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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15 17:58 수정 : 2007.10.15 17:58

조정래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조정래칼럼

“북쪽의 개혁·개방을 유도한다는 말을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쓰지 않겠다.”

‘10·4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 이유는 개혁·개방이라는 말에 대해 북쪽의 거부감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그런 결정이 있기까지에는 그 전 단계가 하나 있다.

방북 이틀째인 10월3일 점심은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에서 남쪽 일행 전부가 대통령과 함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예정 시간보다 한참 늦게 나타난 대통령은 웃음기라고는 전혀 없는 얼굴로 예정에 없는 연설을 시작했다. 예정에 없었으니 원고가 있을 리 없었다. “우리가 무신경하게, 별 생각없이 쓰고 있는 개혁·개방이라는 말을 북쪽에서는 아주 귀에 거슬리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역지사지해보면 북쪽의 그런 태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역지사지해서 그런 말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은 10분이 못 되는 짧은 연설 속에서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자’는 역지사지라는 말을 몇번이고 반복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북쪽에서는 개혁·개방이라는 말을 지난날의 ‘햇볕정책’과 똑같이 생각해서 자기네 체제를 무너뜨리고 사회를 혼란시키려는 불순한 뜻으로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대통령은 그 공개적 발언을 통해 자신의 진심을 표출시킴으로써 정상회담이 순탄하게 풀려나가는 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서울에 돌아와 다시금 평화공존·공동번영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과 북쪽에 확인시켰다.

우리는 지난날 역지사지해서 ‘햇볕정책’을 화해·협력이라고 바꾸었다. 남쪽에서 유행하는 말 중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스트레스’를 북쪽에서 받지 않도록 우리는 다시 개혁·개방을 다른 말로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 말은 우리 남쪽이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처음 쓴 것은 옛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였다. 그리고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유명한 말을 앞세우고 개혁·개방의 쌍두마차에 채찍질을 가한 것이 중국의 덩샤오핑이었다. 중국의 눈부신 발전을 지켜보고 있던 베트남이 마침내 ‘도이머이’ 깃발을 들어올렸다. ‘도이머이’는 바로 중국을 따라배운 개혁·개방 노선이었다. 중국과 베트남은 체제를 포기하지 않고 경제 발전을 이룩해 나아가고 있다.

북한은 왜 중국과 베트남에서 배우지 못하는가? 남쪽을 믿지 못해서? 이번 ‘10·4 평화번영 선언’에 대해 남쪽 국민들의 지지는 75%를 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이런 지지를 ‘절대적 지지’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남쪽 국민들 절대다수는 선언문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고, 남과 북이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며 서로 돕고 함께 발전해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북쪽은 지금부터라도 어서 중국과 베트남처럼 개혁·개방하기를 바란다.

중국에 우리의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고, 베트남에 철강공장이 지어지고 있다. 그런데 왜 같은 민족인 북쪽에 그런 것이 안 생기겠는가. 그 열쇠는 전적으로 북쪽이 쥐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이 하듯이 우리 남쪽 기업들이 마음놓고 투자할 수 있도록 모든 제도와 규정을 어서 정비해야 한다. 그러면 남쪽 기업들은 정부가 말려도 다투어 북쪽에 투자할 것이다. 남쪽과 북쪽이 서로 당당하게 이익을 얻는 것, 그것이 공동번영 아닌가. 10·4 정상회담은 새로운 통일역사의 창조다. 북쪽은 괜한 의심과 오해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굳세게 개혁·개방에 나서야 한다. 오직 그 길뿐이다.

조정래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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