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농식품부 장관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이 나라 농업정책은 농민을 그저 도시민에게 먹을거리를 대주는 존재로서만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이왕에 없는 농식품부 장관 자리 없애 버리고 그 자리에 농민농촌부 장관을 앉히면 좋겠다. 그래서 이 정부가 ‘길님이 엄마, 아부지’들 귀한 줄 아는 정부였으면 좋겠다. 최근 한 지인으로부터 농식품부 장관과 농업비서관이 공석이 된 지 두 달이 넘도록 인선을 하지 않고 있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하루빨리 인선을 해달라는 청원을 올렸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있다가 그 문자를 받아 보고서야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교육부나, 외교부나, 국토부나 행정안전부나, 두 달이 넘도록 장관이 없으면 없다는 것을 알았을 터인데, 두 달이 넘도록 빈자리인데도 몰랐던 것이 혹시 농업부처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그 자리가 공석이란 사실을 나는 왜 몰랐을까. 혹시 이 나라 언론들에 그것이 얼마나 중한 사실인지를 알려주는 기사를 쓰는 ‘농촌 전문기자’가 없어서였을까. 경제 전문기자, 문학 전문기자, 의학 전문기자, 별별 전문기자는 다 있으면서 농업, 농민, 농촌 전문기자 하나가 없어서 말이다. 광주에는 <전라도닷컴>이라는 월간지가 있다. 그 전라도닷컴과 광주민속박물관에서 해마다 ‘전라도말 자랑대회’를 연다. 할머니는 장에 갔다 오는 길에 산기가 있어 길가 아무 집이나 들어갔다. 사람이 없어서 그 집 방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부엌으로 가서 애기를 낳았다. 속치마를 벗어 애기를 감싸 안고서 피가 흥건한 부엌 바닥에 아궁이 재를 덮었다. 집까지는 시냇물을 건너고 산길을 걸어야 할 삼십리 길이었다. 하혈은 계속되고 피가 고인 고무신이 미끄러웠다. 징검돌을 건너는데 미끄러워 애기를 시냇물에 떨어뜨릴 뻔했다. 날은 어두워 오고 산길을 걷는데 피 냄새를 맡은 산짐승 울음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날 그렇게 태어난 애기 이름은 길님이라고 했다. 길에서 태어난 길님이. 평생 자신이 나고 자란 고장인 전라도 말만 쓰고 살아온 할머니가 바로 그 말로 풀어낸 ‘길님이 출산기’를 들으며 참으로 애틋하고 눈물겹고도 따뜻한 기분이었다. 많은 엄마들이 그렇게 장에 갔다 오다가, 밭에서 일하다가 애기를 낳았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그 엄마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애기 낳고 바로 다음날 또 밭으로 일하러 갔다”고. 그리고 그 엄마들은 애기 난 다음날뿐 아니라, 평생 산 모든 날을 일하고 또 일했다. 필시 그 할머니들, 아니 그 엄마들도 그랬을 것이다. 출산을 도울 이라곤 시어머니 혹은 이웃집의 또 다른 엄마들. 출산 시에 ‘어떤 기술적 개입’도 없이 그냥 그렇게 장에 갔다 오다가 남의 집 부엌이나 헛간에서, 밭에서 일하다가 ‘열무 잎삭’ 위나, 그냥 옷 위에 애기를 낳기도 했던 엄마들이었을 것이다. 사고가 난 지 한달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그 엄마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지난 5월2일에 무 수확하는 일을 나갔다가 나주에서 사고를 당한 그 영암 엄마들이 남의 엄마들 같지 않아서. 그 엄마들은 일을 하러 나갈 때 집에 ‘꽃잠’을 두고 간다고 했다. 달콤한 잠을 자고 싶은 마음 ‘꿀떡’같은데도 일을 나가는 이제는 할머니가 된 엄마들. 바로 그 엄마들이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의 ‘그리움의 실체’일 테다. 그러나 그리움 그 자체인 그 엄마들의 노년의 현실은 그리 평화롭지 못하다. 그 엄마들의 자식인 길님이, 길수들이 떠나고 없는 마을에 길님이네 엄마, 길수네 아버지들은 새벽밥을 먹고 당신들을 데리러 온 인부 모집 차인 봉고차나 경운기에 실려 일하러 간다. 일당벌이 하러 간다. 그리고 사고가 났고 평생을 일밖에 모르고 산 아버지, 엄마들이 목숨을 잃었다. 도로는 차만 다니기 편한 도로였다. 그리고 이 나라 모든 농촌의 도로는 거의 그렇다. 차 다니는 도로에 인도는 없다. 농촌에서 도로라 함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평화로운 길이 아니라, 마을과 마을을 끊어놓는 길이다. 내가 다닐 수 있는 길 안에서 품앗이를 하며 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평화는 이제 농촌에 없다. 평생을 일만 하고 살아와서 이제는 좀 쉬면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도 될 노인들이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라도 가서 ‘일당벌이’ 하는 강퍅한 현실이 이 나라 농촌 노인들의 대체적인 풍경이다. 그 노인들의 수가 줄어든 만큼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온다. 농식품부 장관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이 나라 농업정책은 농민을 그저 도시민에게 먹을거리를 대주는 존재로서만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이왕에 없는 농식품부 장관 자리 없애 버리고 그 자리에 농민농촌부 장관을 앉히면 좋겠다. 그래서 이 정부가 ‘길님이 엄마, 아부지’들 귀한 줄 아는 정부였으면 좋겠다. 이 나라 농촌은 도시의 대형마트 식품부나 채워주는 ‘농식품 공장’이 아니다.
칼럼 |
[공선옥 칼럼] 그 엄마들을 위한 정부 |
소설가 농식품부 장관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이 나라 농업정책은 농민을 그저 도시민에게 먹을거리를 대주는 존재로서만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이왕에 없는 농식품부 장관 자리 없애 버리고 그 자리에 농민농촌부 장관을 앉히면 좋겠다. 그래서 이 정부가 ‘길님이 엄마, 아부지’들 귀한 줄 아는 정부였으면 좋겠다. 최근 한 지인으로부터 농식품부 장관과 농업비서관이 공석이 된 지 두 달이 넘도록 인선을 하지 않고 있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하루빨리 인선을 해달라는 청원을 올렸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있다가 그 문자를 받아 보고서야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교육부나, 외교부나, 국토부나 행정안전부나, 두 달이 넘도록 장관이 없으면 없다는 것을 알았을 터인데, 두 달이 넘도록 빈자리인데도 몰랐던 것이 혹시 농업부처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그 자리가 공석이란 사실을 나는 왜 몰랐을까. 혹시 이 나라 언론들에 그것이 얼마나 중한 사실인지를 알려주는 기사를 쓰는 ‘농촌 전문기자’가 없어서였을까. 경제 전문기자, 문학 전문기자, 의학 전문기자, 별별 전문기자는 다 있으면서 농업, 농민, 농촌 전문기자 하나가 없어서 말이다. 광주에는 <전라도닷컴>이라는 월간지가 있다. 그 전라도닷컴과 광주민속박물관에서 해마다 ‘전라도말 자랑대회’를 연다. 할머니는 장에 갔다 오는 길에 산기가 있어 길가 아무 집이나 들어갔다. 사람이 없어서 그 집 방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부엌으로 가서 애기를 낳았다. 속치마를 벗어 애기를 감싸 안고서 피가 흥건한 부엌 바닥에 아궁이 재를 덮었다. 집까지는 시냇물을 건너고 산길을 걸어야 할 삼십리 길이었다. 하혈은 계속되고 피가 고인 고무신이 미끄러웠다. 징검돌을 건너는데 미끄러워 애기를 시냇물에 떨어뜨릴 뻔했다. 날은 어두워 오고 산길을 걷는데 피 냄새를 맡은 산짐승 울음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날 그렇게 태어난 애기 이름은 길님이라고 했다. 길에서 태어난 길님이. 평생 자신이 나고 자란 고장인 전라도 말만 쓰고 살아온 할머니가 바로 그 말로 풀어낸 ‘길님이 출산기’를 들으며 참으로 애틋하고 눈물겹고도 따뜻한 기분이었다. 많은 엄마들이 그렇게 장에 갔다 오다가, 밭에서 일하다가 애기를 낳았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그 엄마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애기 낳고 바로 다음날 또 밭으로 일하러 갔다”고. 그리고 그 엄마들은 애기 난 다음날뿐 아니라, 평생 산 모든 날을 일하고 또 일했다. 필시 그 할머니들, 아니 그 엄마들도 그랬을 것이다. 출산을 도울 이라곤 시어머니 혹은 이웃집의 또 다른 엄마들. 출산 시에 ‘어떤 기술적 개입’도 없이 그냥 그렇게 장에 갔다 오다가 남의 집 부엌이나 헛간에서, 밭에서 일하다가 ‘열무 잎삭’ 위나, 그냥 옷 위에 애기를 낳기도 했던 엄마들이었을 것이다. 사고가 난 지 한달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그 엄마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지난 5월2일에 무 수확하는 일을 나갔다가 나주에서 사고를 당한 그 영암 엄마들이 남의 엄마들 같지 않아서. 그 엄마들은 일을 하러 나갈 때 집에 ‘꽃잠’을 두고 간다고 했다. 달콤한 잠을 자고 싶은 마음 ‘꿀떡’같은데도 일을 나가는 이제는 할머니가 된 엄마들. 바로 그 엄마들이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의 ‘그리움의 실체’일 테다. 그러나 그리움 그 자체인 그 엄마들의 노년의 현실은 그리 평화롭지 못하다. 그 엄마들의 자식인 길님이, 길수들이 떠나고 없는 마을에 길님이네 엄마, 길수네 아버지들은 새벽밥을 먹고 당신들을 데리러 온 인부 모집 차인 봉고차나 경운기에 실려 일하러 간다. 일당벌이 하러 간다. 그리고 사고가 났고 평생을 일밖에 모르고 산 아버지, 엄마들이 목숨을 잃었다. 도로는 차만 다니기 편한 도로였다. 그리고 이 나라 모든 농촌의 도로는 거의 그렇다. 차 다니는 도로에 인도는 없다. 농촌에서 도로라 함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평화로운 길이 아니라, 마을과 마을을 끊어놓는 길이다. 내가 다닐 수 있는 길 안에서 품앗이를 하며 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평화는 이제 농촌에 없다. 평생을 일만 하고 살아와서 이제는 좀 쉬면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도 될 노인들이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라도 가서 ‘일당벌이’ 하는 강퍅한 현실이 이 나라 농촌 노인들의 대체적인 풍경이다. 그 노인들의 수가 줄어든 만큼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온다. 농식품부 장관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이 나라 농업정책은 농민을 그저 도시민에게 먹을거리를 대주는 존재로서만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이왕에 없는 농식품부 장관 자리 없애 버리고 그 자리에 농민농촌부 장관을 앉히면 좋겠다. 그래서 이 정부가 ‘길님이 엄마, 아부지’들 귀한 줄 아는 정부였으면 좋겠다. 이 나라 농촌은 도시의 대형마트 식품부나 채워주는 ‘농식품 공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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