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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04 21:52 수정 : 2014.02.0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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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으로 흐르는 나랏돈] ③ 공공조달시장서 ‘포식’

“소수 재벌들을 위한 특혜 제도로 운영되어온 턴키·대안 입찰제도가 존치될 때 중소건설업체에 대한 착취와 건설산업 전반에 대한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5년 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낸 성명서의 일부다. 오래전부터 이런 주장을 해온 경실련이 또다시 성명을 낸 시점은 4대강 사업 1차 턴키 공사 입찰이 끝난 지 두달쯤 지났을 때였다. 경실련은 “4대강 사업 턴키 발주로 약 1조5000억원의 예산이 낭비됐다. 재벌 건설업체 배불리는 턴키 발주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도대체 턴키 입찰제도가 어떻길래 이런 성명이 나오게 된 걸까?

공사가 끝난 뒤 열쇠를 받아서 돌리기만 하면 된다는 뜻의 턴키란 말은 설계와 시공 일괄입찰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댐을 만들 때 설계와 철근·콘크리트 등으로 만드는 구조물 공사를 묶어서 한 업체에 맡기는 식이다. 주로 300억원이 넘는 큰 공사를 할 때 쓰인다.

경실련의 주장처럼 실제 턴키 방식에서 재벌 건설사들이 과점체제를 이루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09년 4대강 1차 턴키 공사 16곳 가운데 한양건설이 맡은 영산강 6공구를 제외한 15곳이 현대건설·삼성물산·지에스건설·대우건설·대림산업 등 업계 상위(시공능력평가액 기준) 10위 업체한테 모두 돌아갔다. 공사 금액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전체의 무려 94%였다.

4대강뿐만이 아니다. <한겨레>가 박수현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08~2013년 턴키 방식으로 발주한 4대강, 댐, 선도사업 등 27개 공공건설사업 가운데 건설사 상위 10개사가 수주한 공사 비중이 84%나 됐다. 1~2곳을 빼면 나머지 사업들도 다 상위 30위 안에 드는 대형 업체들의 차지였다.

최근 5년간 건설업계 상위 10개사
4대강·댐 등 공공건설 84% 수주
공공조달시장 절반인 공공건설
대형건설사가 턴키입찰로 독식

가격경쟁없이 짬짜미 가능해
적발되도 과징금 적어 불법 만연
일은 하청업체가 하고 이윤만 챙겨

이렇듯 턴키 공사는 재벌 건설사들이 독과점하고 있다. 건설공사는 정부가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공공조달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약 43%)을 차지한다. 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공공공사 동향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맡기는 공공건설공사는 2012년 기준 약 34조원(실제 계약금액 기준으로 건설협회 통계와 차이가 남)에 이른다. 이 가운데 턴키(대안입찰 포함) 방식 계약이 7조7397억원으로 전체의 23%를 차지했다. 따라서 재벌 건설사들의 놀이터가 된 턴키 공사의 공사비가 단 1%만 부풀려져도 나랏돈 773억원이 증발하는 셈이다.

필요한 물품 등을 기업한테서 사들여 나라살림을 꾸려가는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도 여느 소비자의 구매 행위처럼 낮은 가격에 좋은 물건을 사들이는 게 원칙이다. 그렇지 못하면 소비자가 바가지를 쓰듯, 정부는 국민이 낸 세금을 축내게 된다. 그런데 턴키 공사가 국가 자원 배분체계를 왜곡시키고, 심각한 예산 낭비까지 초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 2년 전 경실련은 강기갑 의원실과 4대강 핵심 사업인 모래 파기와 운반, 쌓기까지의 공사비를 분석해, 턴키로 사업을 따낸 재벌 건설사들의 공사 단가가 가격경쟁을 통해 낙찰받은 중견업체의 공사 단가보다 2.6배나 높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세제곱미터(㎥)당 모래 파내기 단가가 턴키 방식은 5971원(상위 10개사 평균)인데 가격경쟁의 경우 2306원(하위 5개사 평균)에 불과했다. 경실련과 의원실은 이를 근거로 가격경쟁이 없는 턴키 방식으로 약 1조5000억원의 예산이 낭비됐다고 추정했다.

재벌 건설사들의 높은 공사 단가의 비밀은 자기들끼리 경쟁을 없애는 짬짜미에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 4대강 사업 1차 턴키 공사 가운데 12곳에서 짬짜미가 일어난 혐의를 잡고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등 재벌 건설사 8곳에 과징금 1115억원을 부과했다. 이들은 몸집의 크기에 따라 자신들이 먹을 ‘파이’(몫)의 크기를 스스로 정했다. 서열은 이른바 도급(시공능력평가액) 순위였다. 누가 어느 공사를 맡을지 정하는 정부는 정작 들러리에 불과했다. 심지어 짬짜미를 하는 호텔 조찬모임 자리에서조차 재벌 건설사들은 조폭처럼 서열 순서대로 중앙에서부터 가장자리로 차례대로 앉았다.

2010년 2월27일 경기 여주 이포보 일대에서 강바닥을 파헤치며 4대강 공사를 벌이고 있다. 4대강 사업은 공공조달 부문에서 대기업의 몫을 크게 늘리는 주요한 계기이기도 했다. 여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공정 경쟁의 ‘거세’는 비단 4대강의 문제만은 아니다. 턴키 방식 공공공사엔 거의 예외 없이 경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산업연구원은 턴키(대안입찰 포함) 입찰 방식의 평균 입찰자 수가 2011년엔 3개, 2012년엔 1개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입찰자가 한 곳이란 아예 경쟁이 없다는 의미다.

짜고 치는 짬짜미가 이처럼 쉽게 이뤄지는 턴키 공사에서 발주처인 정부가 예상 및 추정했던 가격에 견줘 실제 낙찰자가 써낸 금액의 비중을 뜻하는 ‘낙찰률’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업체의 이윤이 커지지만, 공사를 맡기고 돈을 지불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세금을 낭비하는 꼴이다. 공공공사의 턴키 방식 평균 낙찰률(투찰금액/예정가격)은 2012년 88%까지 하락했으나, 2008~2009년에는 90%를 웃돌았다. 쉽게 말해 정부가 추정한 1000억원짜리 공사를 업체가 최근엔 900억원 이상에 땄다는 얘기다. 반면 당시 자격을 갖춘 업체들끼리 가격경쟁이 붙는 최저가낙찰제의 경우 평균 낙찰률이 71.9%(2008년 기준)에 그쳤다.

특히 4대강 사업 전체 170개 공구 가운데 거의 60%(금액 기준)가 턴키 방식으로 발주됐는데, 낙찰률은 평균 90%를 웃돌았다. 4대강과 같은 해 발주된 인천도시철도 2호선에서도 짬짜미가 이뤄졌는데, 평균 낙찰률은 무려 98%에 이른다. 물건을 사러 시장에 온 손님한테 어느 가게에서만 팔기로 상인들끼리 입을 맞췄으니, 정부로선 제대로 된 가격 흥정 없이 비싼 값에 공사를 맡길 게 뻔했다. 공정위는 최근 짬짜미가 4대강 2차분 턴키 공사와 경인 아라뱃길(운하)에서도 이뤄진 혐의를 잡고서 조사중에 있다고 문병호 민주당 의원실에 밝혔다.

정부가 재벌 건설사에 주는 특혜처럼 비치는 턴키 방식은 1975년 도입돼 2년 뒤 삼일항(전남 여수) 석유화학 항만공사에 최초로 적용됐다. 주로 창의적인 설계나 난도가 높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대형 공사에 적합하다는 명분을 등에 업고 유지돼왔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려 할 때도 선호됐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 운동본부장은 “전체 공사비에서 설계가 3%, 감리가 2%, 나머지 95%는 순공사비가 차지한다. 그런데 턴키 업체 선발 기준이 건설비용 점수의 비중은 낮추고, 3%에 불과한 설계비를 60% 수준으로 높여놔, 가격경쟁을 피하도록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격경쟁이 없다시피 해 업체끼리 짬짜미가 더욱 수월하다는 것이다.

턴키의 장점으로 알려진 공기 단축에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은 최근 ‘서울시 설계·시공 일괄방식의 성과 평가에 관한 연구 용역’ 미공개 보고서에서, 1998~2013년 서울시 대형 공사 턴키로 발주한 73건을 분석했더니 “실질적인 공기 단축 효과가 미미하다”고 밝혔다.

재벌 건설사들이 독과점을 누리고 있는 턴키 방식이 공공건설 생태계를 악화시키는 것도 문제다. 김헌동 본부장은 “우리나라에선 원청기업(재벌 건설사)이 몽땅 하청 주는 방식이다. 정작 자신들은 공사를 안 한다. 미국에선 금지된 일종의 ‘브로커’(거간꾼) 노릇을 해 손쉽게 돈을 버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턴키로 공사를 따낸 대형 건설사들은 사실상 최저가낙찰제 방식으로 하청업체를 고른다. 자신들은 높은 가격에 공사를 따와 직접 공사는 거의 하지 않은 채 가장 낮은 가격으로 하청업체에 공사를 거의 전부 맡기는 식이다. 재벌 건설사들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이런 구조 속에서 ‘낙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턴키 발주가 안고 있는 이런 고질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제도가 개선되지 않은 데는 정부의 방조와 무능, 무책임이 자리잡고 있다. 서울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입찰 담합과 비리 등이 근절되지 않고 지속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적발되었다 하더라도 과거부터 현재까지 적절한 행정 제재가 취해진 바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게 2006년 광복 61주년을 맞아 건설업체 등에 부과된 각종 제재 조처를 모두 해제한 경우다. 2012년엔 건설경기 불황 등을 근거로 과징금 부과마저 감면했다. 사실상 세금을 빼돌린 국민을 상대로 한 범죄에 국가가 무신경할 만큼 아주 관대한 처분을 기업에 내리고 있는 현실이다. <한겨레>가 민병두 의원실을 통해서 받은 공정위의 2003~2013년 턴키 공사 짬짜미 입찰 현황을 보면, 이 기간에 대우건설은 6번, 삼성물산은 3번이나 걸려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짬짜미를 해서 얻는 이익이 과징금보다 훨씬 크다 보니 걸려도 계속해서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2년 전 이런 탈 많은 턴키 방식의 공공건설공사 발주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설계와 시공을 분리 입찰해 짬짜미를 척결하겠다고 밝혔다. 턴키 방식을 “소수 재벌들을 위한 특혜 제도”라고 비판해온 경실련의 제안을 중앙정부가 아닌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수용한 것이다.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지만, 아직까지 그로 인한 부작용이 있다는 소식은 없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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