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더 ‘늙었다’고 떨어뜨린 가스공사
여성이라서…면접 1등을 탈락시켜
간호사 채용에도 철저한 ‘대학 서열’
나이로 떨어뜨린 이들만 554명
연장자라는 이유로 기회마저 박탈 철도공사 2014~16년 서류 합격자 가운데
100명을 나이로 떨어뜨려
감사원, 이달 초 공기업에 경고 가스공사가 대표다. 2014년 상반기 신입·인턴 공채 당시, 서류·필기전형에서 304명의 동점자가 발생하자, 155명을 나이로 잘라냈다. 그해 하반기 공채 땐 90명이 잘려나갔다. 기계7급 서류전형에서 합격권이었으나 하루 먼저 태어난 까닭에 불합격한 이가 포함됐다. 가스공사에서 2014~16년 서류·필기 전형별로 합격선에 닿았으나 연장자라 탈락한 이는 554명에 이른다. 2014년 3월의 가스공사 채용 공고를 보면, 신입의 지원자격에 나이 제한은 없고 인턴이 만 34살 이하로 묶였다. 당시 가스공사는 학력과 전공 제한까지 없앤 공기업으로 꼽히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은 연소자란 이유로 서류전형을 통과한 전기7급 분야 46명, 기계7급 17명이 필기시험 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 필기 합격자인 기계6급 2명, 경제6급 1명이 면접 기회를 박탈당했다. 함께 합격최저점을 받았으나 ‘젊어서’ 다음 전형 기회를 얻은 이들은 전기7급 쪽 27명을 포함해 모두 40명이었다. 동점자보다 10일 늦게 태어나 합격한 이가 포함됐다. 2014년 하반기 공채 때 전기7급 분야에선 76명이 나이 때문에 같은 점수를 받고 서류 최저합격이 된 7명(전체 120명)과는 다른 운명을 걸어야 했다. 제 역량 탓만 했을 법하다. 이 중엔 나이차가 한달도 안 되는 이들만 또 7명이다. 2015~17년 가스공사 사장은 서울대 이승훈 명예교수(경제학)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이었다. 선임 당시 70살로 공기업 사장 가운데 역대급이었다. 장석효 전임 사장(60, 2013~15년)이 비리 혐의로 해임(해임취소소송 제기해 지난 8월 승소함)된 뒤였다. 철도공사는 2014~16년 서류전형에서만 합격최저점을 받은 100명을 나이로 떨어뜨렸다. 감사원은 이와 같은 사실을 이달 초 감사 결과에 담고 6개 공기업을 상대로 ‘연령에 따른 합격자 결정 기준’을 폐지하라고 주의 통보했다. 최저점 합격자를 나이로 차별해 부분 통과시키는 양태는 강원랜드가 최저 합격점 동점자를 대거 양산해 모두 채용하는 것과 정확히 대비된다. 청탁의 유무를 떠나, 불합격된 이들이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경우 나랏돈으로 보상해줘야 할지 모른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 성차별 “아프리카 담당업무는 (힘들어서) 여성보다 남성이 낫다.” 이사장의 이 한 마디에 당락이 바뀌었다. 1명 뽑는데, 2등이 되고 1등은 되레 탈락했다. 사후 2등의 성적은 조작돼 1등으로 포장됐다. 당초 합격했어야 할 1등은 여성이었다.
대구 동구 신용동 한국가스공사 본사가 거울에 비쳐 일그러져 보이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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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점수 임의로 조정해 합격시켜
“아프리카 출장은 남성이 낫다”
이사장 한마디에 당락 뒤바뀌어 개발도상국 등에 보건의료 지원사업을 펴 인도주의 실현에 기여한다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에서 2013년 1월 벌어진 일이다. 그해 국민권익위원회에 의해 적발됐다. 권익위는 “당시 면접시험 득점순위 2위였던 ○○○의 면접시험 평정표상의 점수를 임의로 조정해 합격시켜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고 득점순위 1위였던 △△△를 탈락시켜 차별한 사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차별의 실제 이유가 ‘여성’이었다는 건 이번 <한겨레> 취재에서 처음 확인된 사실이다. 국제보건의료재단 관계자는 재단 이사장이 남성을 뽑으라고 지시한 것에 더해 “2위를 채용한 이유가 아프리카 출장때문이었다. (채용) 요청 부서에서 ‘그런 부분’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했었다”고 말했다. 재단은 당시 아프리카 지역 담당자를 채용하려 했다. 14명이 지원했다. 올 1인당 연평균 보수가 5141만원으로 다른 공공기관에 적어 보이지만, 근속연수가 평균 4.5년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대우가 좋은 직장이다. 재단 관계자는 “(아프리카 담당은) 출장도 많이 가야 하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편도 비행만 스물 몇 시간씩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잦은 장거리 출장이 여성에겐 ‘힘든’ 일이라는 게 차별의 이유였던 셈이다. 탈락한 여성은 이후 이 재단에 다시 응시해 합격했으나 지금은 퇴사한 상태다. 여성은 특정한 직군에 적합하지 않다는 식으로 차별받는다. 2015년 가스안전공사는 5급 신입 전기·전자 분야 채용 과정에서 남성 응시자보다 성적이 높은 2명의 여성을 탈락시키고 남성 1명을 최종 합격시킨 바 있다. 공사가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당시 순위변경 사유는 ’중장비 방폭시험 장비운영’에 여성은 “부적합”하고, 남성은 “적합”하다고 기술됐다. 대개 성별은 나이나 학력, 학교 차별만큼 노골적이거나 체계적이지 않고 더 암묵적으로 이뤄져 눈에 잘 띄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배제의 또 다른 편엔 단순보조직 중심 여성 채용이 존재한다. 지난해 말 빈부격차와 차별시정위원회는 여성가족부·노동부 등과 함께 ‘용모와 나이를 중시하는 여성채용 관행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면서 “여성채용이 전문직보다 비서·서비스직 등 단순보조적 직종 중심으로 이뤄져 성별 직종·직무 분리현상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이들 직종엔 능력이 아닌 외모로 여성끼리 경쟁하게 한다. 많은 공공기관 이력서나 입사지원서에 사진, 키, 몸무게 기재를 요구하는 건 채용에 여성의 외모가 중요 잣대로 작용하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높은 급여와 직업적 안정성을 갖춘 공공기관을 선호하는 건 여성이건 남성이건 취업준비생 모두 매한가지다. 하지만 30대 공기업에서 신입사원 중 여성 비율은 20% 남짓이다. 조일준 최현준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학력 차별 국립중앙의료원 작용 채용 때
대학 네 등급으로 나눠 차별 입시는 입사를 좌우한다. 10대 성적은 꼬리표처럼 20~30대 구직 때도 따라다닌다. 학력 차별은 ‘능력’, ‘우수한 인재’ 등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다. ‘공공의료의 중심’을 자처하는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해 7월 간호직 6급 채용공고를 낸다. ‘졸업예정자’ 분야에 2017년 2월까지의 간호학과 졸업예정자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게 했다. 신분보장에 신입 연봉이 최소 3180만원(수당 별도)이었다. 84명 모집에 1518명이 몰렸다. 서류 전형에서만 1225명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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