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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회장이 서울 한남동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의 비자금을 조사하는 조준웅 특검 사무실로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2008년 4월4일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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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10년 전인 2008년 4월 4일
경영권 불법 승계·비자금 조성·정·관계 불법 로비 혐의
“지시한적 없다” “그런 기억이 없다” “모르겠다”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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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회장이 서울 한남동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의 비자금을 조사하는 조준웅 특검 사무실로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2008년 4월4일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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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한 적이 없다.” “그런 기억이 없다.” “모르겠다.”
수많은 의혹이 쏟아졌지만 단 세 가지 답변이면 충분했다. 포토라인에 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을 강하게 부인했다. 관련 의혹을 보도해왔던 언론을 향해서 불편한 심기도 숨기지 않았다.
오늘로부터 10년 전인 2008년 4월 4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출석했다. 2000년 6월 법학 교수 43명이 삼성 비리 의혹 고발장을 접수한 지 무려 7년 10개월 만에 이뤄진 출석 조사였다. 국내 언론은 물론, 외국 언론들도 긴급하게 관련 소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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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9년 12월 30일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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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수사로 인해 삼성은 경영 쇄신안을 발표했고, 이건희 회장이 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특검 수사와 대법원의 파기환송까지 거치는 곡절 끝에 이건희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이 선고됐다. 대법원의 판결은 수사 과정 내내 이어진 삼성에 대한 특검의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에 논란을 더했다. 이마저도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이 판결 4개월여 만인 2009년 12월 31일 이건희 회장을 단독 특별사면·복권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판결문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사면·복권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법치주의를 크게 훼손한 그 기록들은 당시 수사 과정에 그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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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제기동성당에서 ‘삼성그룹 비리’를 폭로하는 제4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07년 11월26일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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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의
“내 명의 계좌에 삼성 비자금 50억이 있다.”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 2007년 10월 29일 폭로한 ‘삼성 비자금 계좌’ 양심선언은 대중들이 삼성 비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됐다. 비자금 폭로 이후 한 달여 만인 2007년 11월 23일 국회에서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 통과됐다. 이어 2007년 12월 10일 공포된 법률로 이른바 조준웅 ‘삼성 특검’이 임명되고 수사가 시작됐다. 삼성 특검팀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상대로 조사해야 할 수사 범위는 △경영권 불법 승계 △비자금 조성 △정·관계 불법 로비 등 크게 세 가지였다.
-경영권 불법 승계
삼성 에버랜드는 1996년 12월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씨에게 전환사채를 헐값에 넘겨 ‘이재용 그룹 지배권 확보’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이밖에도 삼성에스디에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배정과 서울통신기술의 전환사채 인수 과정, e삼성의 회사 지분 거래의 시기나 방법 역시 에버랜드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었다. 모든 것이 이병철, 이건희에 이어 이재용에게 경영권을 3대 세습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닿아 있었다. 이에 대해 삼성 쪽은 “기획안은 있었지만 이건희 회장은 모른다”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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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자금 특검팀이 삼성 일가의 고가 미술품 보관 장소로 알려진 경기 용인 에버랜드 안내견 학교 안 창고를 압수수색한 날 에버랜드 직원들이 창고로 통하는 안내견 학교 정문 앞에서 취재진의 접근을 막고 있다. 2008년 1월22일 용인/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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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준웅 특검 조사 결과, 불법적 경영권 승계 과정에 이건희 회장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회장은 전환사채 헐값 발행 과정에서 계획을 보고받고 구체적으로 인수자까지 지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특검팀은 이 과정에 이 회장을 비롯한 연루된 전·현직 임원들의 조직적 범죄를 적발하고도 수사에는 미진한 태도를 보였다. 특검팀은 “해당 범죄 사실은 배임 행위로 인한 이득액이나 포탈한 세액이 모두 천문학적인 거액으로, 법정형이 무거운 중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주요 피의자들을 구속 기소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국익론’을 꺼내들었다. “핵심 임원들을 구속하면 기업 경영에 엄청난 공백과 차질을 빚어 경쟁이 극심한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장이 매우 클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비자금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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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행복한 눈물〉.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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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비자금 역사는 유구하다.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차명주식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작품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기업공개 압력에 대응해 그룹 경영권을 지키고 경영권 승계에 따른 상속세를 줄이려는 꼼수였다. 이병철 회장은 1975년 6월11일 상장된 삼성전자 실명 주식을 단 한 주도 보유하지 않았다. 1986년 7월1일 당시 1억3000만 주이던 삼성전자 주식은 이듬해 1월 주식 10주를 1주로 병합하는 액면병합을 거쳐 1300만 주로 줄었다가, 같은 해 9월 유상증자로 90만 주가 발행돼 총 1390만 주가 됐다. 이병철 회장은 이 가운데 단 1주도 자기 명의의 주식을 갖고 있지 않았으면서도 1987년 11월19일 타계할 때까지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행사했다. (
▶관련 기사 : 이병철-이건희-이재용…‘삼성 비자금’의 추억)
이 역사는 2007년에도 이어졌다. 삼성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전 삼성 그룹 법무팀장은 삼성이 비자금을 이용해서 구입한 미술품 목록을 정리한 문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에는 삼성에서 미술품 대금을 어떻게 외화로 지급했는지도 함께 정리돼 있었다. 특히 김용철 전 법무팀장은 2002년 당시 약 100억 원에 달하던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이건희 회장의 자택에 있다는 사실을 이재용 씨에게 들었다고 주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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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가 2일 오후 서울 한남동 조준웅 특검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다. 2008년 4월2일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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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특검은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은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의 소유라고 결론내렸다. 이건희 회장의 자택에 <행복한 눈물>이 걸려 있었던 것은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가 구입한 뒤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씨에게 ‘일단 한 번 걸어두고 감상하라’는 취지로 건넸을 뿐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특검은 홍라희 씨를 조사한 결과, 홍씨와 서미갤러리 등과의 사이에서 수백억 원대 거래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대금이 이건희 회장의 개인 재산이라 “문제될 게 없다”고 밝혔다. 이는 삼성 쪽이 불법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이병철 선대 회장한테 물려받은 개인 재산”이라고 진술한 것에 토대를 둔 결론이었다.
-불법로비
정·재계에서 삼성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막강했다. 특검이 입수한 자료에는 ‘회장 지시 사항’ 문건 외에도 ‘안기부X파일 녹취록’과 ‘삼성 기업 문화 탐구’ 등이 존재했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직접 지시한 문건에는 ‘돈을 받지 않으면 호텔 할인권이나 와인을 주라’는 구체적인 사항도 적혀있었다. 이는 삼성이 조직적으로 정치권 및 검찰 간부 등 고위직 공무원에게까지 포괄적으로 뇌물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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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변호사(오른쪽)와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삼성그룹 비리’를 폭로하는 제4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덕우 변호사(왼쪽)가 ‘삼성물산과 삼성전관(현 에스디아이) 사이에 체결된 비자금 조성에 관한 합의서’라는 문서를 기자들에게 들어보이고 있다. 2007년 11월26일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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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전 삼성 그룹 법무팀장은 이 문건들이 그룹 내 구조조정본부에서 직접 작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삼성의 로비 대상에는 국회의원과 검찰, 언론사뿐만 아니라 전두환까지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삼성 쪽은 “문건은 검토사항일 뿐 실행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문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은 것이다.
특검의 봐주기 수사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1199개와 이곳에 은닉된 4조 5373억 원에 달하는 불법 비자금을 추가로 확인했다. 이 회장은 이 차명 자산으로 세금 1128억 원을 포탈한 것으로 드러났다. (
▶관련 기사 : 이건희 4조여원 차명재산에 결국 ‘쥐꼬리 과징금’)
그러나 특검은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삼성 쪽의 말만 믿었다. 결국 특검은 사건을 검찰에 넘기지 않고 무혐의 처리했다. ‘삼성 봐주기’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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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한겨레> 2012년 2월 15일 치, 2012년 2월 28일 치, 2012년 11월 1일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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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이건희 회장의 불법 비자금은 형제들의 유산 분배 소송으로 이어졌다. 회사의 공금을 빼돌려 착복했던 돈이 ‘합법적인 유산’으로 둔갑된 이상 형제들이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던 것이다. 형제간 재산 분쟁 소송이 이어지자, 삼성 쪽은 “차명주식에 개인 재산이 섞여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또 특검은 <중앙일보> 위장 계열 분리와 계열사 분식 회계 등에 대해서 제대로 된 수사도 하지 않고 무혐의로 발표했다. 이런 이유로 삼성 계열사의 주가가 상승하는 웃지 못 할 상황도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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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남 장관이 이건희 전 삼성회장의 사면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2009년 12월29일 과천/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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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죄부 수사’라는 비난과 관련해 특검은 “지배구조를 유지·관리하는 과정에서 장기간 내재돼 있던 불법행위를 현시점에서 엄격한 법의 잣대로 재단해 처단하는 것으로, 개인적 탐욕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배임·포탈 범죄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이때 이건희 회장을 제대로 처벌했다면, 박근혜 정부에서 경영권 승계를 위해 있었던 박근혜-이재용 간 노골적 정경 유착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결국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은 적어도 삼성에게는 통하지 않게 된 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민진 기자
mj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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