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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07 16:36 수정 : 2017.11.08 09:56

[채용비리 피해자들 첫 직접행동]
2012년 최종면접서 탈락한 지원자
“꼭 합격할 것 같아선지 실망도 커
이제와 보니 청탁자 뽑으려 조작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하려면
열심히 한 사람이 합격해야잖아요

양정아(가명·30)씨는 5년 전 강원도 정선에서 겪은 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2012년 12월 강원랜드 신입사원 공채 최종면접 시험을 봤다. 면접관한테 여러 질문을 받았다. 느낌이 좋았다. 1년 반 가까이 두드렸던 취업문이 열릴 것 같았다.

면접 뒤 정장을 갈아입으러 들른 강원랜드 화장실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하느님, 제발 합격하게 해주세요. 합격만 하면 이곳에 뼈를 묻겠습니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신도가 아니지만 기도가 절로 나왔다.

며칠 뒤 양씨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실망이 컸다. 그간의 탈락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맥이 풀렸고 꿈도 놓게 됐다.

“강원랜드 뒤로는 공채 시험을 안 봤어요. 왠지 이번엔 합격할 거라는 기대가 컸던 것 같아요. 그게 깨지니까 실망도 너무 컸고요.”

강원랜드 신입사원이 되려고 쏟아부었던 노력이 머릿속을 스쳤다. 크리스마스 직후로 예정된 인적성 필기시험 준비를 위해 크리스마스 때도 학교 도서관에서 종일 공부했다. 따로 잡힌 인적성 시험과 최종면접을 보려고 두 차례나 정선을 오갔다. 경북에서 버스로 1박2일이 걸리는 길이었다.

그는 기업 공채 시험을 접고 현재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양씨는 이후 애써 강원랜드를 잊고 살았다. 아픈 기억을 <한겨레>가 되살렸다. 당시 공채 합격자 전원이 뒷배(빽)가 있었다는 보도였다. 청탁 대상자들을 구제하려고 점수를 조작하거나, 크리스마스 데이트도 포기하며 준비했던 인적성 평가를 전형 절차에서 갑자기 제외한 사실을 알기까지 5년이 걸렸다.

양씨가 기도할 때 강원랜드 사장과 임직원들은 응시자 성적 대신 청탁자의 힘을 계산해 합격자를 가리고 있었다. 억울함을 넘어 분노가 치솟았다.

그가 용기 내 참여연대가 추진한 강원랜드 채용 피해자 집단소송에 나선 이유다. 소송에 참여한 공채 탈락자 22명 가운데 강원랜드와 질긴 인연을 가진 이들이 많다. 한 탈락자는 카지노 딜러가 되기 위해 영어와 중국어 등 어학자격증을 여러 개 땄으나 결국 떨어졌다. 그는 현재 다른 카지노에서 딜러로 일한다. 수년 동안 강원랜드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해 취업 가산점을 많이 얻었으나 취업에 실패한 이도 이번 소송에 나섰다. 양씨는 말했다. “열심히 한 사람이 합격할 수 있는 구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꼭 그렇게 되어야 해요.”

지난 9월20일 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활동가들이 춘천지검 앞에서 대규모 부정 청탁·채용 비리 의혹이 일고 있는 강원랜드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강릉) 비서관 출신 김아무개씨의 채용 비리 의혹과 관련해 강원랜드를 압수수색했다. 춘천/연합뉴스
참여연대는 이달 안에 민사소송을 낼 예정이다. 소송을 준비한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정민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당시 강원랜드 공채는 채용공고와 전혀 다르게 진행됐고, 신입사원 선발 절차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응시자들의 신뢰를 침해했다.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초 <한겨레> 보도로 강원랜드 부정채용 전말과 다수 공공기관의 부정채용 사례가 드러났다. 금품청탁 채용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검찰 재수사가 사실상 시작됐고, 문재인 대통령은 ‘관련자 엄벌’, ‘공공기관 채용 전수조사’ 등을 지시했다. 이제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행동’의 첫발을 뗀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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