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29 21:07
수정 : 2018.01.2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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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이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공공기관 채용비리 후속조치 및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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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부정채용 만연
조사대상 79%인 946개 기관 적발
추천 멋대로 늘리고 간부자녀 우대
심사위원 부적절 구성 950건 최다
고강도 제도 개선안
비리 연루 땐 ‘원스트라이크 아웃’
징계시효도 3년→5년으로 연장
블라인드 대상 성별·나이까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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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이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공공기관 채용비리 후속조치 및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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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인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공채 합격자를 최종 선정한 한국원자력의학원은 갑자기 인사위원회를 다시 소집했다. 고위 임원의 지시였다. 인사위원회 결과 애초 합격 점수에 미달했던 인물이 합격자 명단에 포함됐다. 인사위원회는 허울뿐이었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의 고위 임원은 결국 지난해 10월부터 진행된 정부의 채용비리 특별점검에서 적발돼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게 됐다.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채용된 부정합격자는 채용 취소는 물론이고 앞으로 5년간은 공공기관 채용에 아예 응시하기 어렵게 된다.
29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가 발표한 채용비리 특별점검 결과는 우리 사회에 불공정한 채용 관행이 얼마나 만연해 있었는지를 확인시켜줬다. 중앙 및 지방 공공기관, 기타 공직유관단체 1190곳을 점검한 결과 79.5%인 946개 기관에서 채용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여기에는 강원랜드 등 이미 채용비리 의혹이 제기돼 감사원 감사를 받거나 검찰 등의 수사를 받은 기관은 제외됐다. 이 중 한국수출입은행과 서울대병원, 근로복지공단 등 33개 중앙공공기관과 26개 지방공공기관, 8개 공직유관단체에 대해서는 부정청탁과 지시, 서류 조작 등 범죄 혐의가 의심돼 검찰에 수사의뢰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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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비리 내용을 보면, 공공기관 채용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 왔는지 알 수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특정인을 채용하기 위해 애초 채용계획에서 정한 채용후보자 추천배수를 마음대로 변경했다. 한국광해관리공단에서는 내부 고위관계자 자녀를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이후 형식적인 면접을 보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불법과 특혜가 판치는 동안 내부 감시체계는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했다. 적발 사례를 유형별로 보면 심사위원 구성이 부적절한 경우가 950건으로 가장 많았고 규정 미비(842건), 모집공고 위반(629건), 평가기준 부당적용(471건) 등이 뒤를 이었다.
정부는 채용비리 연루 임직원과 부정합격자 퇴출이라는 고강도 대응과 함께 앞으로 채용비리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안을 내놨다. 이번 특별점검에서 적발된 채용비리부터 무관용 원칙 아래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적용해 연루된 현직 임직원과 부정합격자의 퇴출을 진행한다. 앞으로 채용비리 연루자가 발생할 경우에는 즉시 업무 배제와 퇴출 원칙을 명문화하기로 했다. 임원의 경우에는 해임뿐만 아니라 직무정지를 시킬 수 있는 관련 근거를 마련하고, 금품수수와 함께 채용비리로 유죄판결을 받게 되면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또 채용비리 관련 징계시효를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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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합격자의 경우, 채용을 취소할 수 있는 근거가 불명확했는데 정부는 이를 규정에 명문화하도록 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향후 5년간 공공기관 채용시험 응시자격을 제한하는 규정도 마련하기로 했다. 임직원 외에 부정채용을 청탁한 사람의 명단도 공개할 수 있도록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개정도 추진한다. 채용비리가 발생한 기관은 경영평가 점수가 깎이고, 성과급에 불이익을 받는다.
또 채용 전 과정에 감사인이 입회하고, 외부위원 참여 비율을 50% 이상으로 높이는 한편, 채용서류는 인사부서와 감사부서에서 이중으로 보관하는 등 채용 과정 투명성도 높이기로 했다. 채용 인원은 물론 절차별 평가기준과 합격배수 등 상세정보를 포함한 채용 전 과정에 대한 완전공개 제도도 시행한다. 채용 과정에서 공개해서는 안 되는 블라인드 대상을 현행 출신지·가족관계·학교·사진에 성별과 나이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다만, 부정합격자의 경우 정부는 법원 판결 이전에 기소 단계에서도 퇴출할 수 있도록 해 재판 결과에 따라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거나, 징계에 불복해 소송이 잇따르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재부는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주무 부처 주도 아래 철저한 재심사 등을 거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승 방준호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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