 환경영향평가제도다. 이 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지는 30년도 더 지났지난, 말 못하는 동식물들의 목소리까지 제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에서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크게는 4대강 사업에서부터 작게는 강원도 홍천의 구만리 골프장 사업에 이르기까지 환경단체나 지역 주민들의 주목을 받은 사업 가운데 환경영향평가에서 아무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고 넘어간 사례는 찾기 어렵다. 이처럼 잘못된 환경영향평가는 환경 훼손을 막아주기는커녕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해왔다.

환경영향평가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반복돼 온 논란과 갈등은 대부분 환경영향평가서의 부실 작성에서 출발한다. 다른 지역에서 진행된 사업을 위해 작성했던 영향평가서를 그대로 베끼거나, 조사를 하지 않고도 조사를 한 것처럼 기재하거나, 현장 조사도 없이 수십년 전 자료를 그대로 인용하는 등의 사례도 드물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전환경성검토, 환경영향평가,사후환경영향조사 등 평가 때마다 사업 지구에 서식하는 법정보호종 생물종들이 몇 배씩 계속 늘어나기도 한다.(표 참조)

이처럼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서를 나오게 하는 원인으로 최근 사회 여러 부문에서 도마에 오른 ‘갑을관계’를 지목하면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환경단체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다.

현행 환경영향평가법은 환경영향평가의 기초가 되는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의무를 환경영향평가 대상 사업을 하려는 사업자한테 지우고 있다.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비용을 내는 사업자가 자기의 입맛에 맞는 환경영향평가업체를 대행 업체로 선정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셈이다. 340개나 난립해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는 환경영향평가업체들로서는 존립을 위해서라도 자신을 선택해줄 사업자의 눈치를 보는 ‘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사업 진행을 어렵게 만들거나 사업자를 곤란에 빠뜨릴 만한 내용이 사실 그대로 담긴 환경영향평가서가 나오기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다. 이 갑을관계는 사업자와 직접 계약하는 1종 환경영향평가업체와 이 업체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현장 조사나 측정을 대행하는 2종 환경영향평가업체나 측정대행업체 사이에도 만들어진다.

배보람 녹색연합 정책팀장은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서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명확한 ‘부실’의 기준에 따라 엄격한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영향평가 대행업체를 사업자가 선정하도록 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대구 달성군에서 시행된 사업의 환경영향평가서에서 문화재 현황까지 베꼈다가 주민 의견수렴 과정에서 들통난 강원 강릉골프장 사전환경성검토서. 사업지역이 강릉 지역임에도 ‘본 사업지구가 포함된 달성군의 경우’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녹색연합 제공

평가서 비용 대는 사업자한테
평가업체 선정 권한도 내맡겨
객관적 평가 애초부터 불가능
환경단체ㆍ정치권 한목소리 비판
공탁제·경쟁입찰 등 개선안 내놔
환경부, 비효율성 등 내세워 난색

이종훈 의원은 “환경영향평가업체의 기술인력과 장비 부족에 따른 부실한 현장 조사, 그것을 검증해야 할 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부실한 현장 검증 등도 잘못이지만, 부실 환경영향평가를 낳는 가장 구조적인 문제는 개발 사업자와 환경영향평가 대행업체 사이의 갑을관계다. 사업자가 영향평가 비용을 공탁하는 공탁제를 도입해, 공탁제 관리기관이 영향평가업체를 선정하고 제출된 보고서의 최종 검토·검증까지 맡아 정부의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총리실 산하의 환경정책평가연구원과 같은 기관이 공탁제 관리를 맡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을 준비중이다.

민주당 우원식 최고의원은 한발 앞서 지난달 29일 이미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에서의 종속적 갑을관계 차단을 주목적으로 하는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우 의원의 개정안은 환경영향평가 대행업체를 한국환경공단이 주관하는 공개경쟁 입찰로 선정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평가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 의원은 “그동안 환경영향평가제도는 갑을관계라는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제도 도입의 취지가 훼손되면서 결국 4대강 대재앙까지 불러왔다. 이번 개정안을 통해 실효적이고 객관적인 환경영향평가 체계를 확립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런 정치권이 추진하는 환경영향평가 공탁제 도입에 대해 주무 부처인 환경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환경영향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강화시키고 환경보전에도 유리한 장점이 있지만, 과다한 조사·예측에 따른 비효율적인 평가서 작성과 정부 책임을 증가시키는 등의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또 지금처럼 시장에 환경영향평가 대행업자들이 과다 공급돼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공탁제를 도입해도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환경부의 판단이다.

이 의원은 “환경영향평가서가 너무 자세하게 작성돼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점과 환경 분쟁 발생 때 책임이 전가될 우려가 있다는 단점을 들어 환경부가 공탁제에 부정적인 것은 문제 해결 의지가 없는 것이다. 최소한 사업자가 자회사를 만들어서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것이라도 막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 ‘갑을관계’ 뭐가 또 있나

토양오염 조사에선 주유소가 ‘갑질’

환경 분야에서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이외에 고질적인 ‘갑을관계’가 구조화돼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는 주유소 토양오염 조사·정화 분야가 꼽힌다.

환경부는 기름을 취급하는 주유소에 대해서는 특히 토양오염 우려가 높다는 이유로 5년마다 정기적으로 토양오염도 검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 검사에서 토양오염 우려 기준을 초과한 주유소들은 1년 안에 정밀검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최대 4년 안에 정화조처를 하고, 그 결과에 대한 검증까지 받아야 한다.

환경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종훈 의원(새누리)에게 제출한 최근 3년간(2009~2011년)의 주유소 토양오염도 정기검사 현황을 보면, 정기검사에서 기준을 초과한 주유소 비율은 2009년 2.0%, 2010년 3.8%, 2011년 3.9%였다. 하지만 2012년 환경부가 부산, 대전 등에서 26곳의 주유소와 유류저장시설을 골라 실시한 특별점검에서는 38%인 10개 업소가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조사 사이의 기준초과율이 10배 가까운 차이를 보인 것이다.

정기검사에서의 기준초과율이 환경부 특별점검 때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원인으로 주유소와 토양오염조사·정화 업체들 사이의 구조화된 갑을관계가 지목된다.

주유소의 정기검사는 주유소 운영자가 토양오염조사기관을 골라서 위탁하고, 정밀조사 기관도 주유소 운영자가 선정해 위탁하도록 하고 있다. 토양오염에 대한 정화조처가 필요한 경우 정화작업을 할 업체도 주유소 운영자가 골라서 맡기고, 정화작업 결과를 검증하는 기관도 주유소 운영자가 선정하고 있다.

이 의원은 “정기검사에서부터 정화작업 결과에 대한 검증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주유소 운영자가 하도록 하는 것은 주유소 운영자가 모든 것을 직접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토양정화는 사업주의 위탁을 통해 진행하더라도, 조사와 검증은 등록된 기관 가운데 환경부나 지자체가 선정하는 공탁제를 도입하기 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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