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04 10:19
수정 : 2018.05.0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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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들이 링스 헬기의 위협 비행에 겁을 먹고 배 안으로 숨을 탓인지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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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오늘로부터 9년 전인 2009년 5월 4일
청해부대, 소말리아 해역서 피랍 위기 북한 선박 긴급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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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들이 링스 헬기의 위협 비행에 겁을 먹고 배 안으로 숨을 탓인지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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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에 쫓기고 있다.”
예멘 아덴항 남쪽 37㎞ 해상에서 다급한 구조 요청 신호가 포착됐습니다. 오늘로부터 9년 전인 2009년 5월 4일 새벽 5시 40분께(현지시각) 북한 화물선 ‘다박솔’호가 국제상선 공통망에 보낸 메시지였습니다.
서툰 영어와 북한 말투로 번갈아 가며 보낸 ‘SOS’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우리 해군 청해부대의 문무대왕함이었습니다. 청해부대는 해적의 공격을 받을 뻔한 북한 화물선을 무사히 구조해냈습니다. 청해부대는 소말리아 해적이 북한 화물선인 다박솔호로부터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링스 헬기를 띄워 위협 비행을 유지했습니다.
당시 청해부대 부대장이었던 장성우 대령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선박이라서) 더욱 망설이지 않았다. 즉각 구조에 나섰다”고 말했습니다. 일촉즉발에 상황에서도 한 치의 주저함 없이 구조에 뛰어들게 한 건 다름 아닌 동포애였습니다. 이날 청해부대의 작전은 한반도 분단 이후 우리 군이 북한 선박을 구해낸 첫 사례로 기록돼 우리 국민에게도 깊은 감동을 안겼습니다. 가슴 뜨거웠던 현장은 그날 세 차례에 걸친 70초 동안의 교신 기록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대령의 빠른 결단, 동포를 살렸다
청해부대 1진인 문무대왕함은 2009년 3월 중순부터 소말리아 해역에 파병됐습니다. 소말리아 해역에서 한국 선박을 안전하게 호송하는 게 임무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2009년 5월 4일은 청해부대 문무대왕함이 진해항에서 출항한 지 53일째, 소말리아 해역에서 작전을 시작한 지 18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새벽 5시 40분께(현지시각) 국제상선 공통망을 통해 울려 퍼진 북한 선박의 구조 요청 신호는 근방 해역을 항해하는 모든 선박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해부대가 가장 먼저 구조 신호에 반응을 보인 건 이 신호의 송신자가 북한 상선임을 직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청해부대는 북한말 특유의 억양을 단번에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문무대왕함은 북한 화물선 다박솔호에서 96㎞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습니다. 북한 상선을 맹렬히 뒤쫓고 있을 해적선을 고려하면 망설일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청해부대는 연합해군 사령부에 출동을 통보하고 동시에 링스헬기를 현장으로 급파했습니다. 구조 요청 10분 남짓만인 11시 50분 긴급 출격이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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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아덴항 남쪽 37㎞ 지점에서 2009년 5월 4일 오전(현지시각) 해적에 쫓기던 북한 화물선 ’다박솔’ 호의 구조 요청을 받은 청해부대 링스헬기가 해적선 주변에서 위협 비행을 하는 사이 헬기의 UDT 저격수들이 경고사격 태세를 취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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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스 헬기가 96㎞를 비행해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 20분께였습니다. 이때 소말리아 해적선은 이미 북한 다박솔호의 3㎞ 인근까지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해적선에는 북한 화물선에 올라타기 위한 사다리와 소형 보트 등이 준비돼 있었습니다. 링스 헬기의 출동이 지연됐다면 북한 선원들이 납치될 수도 있었던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링스 헬기는 해적선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곧바로 위협 비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헬기에 탑승한 저격수들은 경고사격 태세를 취했습니다. 이를 확인한 소말리아 해적선은 방향을 틀어 10여 분 만에 현장에서 달아났습니다.
“여기는 대한민국 해군, 귀선의 안전을 보호하겠습니다”
해적선이 달아나는 것을 확인한 뒤에도 링스 헬기는 북한 화물선의 주변을 감시하는 작전 비행을 약 2시간가량 펼쳤습니다. 해적선이 안전거리 이상으로 멀어질 때까지 북한 화물선 선원들이 안심할 수 있게 배려한 것이었습니다. 해적선 퇴치 이후 1분 45초 동안 이어진 남북 교신 내용을 보면 당시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청해 부대 : 여기는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 귀선에서 안심이 되시면 희망하는 침로로 항해해도 되겠습니다 .
*당시 다박솔호는 해적선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국제권고통항로를 벗어나 있었습니다 . 다시 국제권고통항로로 복귀하는 항로를 안내하는 교신입니다 .
다박솔 : 네 . 감사합니다 . 우리는 (배의 방향을 ) 70도로 변침하겠습니다 . 항로 기간 중 계속 좀 유지합시다 .
*청해부대에 계속 교신을 유지해달라는 다박솔호의 요청입니다 .
청해 부대 : 귀선에서 안전할 때까지 채널 11번으로 대기하고 있습니다 .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대한민국 해군을 찾아주시면 되겠습니다 .
*국제상선 공통망의 11번 채널을 유지하겠다는 의미입니다 .
다박솔 : 네 . 감사합니다 .
청해 부대 : 120도로 IRTC(국제권고통항로 )로 진입하기 바랍니다 . 대한민국 해군에서 귀선의 안전을 확인하겠습니다 .
다박솔 : 네 . 알겠습니다 . 몇 마일 더 항해하면 되겠습니까 ?
청해 부대 : 네 . 한 시간 더 항해하면 되겠습니다 .
다박솔 : 네 . 감사합니다 . 우리 더 보호하겠습니까 ?
청해 부대 : 네 . 여기는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 귀선의 안전을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
다박솔 : 감사합니다 . 좀 잘 지켜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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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선의 도주로 안전을 확인한 다박솔호 선원들이 링스 헬기를 향해 손을 흔들며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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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화물선인 다박솔호 선원들은 우리 청해부대와의 세 차례 교신에서 모두 네 차례의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다박솔호는 해적선에 쫓겨 국제권고통항로에서 벗어난 상태였습니다. 청해부대는 다박솔호가 다시 안전한 항로로 복귀할 수 있도록 안내했습니다. 아울러 선원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교신을 유지하면서 끝까지 그들의 안전을 지켰습니다. 모든 상황은 50분 만에 종료됐고, 링스헬기는 낮 1시 30분 문무대왕함으로 복귀했습니다.
해적 잡는 청해 부대
2009년 3월 중순, 처음 문무대왕함의 소말리아 급파 결정이 났을 무렵에는 전문가들의 부정적 시선이 많았습니다. 이역만리 소말리아 해역에서 단 1척의 함정으로 우리 선박을 안전하게 호송한다는 게 무모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악랄하기로 유명한 소말리아 해적을 상대해야 하는 일은 누가 봐도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작전 첫날부터 청해부대는 보란 듯이 덴마크 상선을 해적으로부터 구해내 우리 국민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 뒤 북한 화물선까지 구조하면서 자부심과 동시에 감동도 안겼습니다. 실제 당시 청해부대 부대장이었던 장성우 대령은 “북한 선원들의 우리말로 고맙다는 말을 듣고 국민들이 느꼈을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청해부대 1진 문무대왕함은 2009년 6개월의 파병 기간 동안 모두 7차례 해적선을 물리치고 민간 상선을 구조해냈습니다. 청해부대는 올해 4월 30일에도 가나 해협에서 한 달 넘게 피랍된 한국 선원 3명 전원을 구조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이역만리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해사신문 2009년 5월 8일 치
대한민국해군 공식 블로그
대한민국해군 공식 누리집
강민진 기자
mj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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