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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29 20:29 수정 : 2018.04.29 20:44

공선옥
소설가

나는 이제야말로 정말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느꼈다. 지도자라면, 정치 지도자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내 생각을 확인하는 날이었다. 지도자는 민중의 슬픔을, 고통을, 억압을 해소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2018년 4월27일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텃밭에 열무씨를 뿌리다가, 마당의 풀을 뽑다가,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왔다. 밥도 텔레비전 앞에서 먹었다. 정상회담뿐 아니라 정상회담의 의의와 의미를 되짚는 프로를 보고 또 봤다. 2018년 4월27일을 꼬박 그렇게 보냈다. 웃음이 나왔고 눈물이 나왔다. 정치를 생각하면 늘 속이 상했다. 이산가족들이 상봉하는 장면을 보면 눈물이 나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 수십년을 생이별하고 산 사람들을 딱 하루이틀 만나게 해주는 ‘행사'가 오히려 야속했다. 그러면서 이 나라에 과연 정치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 생겼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라면 저런 슬픔, 저런 비정상을 어떻게 수십년간 방치하겠는가 말이다.

2018년 4월27일에 나는 이제야말로 정말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느꼈다. 지도자라면, 정치 지도자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내 생각을 확인하는 날이었다. 지도자는 민중의 슬픔을, 고통을, 억압을 해소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2018년 4월27일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나는 안심하고 살아도 되겠구나. 안심하고 살고 싶고 고통 덜 받으며 살고 싶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

갈 길은 멀어도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바로 그 순간에 타다다다, 소리가 들려온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30분간을 무성영화 찍듯이 손짓과 표정만으로 대화하고 있을 때 나는 새소리가 휘파람새일까, 참새 소릴까. 그날 비무장지대는 고요했을 것이다. 고요했으니까 바람소리, 새소리가 그토록 맑았을 것이다. 그러나 휴전선에서 가장 먼 이곳 전라도는 고요하지 않다. 내가 텃밭에서 일하고 있으면 어느 날은 우리집 인근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 쏘는 소리가 콩 볶는 소리보다 더 다급하게 타다다다다 타다다다, 거린다. 우리집 감자는 총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또 어느 날은 우리 동네와 산을 사이에 둔 동네에 있는 포사격장에서 쿠웅, 쿠웅, 포가 터진다. 쿠웅 소리는 산에 부딪혀서 그 소리를 증폭시킨다. 또 어느 날은, 특히 한-미 연합 훈련이 있는 날은 더욱 심하게, 쌕쌕이가 난다. 광주공항에서 발진한 전투기다. 그것은 때로 밤에도 난다. 듣기로는 전투기는 항공법의 적용도 받지 않는다는데, 전투비행장 가까운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싶다. 어느 날은 타다다와 쌕쌕이가 동시에 ‘발광’(?)을 했다. 전쟁을 멈춘 상태에 있는 나라는, 언제나 전쟁을 재개할 준비를 밤낮으로 65년간이나 하고 있다.

군 훈련장 옆에서 덤덤하게 농사지으며 살고 있는 할머니한테 괜찮냐고, 괜찮았냐고 물었더니, 다아 북한 공산당 놈들한테서 우리를 지켜주는 소리라서 괜찮다는 ‘파격적인' 대답을 들었다. 총 쏘는 소리도, 대포 소리도, 쌕쌕이 소리도 다아 우리를 지켜주는 소리니, 그 소리를 들어야 안심이 될 만큼, 이 나라 민중들한테 북으로부터의 공격 공포는 깊이 내면화되었다. 그 공포심을 해소시키는 것이 정치의 할 일일 텐데, 그 공포를 증폭시키며 민중들을 겁에 질리게 한 정치도 있었다. 심지어는 겁에 질리게 하는 것이 ‘안보의식 고취' 차원으로 둔갑했다. 2018년 4월27일은 그렇듯 민중을 겁 질리게 하는, 우습지도 않은 정치의 시대가 끝나는 날인 것만 같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물음이 생긴다. 애초에 성주에 사드를 들여올 때 북한의 위협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제 북한의 위협이 현저하게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명실상부한 평화의 시대가 되면, 그 사드는 다시 미국으로 돌려줄 것인가. 강정의 해군기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과 중국 간의 힘 대결 속에 낀 한반도가 끝까지 평화의 땅으로 남는 슬기를 어떻게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고저러고 간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회담 덕분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 타고 유럽까지 가는 꿈을 꾸어보기도 하고 평양 대동강변에서 결혼식을 하고 옥류관에서 피로연을 하는 기대를 해보기도 하는 사람들처럼 나도 우선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 두정리(그리고 전국의 수많은 곳에 있을)의 예비군 훈련장이 동네사람들 체력 단련하는 활터장이 되고 광주, 대구, 수원, 청주, 군산 등 대도시 근방의 전투비행장들이 아이들 롤러스케이트장이 되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본다. 적어도 내 텃밭의 여린 열무들이 쿵쿵 대포 소리 말고 맑은 새소리, 바람소리만 듣고도 잘 자라는 세상이 되기를 꿈꾸어본다. 꿈을 꿀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만으로도 한이 풀리는 것만 같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그렇게 살지 못했던 세월이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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