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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21 21:10 수정 : 2018.10.22 16:31

공선옥
소설가

이 나라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패키지여행’처럼 누군가의 치밀한 각본 속에서 ‘움직여지는’ 것에 다름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움직여짐’에 이의를 제기하면 소외와 냉대에 시달릴 것이 두려워 패키지여행객들이 가이드가 안내하는 대로 ‘얌전히 움직여 줬던’ 것처럼…

가을 접어들어서 화나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진짜 화를 냈다.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을 보러 옛 국군광주병원으로 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애초에 화낼 준비를 하고 갔던 것 같다.

추석날 우리집에 온 한 화가에게서 들은 말이 있었다. 광주 사람들은 아직도 통합병원이라고 부르는 옛 국군병원이 5·18 사적지인데도 외국인 작가로 하여금 병원 안 거울을 다 떼어다가 병원 옆 국광교회(국군광주병원교회)에 설치하도록 허락했다, 분노할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씩씩거리는 기분으로 그곳에 갔고, 폐허의 병원에 설치된 작품을 보고 문제의 국광교회 거울 설치작품도 보았다. 화는 그 과정에서 냈다. 젊은 여성 도슨트에게 이 병원이 어떤 건물이며 80년 5월에 이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물으니, 그는 그것까지는 자신이 알 수 없고 자신이 할 일은 작품만 설명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 대목에서 그만 벌컥 화를 내고 말았던 것이다. 이 병원에서 시민군 김영철의 몸과 영혼이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말하다가 왈칵 울음까지 쏟았다.

그 와중에 경비원이 와서 그렇게 잘 아시면 당신이 도슨트 하라는 막말까지 들으며 국광교회로 건너갔는데, 사적지인 병원에서 거울을 떼내서 이곳에 설치하도록 누가 허락했느냐고 물으니, 그런 것은 자신들에게 묻지 말고 5·18재단에다 물으라고 언성을 높이며 나오세요, 나와요, 위압적으로 나를 전시장 밖으로 끌어내는 ‘상황극’까지 연출되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냐고 물으니, 자신들은 용역업체에 단기 고용된 알바생들이라고 한다. 그 대목에서 내 기가 팍 죽었다. 단기알바생! 그 얼마나 가슴 시린 단어란 말인가! 자식뻘인, 그리고 내 자식처럼 저들도 단기알바생이라니! 내 ‘화’라는 것이 저들에게 얼마나 한 폭력이며, 갈데없는 꼰대 어른의 ‘갑질’이란 말인가!

아줌마 셋이서 처음으로 ‘패키지여행’이란 것을 갔다. 간 곳은 베트남 다낭이다. 그곳에 가보고서야 알았다. 다른 곳은 안 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베트남 다낭은 목하 한국 사람 천지라는 것을. 말만 들었던 패키지여행이란 것이 그런 것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것이 이름난 여행사 이름을 빌린 거대한 판촉행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패키지여행을 온 한국 사람, 정확히 말하면 한국의 서민들은 한국 여행사 이름을 단 관광버스를 타고 가이드가 짠 치밀한 여정 혹은 계획대로 ‘움직여진다’. 화는 3박4일의 여행 마지막날에 터지고 말았다. 한국인 가이드가 왜 3일 내내 ‘노니’와 ‘침향’에 대해서 그렇게도 줄기차게 설명을 했는지도 마지막날에야 알게 되었다. 가이드가 마지막날 여행객들을 데리고 간 곳은 ‘선물판매장’이었고 나는 거기서 거금 5만원짜리 노니차 한 곽을 샀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다낭 외곽 ‘노니와 침향’ 연구소였다. 그곳 또한 연구라는 이름을 단 제품판매장. 내 화는 그곳에서 인내의 한계선을 넘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밤 후회했다. 3일 내내 우리에게 ‘판촉행위’를 했던 그 가이드가 실은 여행사, 혹은 여행사가 하청을 준 회사의 단기알바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 화에 얼굴이 샛노래지던 내 자식뻘의 가이드는 또 ‘물건’을 팔지 못해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

가을이 되어 비염 증세가 있다고 하니, 동네 사람이 노니를 먹어보라고 한다. 텔레비전 건강정보 프로그램에서 이름도 복잡한 식품인지, 약인지를 방송한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조금 전에 방송하고 있던 바로 그 식품인지 약인지를 판매하는 홈쇼핑 채널을 발견했다. 시골 사람인 우리 동네 사람도 노니가 방송에 나왔고 마침 홈쇼핑에서 그것을 팔길래 샀다고 한다.

다시 저 뱃속 아래서부터 스멀스멀 화의 기운이 올라온다. 아 그런 것이구나, 그렇게 세상이 돌아가고 있구나. 이 나라 당대의 미디어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빈번하게 노출시키는 품목들이 실은 그렇게들 사람들에게 당도하게 되는구나. 그리고 실은 이 나라 사람들의 삶의 꼴이 그렇게 만들어져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나라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패키지여행’처럼 누군가의 치밀한 각본 속에서 ‘움직여지는’ 것에 다름 아닐 수도. ‘움직여짐’에 이의를 제기하면 바로 배제의 위협이, 혹은 소외와 냉대에 시달릴 것이 두려워 패키지여행객들이 가이드가 안내하는 대로 ‘얌전히 움직여 줬던’ 것처럼, 우리는 이 나라의 ‘짜고 치는 뭣’의 작동 논리에 우리의 몸을 맡기고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화를 패키지여행으로 풀어가며 살고 있는지도. 저 노니차를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나 노니차는 죄가 없음도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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