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손꼽히는 명문고 가운데 하나인 수성구의 한 고교 진입로에 들어선 입시학원. 이 학교 부근에는 골목길마다 크고 작은 입시학원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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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불평등] 기획-“개천에서 용 안난다”
대졸 학부모·명문대 진학 2배 ↑
서울뿐 아니라 대구와 대전에서도 사는 지역에 따라 학력이 차별적으로 재생산되는 ‘거주지 분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방 대도시에도 곳곳에 ‘강남’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구의 강남, 수성구=통계청의 ‘2005 인구주택 총조사’를 바탕으로 대구 8개 자치구의 학력을 분석해 보니, 수성구의 대학생 학부모 연령대(50~54살) 인구 가운데 4년제 대학교 졸업 이상의 고학력자는 26.19%로, 같은 연령대 대구 전체 평균인 12.50%보다 갑절 이상 많았다. 가장 낮은 구(3.81%)의 6.9배에 이르는 수치다.
대구 수성구고위 공무원 44% 거주…아파트 값 훨씬 비싸 이런 격차는 자녀 세대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20~24살 인구 가운데 4년제 대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졸업한 사람 비율이 수성구는 62.39%인 반면, 가장 낮은 구는 36.19%에 그쳤다. 2005~2006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수(김영숙 한나라당 의원 자료)를 일반계고 졸업자 수(2006 대구교육통계연보)와 견줘 본 결과 수성구의 1천명당 서울대 합격자 수는 38.34명으로, 대구 전체 평균(17.36명)보다 갑절 이상 많았다. 또 정만진 대구시교육위원이 대구시교육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초·중·고교생 1만명당 입시학원 수는 수성구가 41.7개로 대구 전체 평균인 29.12개보다 훨씬 많았다. 중학생 가운데 급식비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 학생 비율은 수성구가 6.0%로, 가장 높은 구(20.4%)의 3분의 1에도 못미쳤다. 이와 함께 대구시의회 김충환 부의장이 시에서 제출받은 자료에서는, 대구시청 소속 서기관급 이상 공무원 121명(구청 소속 제외)의 43.8%인 53명의 주소지가 수성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력 있는 계층이 수성구로 몰리면서 아파트값에도 격차가 뚜렷해지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 자료를 보면, 수성구의 아파트 평당 매맷값은 593만원(12월1일 기준)으로, 2위인 달서구(485만원)나 대구 전체 평균(483만원)보다 100만원 이상 높았다. 대전은 동서 격차=대전 서부는 새도시 지역인 서구와 유성구, 동부는 옛 도심인 중구와 동구, 대덕구를 말한다. 대전 서부
특목고 진학 ‘싹쓸이’…“거주지 분리 심화” 학부모 연령대인 40~59살 인구 가운데 4년제 대학교 졸업 이상의 고학력자 비율이 서부는 33.94%, 동부는 14.70%로 갑절 넘게 차이가 났다. 유기홍 열린우리당 의원이 대전시교육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서부의 2005~2006학년도 서울지역 4년제 대학교 진학률은 12.4%로, 동부(5.9%)의 두 배가 넘었다. 특목고 입학률에서는 더 큰 차이가 났다. 시교육청의 ‘2007학년도 대전외국어고와 대전과학고 자치구별 합격자 현황’을 보면, 서부 출신 비율이 외고는 76.3%, 과학고는 84.7%에 이르렀다. 특히 대전 전체 입시·보습학원의 38.9%가 밀집한 서구 출신은 외고 합격자의 48.47%, 과학고 합격자의 45.83%를 차지했다. 거주지 분리 현상을 연구해온 서울대 지역개발조경연구소 최은영 연구원은 “거주지 분리와 학력자본 재생산의 차별화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자녀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세습에 가까울 정도로 고착화해, 건강한 사회의 기반이 되는 ‘기회의 균등’을 말뿐인 구호로 전락시킬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대구 대전/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대구 수성구와 비수성구비교/대전 동서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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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성구로 몰리나 “한반서 3~4명씩 의대 진학하니…”
뛰어난 교육 인프라…이사 줄줄이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주부 허아무개(41)씨는 지난 9월 대구 북구에서 수성구로 집을 옮겼다. 북구에 눌러 살면서 아파트 평수를 늘려 이사할 마음도 없지는 않았으나, 꿈을 접었다. 아이들 교육 때문이다. 같은 평수의 집으로 옮기면서 9천만원을 더 들여야 했지만 후회는 없다. 워낙 사교육 여건이 좋은데다, 주변에 명문대를 많이 보내는 학교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허씨는 이사 뒤 중학교 1학년인 아들과 함께 수성구에서도 잘나간다는 영어학원에 등록하려고 찾아갔다. 그러나 원한다고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2시간 동안 듣기와 영어 에세이, 독해, 회화 등의 시험을 치렀다. 결국 퇴짜를 맞았다. 한 수학·과학 전문학원에서도 “너무 선행학습이 안 돼 있다”며 등록을 받아주지 않았다. 허씨는 “이전 학교에서는 반에서 상위권이던 아들의 성적이 중위권으로 떨어진 것보다 학원에서 퇴짜를 맞은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름난 학원에 등록하기 위해서라도 올 겨울방학 때는 바짝 선행학습을 시킬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수성구의 교육열과 사교육 여건, 명문대 진학률은 서울 강남구 뺨친다.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는 “수성구는 대구의 강남구”라거나 “범어동은 대구의 대치동”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세 자녀를 둔 정아무개(46·수성구 범물동)씨는 “큰아이의 경우 학원강사에게 한 달에 200만원을 주고 수학 개인과외를 시킨 적이 있는데 아이가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 같아 고액을 들였어도 아깝지 않더라”고 말했다. 정씨는 세 아이의 사교육비로 평소에는 300만원 안팎, 고액 과외를 시킬 때는 500만~600만원을 쓴다고 털어놨다. 박아무개(48·수성구 범물동)씨는 “수성구에는 가까운 곳에 학원이 많고, 강사의 질도 높아 별로 힘들이지 않고 입맛에 맞는 학원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수성구에서도 입시명문고로 꼽히는 ㄱ고 3학년 김아무개군은 “우리 학교에는 의대와 약대를 목표로 하는 자연계 상위권 학생들이 특히 많이 몰린다”며 “지난해 입시에서 의대에 진학한 사람만 한 반에 3~4명씩 된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한아무개군은 “고교 때 전교 10등 안에 드는 친구들은 거의 100%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 쳐서 들어가는 영어·수학 전문학원에 다녔던 애들”이라고 전했다. 명문대에 진학하려면 수성구로 들어가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교육 이사’가 줄을 잇고 있다. 달서구에 사는 초등학생 학부모 백아무개(40)씨는 “올여름 수성구의 대규모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자 주변에서 괜찮게 산다는 집 아이들은 거의 수성구로 전학을 갔다”며 “나도 경제적 능력만 되면 수성구에서 학교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수성구 집중 현상을 두고 대구시의회 김충환 부의장은 “잘사는 사람이 몰리면서 좋은 학군과 학원가가 형성되고, 뛰어난 교육 인프라가 다시 ‘교육 이사’를 부추기면서, 수성구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은 진입하기 힘든 공간이 되고 있다”며 “이런 집중 현상은 나머지 지역을 계속 낙후하게 만들어 대구의 발전을 가로막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구/이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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