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4.01 18:07 수정 : 2018.04.01 19:01

공선옥
소설가

학대받지 않은, 학대받을 일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결코 저 쓰레기장 낚시터에 올 일이 없으리라. 경작금지 구역에서 무단경작을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환대받은 기억이라곤 돈을 쓸 때 외에는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토요일 오전, 부모님 산소에 가는 길. 세상은 꽃 천지. 꽃구경 나온 사람들의 차들일까. 도로에 차들이 빼곡하다. 하늘과 먼 산은 뿌옇다. 미세먼지니, 황사니 해도 봄은 봄이고 꽃구경의 본능을 억제할 수 없는 사람들은 차를 끌고 꽃이 있는 곳으로, 자연이 있는 곳으로 뛰쳐나오듯 나와서 결국 도로 위 차 안에 갇힌다. 셀프 감금된다. 어머니, 아버지 산소 자리는 원래 깊은 산중에 있었다. 길은 겨우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였다. 그 길은 이제 트럭이 지나다닐 정도로 넓혀졌고 시멘트로 포장이 되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되자 그 길을 따라 산 위로 올라온 사람들이 집을 지었다. 나는 한때 ‘나의 살던 고향’이 이대로 가면 없어질 것을 걱정한 적이 있었다. 이제 그 걱정은 안 해도 되게 되었다.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산과 골짜기가 좋다고 여겼는지 집을 지었다. 낯선 전원주택들이 산 위에, 혹은 골짜기에 ‘툭툭’ 들어섰다. 전부 도시 사람들이 지은 것이라 한다. 그들이 상수도와 하수도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몰라도 그들의 주택 옆에서 농사를 짓는 원래의 농부들과 갈등이 생겼다. 골짜기 물이 더러워지는 것은 그들이 온 뒤부터라고 원래의 농부들은 주장하고, 전원주택 사람들은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데도 원래의 농부들이 새로 들어온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내는 모양이다. 경운기를 몰고 산밭에 일하러 갔다가 전원주택 사람들하고 쌈이 난 육촌동생 말인즉슨, 이른 아침에는 경운기 소리도 못 내게 한다, 전원주택 옆에서 소도 못 키우게 한다, 지하수 오염된다고 비료도 농약도 못 치게 한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퇴비포대나 농약병이나 막걸리병 같은 것을 아무 데나 버린다고, 자연 파괴의 주범은 농부들이라고 하더라, 고 분한 김에 마신 낮술에 취해서 사뭇 얼굴이 벌겋다. 그러면서 하는 말, 공기 좋은 시골에서 조용히 살고 싶어 하는 자기들을 우리가 환대하지는 못할망정 학대를 한다나, 뭐라나, 그러잖아요. 그러잖아요, 에 유독 힘을 주는 것은 그러니까 결코 ‘우리’가 ‘그들’을 학대한 적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리라. 익히 알고는 있지만, 동생의 입에서 나온 학대란 말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몹시 괴롭히고 혹독하게 대우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낚시금지 구역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지만 호숫가 곳곳에는 낚싯대를 펼쳐놓은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낚시객들이 머물렀던 자리마다 일회용 부탄가스 캔부터 라면 용기, 빈 술병 등 각종 쓰레기들이 나뒹굽니다….” 기자의 카메라는 쓰레기가 부유하는 호숫가에서 법을 어기고 낚시하는 사람이 쳐놓은 텐트를 밀착 줌인한다.

“경작금지 알림판 주변으로 각종 농작물과 쓰레기들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어디까지 텃밭이고 어디서부터 쓰레기인지 구별이 힘들 정도입니다. 포장마차 구조물과 냉장고 여러 대가 섞여 있고 석면 지붕 조각들도 버려져 있습니다. (…) 서로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표시도 해놨습니다.” ‘불법낚시’와 ‘불법경작’을 고발하는 뉴스를 보는 기분은 참 ‘거시기’하다. 그것을 참담함이라고 하기에는 좀 과하고 민망하다고 하기에는 좀 약하다. 모멸, 곤혹스러움, 미세한 슬픔, 그리고 다다른 것이 학대라는 말. 학대받지 않은, 학대받을 일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결코 저 쓰레기장 낚시터에 올 일이 없으리라. 경작금지 구역에서 무단경작을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환대받은 기억이라곤 돈을 쓸 때 외에는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자기들을 환대하지 않고 학대한다고 내 동생을 학대한 ‘전원주택’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학대’라는 말이 내 동생은 좀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꾸 낮술에 취해서, 우리가 언제 자기들을 학대했다고이, 언제 그랬다고이, 를 반복했던 것이리라. 누구를 학대할 의사가 전혀 없는 내 착한 육촌은 난데없는 ‘학대자’ 소리를 들은 분하고 어지러운 감정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외지 사람들이 와서 버린 빈 부탄가스 캔, 라면 용기, 빈 술병 같은 것이 춤을 추는 저수지에서 낚시를 한다. 낚시를 하면서 다 마신 플라스틱 막걸리병을 저수지로 던져서 쓰레기를 추가한다. 허리 굽은 당숙모는 차를 타고 온 외지 사람들이 애써 가꿔놓은 농작물에 자꾸 손을 댄다며, 관청에서 불법 현수막이라고 제거해서 어디다 쌓아놓은 각종 현수막들을 ‘불법’으로 가져와서 울타리를 친다. 누가 그곳까지 가져와서 버린 가죽 소파도 울타리 한쪽을 장식한다. 가히, 학대의 도미노적 풍경이다. 아, 학대받는 자들의 학대받는 땅인가, 여기 이곳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공선옥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