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리포트]
‘재앙’이 된 4대강 사업
운하는 그의 오랜 꿈이었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렵겠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를 만들어 놓고 말 것이다.” 1996년 7월18일 국회 대정부질문 단상에 선 재선의 이명박 의원은 경부운하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인수위가 발표한 192개 국정과제에 ‘한반도 대운하 건설 추진’이 포함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국민은 운하를 원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을 당선시킨 국민 상당수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8년 6월 들어 실시된 주요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운하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예외없이 70%를 웃돌았다. 운하 반대론 확산에 반비례해 그의 지지율이 추락했다. 이 대통령은 결국 그해 6월19일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대운하 사업도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물러섰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4대강 사업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운하를 염두에 두고 추진한 사업이라는 건 환경단체들만 제기하는 ‘의혹’이 더는 아니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 출범 뒤 감사원이 4대강 사업을 주도한 기관들을 감사해 내린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결론’이다. 이 전 대통령 쪽에선 ‘정치적 감사’라는 주장을 펴지만, 그렇더라도 기록과 관계자들의 증언으로 드러난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 넉 달 뒤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이 빠졌다. 대신 인수위 국정과제에는 없던 ‘국가하천 종합정비’가 35번째 과제로 끼어들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퇴임 직후인 2006년 8월18일 내륙운하 현장탐사에 나서 모터보트를 타고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의 낙동강 사문진교 아래를 둘러보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내륙운하 건설로 한반도 국운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대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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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거의 다 해놨으니…”
매년 관리비 1300여억원에
수공 ‘7조원짜리 청구서’까지
혈세 걷어 메워야 할 판
운하 반대한 국민 70% ‘황망’ 이런 과정을 몇차례 더 거쳐 2009년 6월8일 ‘4대강 살리기 사업 마스터플랜’이 확정 발표됐을 땐 낙동강의 최소 수심이 대운하 계획 최소 수심에서 10㎝ 모자라는 6m까지 늘어나 있었다. 마스터플랜에 담긴 5억7000만㎥의 하상 준설, 낙동강의 8개 대형보를 포함한 16개 중·대형보 설치, 수자원 8억㎥ 확보는 모두 이 수심에 맞추려는 수단이었다. 최소 수심 6m를 확보하느라 사업비가 14조에서 22조로 늘었다. 추가 사업비 8조원은 수자원공사에 떠넘겼다.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서둘렀다. 4대강 사업 계획이 확정되기도 전인 2008년 11월28일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에서 “4대강 정비 사업이면 어떻고, 운하면 어떠냐. 그런 것(정치권의 논란)에 휘둘리지 말고 예산이 잡혀 있다면 빨리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무슨 일을 할 때 비판이 있더라도 그것이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추진해야 한다”고 참모들을 채근했다. 국토부, 환경부 등 4대강 사업 관련 부처 장관들은 임명권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이 대통령 임기 안에 4대강 사업을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휘하 조직을 몰아붙였다. 사업 구간 쪼개기를 통한 타당성조사와 환경영향평가 우회, 형식적인 환경과 문화재 조사, 사전 공사 착공 등 편법과 탈법이 무시로 동원됐다. 그 결과 이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뿌듯한 감회에 빠져들 수 있었다. 지난해 1월4일 이 대통령은 4대강추진본부와 국토부, 환경부, 수자원공사의 4대강 사업 핵심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노고를 치하하며 4대강 사업의 비밀을 털어놨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정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이날 ‘운하는 내가 국회의원 할 때 처음 제안했던 것인데, 대통령이 돼서 내 손으로 시작할 수 있을 줄 몰랐다. 이제 내가 거의 다 해 놨으니 현명한 후임 대통령이 나와 갑문만 달면 완성된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꿈을 ‘거의 다’ 이룬 셈이다. 그러나 그 꿈을 위해 국토와 국민이 치른 희생과 대가가 너무 컸다. 해마다 반복되는 녹조 사태가 보여주는 수질 악화, 정체수역에 주로 서식하는 외래종 생물의 창궐 등과 같은 생태계 교란이 그중 하나다. 4대강 사업에 찬동했던 이들은 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지만 한국 고유의 강 구조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두고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강의 한 부분을 차지하던 모래톱과 여울들은 파헤쳐지고 물에 덮여 사라졌다. 보에 막힌 강엔 사철 수위 변화 없이 물이 그득해져 강에서 계절을 빼앗아갔다. 계절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강과 오랜 세월 이에 적응해 살아온 뭇생물한텐 재앙이다. 4대강 사업 홍보책임자로 변신한 한 생태학자는 “강에 물이 차 있는 걸 보고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고 말했지만, 강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앙상해지는 겨울산의 모습이 싫다고 활엽수를 모두 베어내고 온통 소나무만 심어놓은 격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4대강 사업이 끝난 2012년부터는 매년 1300억여원에 이르는 유지관리비가 들어가고 있다.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 될 세금을 언제까지 쏟아부어야 할지 그 끝도 기약할 수 없다. 자연이 돌보던 강을 인간이 관리하는 강으로 바꿔놓지 않았으면 쓰지 않아도 될 아까운 돈이다. 수자원공사는 이와 별도로 당장 국민들에게 ‘8조원짜리 청구서’를 들이밀고 있다. 4대강 사업 참여 전 1조9000억원이던 부채가 2017년 17조원까지 폭증하리라 예상되자 수자원공사는 8조원에 이르는 4대강 사업 관련 부채 가운데 6조6780억원을 세금의 다른 이름인 정부 재원으로 갚아달라고 대놓고 손을 벌리고 있다. 10명에 7명꼴로 4대강 사업을 반대해온 국민들로선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다. 이 대통령의 운하에 대한 집착만 없었으면 4대강 사업은 애초부터 출발하지 않았거나 훨씬 작은 규모로 이뤄졌을 것이다. 4대강 사업 마스터플랜 수립에 참여한 국토부와 건설기술연구원 관계자들은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 “대통령실 등에서 수심 등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균형위 안(수심 고려 없이 토사가 많이 쌓여 강이 좁아진 구간만 준설하는 방안)이나 4대강기획단 안(낙동강 최소 수심을 2.5m로 유지하는 방안) 수준에서 4대강 사업 계획이 마련됐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어느 쪽이든 4대강이 입은 상처가 지금처럼 깊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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