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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24 18:17 수정 : 2018.06.25 11:37

공선옥
소설가

지금, ‘애너벨 리와 나의 행복'을 시기하는 ‘한밤중 구름에서 내려온 바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모든 불안에도 아랑곳없이, 애너벨 리, 아니 한반도의 남과 북은, 북과 남의 ‘사랑’(?)은 ‘하늘의 천사들도, 깊은 바다의 악마들도 애너벨 리의 영혼에서 내 영혼을 떼어놓지 못했던 것처럼' 결코 쉽게 식어버리거나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랏일에 관한 한, 내 소원은 두가지였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는 것, 미군이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자기 나라 미국으로 가버리는 것. 통일이 되면 그놈의 지긋지긋한 분단으로 인한,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늘 전쟁을 생각하고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이 날 것 같아 불안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지금도 통일이 되면 그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고 확신하고 싶다.

그런데도 왜 불안한 거지? 하여간 뭔가가 불안하다. 과연 이 세상에는 ‘평화’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나는 이제 이 사실만은 알 만큼의 나이를 먹은 것 같다. 적어도 평화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나, 완벽한 평화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지난 6월20일치 <한겨레>에 길윤형 기자가 쓴 칼럼 ‘판도라의 상자’를 두 번 연달아 읽었다. 소름이 돋았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 때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이상하고 가장 대통령스럽지 않은 대통령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의 트럼프를 보자면 내가 지레 걱정했던 것보다 경쾌하고 시원시원해서 좋다는 느낌을 더 받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뭔가 모르게 불안하다. ‘완전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급전환되기는 했어도 트럼프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거래의 기술자’가 아닌가. 저 사람이 명색이 그래도 미국 대통령인데, 미국한테 손해날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테지. 늘상 해왔던 한-미연합훈련을 취소하거나, 무기 연기한다고? 종국에는 내 소원이기도 했던 주한 미군의 철수도 있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나는 또 왜 이렇게 뭔가가, 어딘가가 왜 이리도 불안한 거지? 이런 종류의 불안이란 것이 오랜 분단체제에 내가 너무 길들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길이기도 한 ‘종전’선언을 한다고 하는데, 내가 제발 우리나라에서 나가기를 소원해 마지않던 미국 군인들이 정말 나갈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나는 뭔가가 불안하다. ‘정전’을 ‘종전’으로 마침표를 찍고 남북이 평화를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평화만을 생각하며 살아도 시간이 모자랄 세월이 당도하기는 할 것인가.

그럴 때 또 시, ‘애너벨 리’가 생각날 게 뭐람. 한밤중 구름에서 내려온 바람이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얼려버린 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반만큼도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하늘의 천사들이 행복한 그녀와 나를 시기’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길윤형 기자의 칼럼을 보니, 1994년에 한반도가 전쟁의 문턱까지 갔다는 것을 알겠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1994년을 ‘살아냈다'. 윌리엄 페리 미국 국방장관이 증언하길,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전쟁계획을 세우면서 일본에 일본 내의 군사기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단다. 일본의 호소카와 내각의 대답은 ‘예스'였다는 것이다.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 일본은 ‘전범국가'에서 ‘동맹국가'로 되어 있다. ‘한-미-일 동맹'이라는 말이 나는 무섭다. 그 말은 북한, 혹은 북-중, 더 나아가 ‘북-중-러 동맹’을 떠올리게 하고 자연스럽게 뒤따라 생각되는 것이 평화보다는 온갖 살상용 무기와 전쟁인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자위대를 ‘우리 군'이라고 태연히 말한다. 미국에 의해 동맹국가로 전환됐지만 엄연히 ‘전범' 국가인 일본의 총리가 ‘우리 군'을 말할 때 또 나는 당연히 그들의 침략을 떠올린다.

‘미-일 동맹'은 한반도 평화 이후에 대한, 우리 입장에서는 아주 기분 나쁜 설계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한반도 평화의 뒷배경에 일본의 강화된 군사력 같은 거 말이다. 유사시에 미국의 요청에 ‘예스'할 일본이 항상 거기에 있다는 것이 미국으로서는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느냐마는 나한테는, 우리한테는 영 찝찝하고 개운하지가 않을 뿐만 아니라, 끔찍한 일이다. 중국은 또 어떤가. 6·25 전쟁 때 중국군은 왜 한반도의 전쟁에 ‘인해'를 이루며 참가했을까. 한반도에 전쟁이 나던 해에 중국은 군대를 끌고 가서 티베트를 중국으로 만들어버렸다.

지금, ‘애너벨 리와 나의 행복'을 시기하는 ‘한밤중 구름에서 내려온 바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이토록 나를 불안하게 하는가. 그 모든 불안에도 아랑곳없이, 애너벨 리, 아니 한반도의 남과 북은, 북과 남의 ‘사랑’(?)은 ‘하늘의 천사들도, 깊은 바다의 악마들도 애너벨 리의 영혼에서 내 영혼을 떼어놓지 못했던 것처럼' 결코 쉽게 식어버리거나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화만 말하고 살아도 시간이 짧은 세월이 올 때까지만이라도 잡은 손 더욱 굳세게 잡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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