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살인은 편견을 먹고 자란다]
① 동생 잃은 언니의 깨달음
② ‘스토킹 남편’ 성폭행 신고 당일 사망한 22살 엄마
‘스토킹 살인은 편견을 먹고 자란다’ 기획 기사는 스토킹이 어떻게 잔혹한 살해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세 건의 범죄 스토리를 통해 유가족과 지인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남편의 폭력으로 이혼을 결심하고 홀로서기를 준비하던 스물두살 어린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이 여성이 사망한 날은 이혼소송 중에도 끈질기게 자신을 찾아오던 남편을 성폭행으로 경찰에 신고한 당일이었습니다.
집착 심해진 남편의 협박
이혼소송 중에도 성폭행 계속
경찰 신고했지만 보호는 없었다
결혼 뒤 통제와 집착
“사람들이 아내 보는 것도 싫다”
시간 지날수록 폭력도 심해져
부엌칼로 위협, 경찰 출동하기도
폭력에서 달아나자 ‘스토킹’
어린 딸 내세워 “집에 들어와라”
택배 주소 추적해 거처 알아내
경찰에 성폭행 신고 사실 듣고
흉기 들고 은신처 찾아가 기어이…
경찰의 어이없는 대응
피해자 보호나 즉각 분리커녕
“아내가 신고했다” 남편에게 연락
가해자에게 유리한 조언까지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재형은 사업 접대를 빌미로 룸살롱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최은미를 자신이 원하는 틀에 가둬놨다. 집과 직장만 오고 가도록 했다. 친구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매우 싫어했다. 한 사업체 직원에게 “사람들이 은미를 쳐다보는 것도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 통제와 집착이었다. 기어코 일이 터졌다. 지난해 여름, 이재형이 룸살롱 여성 종업원을 때리고 성폭행하려다 발각된 것이다. 이재형은 합의금을 내기 위해 최은미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최은미는 그제야 남편이 어디서 뭘 했는지 알게 됐다. 남편에게 가졌던 신뢰는 산산조각 났다. 부부 사이는 한순간 무너졌다. 최은미는 남편의 사랑도 집착도 모두 싫었다. 퇴근 뒤에 집에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그즈음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곤 했던 이유다. 최은미의 친구 김보미는 “그동안 남편한테 복종하던 은미가 핏대를 세우고 반발을 했다. 이재형의 집착이 더 심해지면서 폭력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폭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커졌다. 지난해 9월23일, 경찰이 이재형과 최은미의 집에 출동했다. 이재형은 부엌에서 칼을 꺼내 최은미를 위협했다. 사건 직후 최은미를 만났던 한 지인은 “은미 목에 칼을 댄 붉은 자국을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은미는 경찰에 “남편에 대한 처벌이나 임시조치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건을 단순한 부부폭력으로 보고 형사처벌 대신 접근 금지 등의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가정보호사건으로 분류해 수원지검에 송치했다. 최은미 사망 즈음 이 사건은 수원지방법원에 이송된 상태였다. 이재형과 최은미는 계속 함께 살았다. 칼로 위협한 지 한달도 지나지 않은 10월 중순 어느 날, 이재형은 최은미의 옷을 모조리 벗기고 여섯시간 동안 때렸다. 그렇게 폭행해 멍이 들었는데도, 이재형은 최은미에게 마스크를 끼고 가게에 나가 일하도록 강제했다. 최은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 폭행에서 도망치자 시작된 남편의 스토킹 10월20일, 최은미는 휴대전화도, 이제 막 기어 다니는 딸도 집에 두고 탈출했다. 이재형은 김보미에게 전화했다. “은미가 자꾸 잠수 타고 약 올리면 내가 이혼소송 낼 거다. 위자료 청구하고 딸도 뺏겠다. 양육비도 엄청 올릴 거고 인생을 나락 끝까지 내려버리겠다”고 큰소리쳤다. 덜컥 겁이 난 김보미는 최은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이 있는데 그냥 끝낼 수는 없잖아. 어차피 피한다고 해결 안 돼”라며 자신의 집에서 이재형을 만나라고 설득했다. 며칠 뒤 김보미의 집 식탁에 이재형과 최은미가 마주 앉았다. 김보미는 방으로 자리를 비켰지만 행여나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들릴 듯 말 듯 한 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재형은 “조용히 이혼해줄게. 대신 숙려기간 동안 네가 딸 옆에 있어줘”라고 말했다. 무서워서 말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최은미는 “집에 따라갈 수 없어요. 언제 또 이렇게 될지 너무너무 무서워요”라며 거부했다. 이재형은 딸을 언급하며 집요하게 설득했다. 딸이 걱정됐던 최은미는 결국 이재형과 함께 화성시 신혼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김보미에겐 “설마 죽기야 하겠어.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게. 꼭 나 구해줘”라는 말을 남긴 채였다. 하지만 최은미와 화성 신혼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재형은 다시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부었다. 최은미는 익숙해지지 않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신혼집에 돌아가서도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결혼하면서 왕래가 끊겼던 최은미의 친정에서 이재형의 폭행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집에 들이닥친 친정 가족들은 “은미가 잘못했다”는 이재형을 뿌리치고 최은미를 친정으로 데리고 갔다. 최은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재형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업도 다시 시작할 겸 조용히 서울 강남 한 빌라로 거처를 옮겼다. 효과가 있었다. 한동안 이재형은 최은미가 계속 친정에 있는 줄 알았다. 최은미는 변호사를 통해 이혼 절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내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이재형의 집착은 더욱 심해졌다. 10월24일 새벽, 김보미에게 전화를 걸어 “나 지금 죽을 거다. 유서는 은미에게 전해달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김보미의 신고로 현장에 경찰이 출동했다. 술병이 널브러진 집에서 이재형은 잠이 들어 있었다. 10월31일, 이재형과 최은미는 이혼 서류를 제출했다. 협의이혼 숙려기간이 시작됐다. 이재형은 그제야 아내가 친정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재형은 포털 사이트에서 최은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로그인했다. 한참을 뒤지자 택배 주문 내역이 눈에 들어왔다. 강남 빌라 주소를 확인한 이재형은 최은미의 은신처에 여러 번 찾아갔다. “집에 돌아오라”며 붙잡았다. 최은미는 포털 사이트까지 뒤져서 자신을 찾아낸 남편의 행동에 몸서리가 쳐졌다. ■ 성폭행 신고 당일에 ‘살해’ “구질구질하게 매달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이미 끝났어.” 이혼 숙려기간에 들어가자 최은미는 이재형과 함께 있을 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조금 안정을 되찾은 듯 보였다. “오죽 네가 좋으면 그러겠어. 딸 생각해서 같이 살면 좋지 않겠냐”는 친구 김보미의 말에도 최은미는 단호했다. 예전에는 남편이 곁에 없을 때도 두려움에 남편 욕조차 하지 못했던 최은미였다. 가정법원은 최은미가 협의이혼 숙려기간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딸을 돌봐야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최은미는 매주 토요일 화성 신혼집에 들렀다. 김보미가 “또 맞으면 어떡해. 언제 행패를 부릴지 알고”라며 걱정해도 “어차피 이혼 서류 제출했고, 숙려기간 중에 또 손찌검하면 제 살만 깎아먹는 짓이야. 이제 나한테 함부로 못할 거야”라고 되레 김보미를 안심시켰다. 또 다른 친구의 증언도 비슷하다. “은미야, 강남에 계속 있으면 남편이 찾아올 텐데 걱정 안 되니”라고 묻자 “경찰에 신고하면 괜찮을 거야”라고 담담하게 답했다고 한다. 죽기 사흘 전의 일이다. 이재형을 그렇게나 두려워하던 최은미는 왜 이혼소송 중에 두려움을 떨쳐낸 것처럼 보인 걸까. “만성적으로 가정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들은 상황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학습된 무기력, 우울증 등이 동시에 진행돼 자신이 처한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죠. 그래야 계속 살 수 있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무서워서 살 수가 없죠. 이런 게 자기방어적 인지 왜곡입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의 말이다. 자기방어적 인지 왜곡 상태에서 최은미는 미래를 하나씩 그려나갔다. “우리 딸 돌잔치 해줘야지.” 3개월이나 지나야 딸 생일이었지만 장소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돌리기도 했다. 이때가 죽임을 당하기 2주 전이었다. 11월25일은 토요일이었다. 최은미는 늘 그랬듯 딸을 보러 나섰다. 하지만 최은미의 방어막이 이재형에 의해 다시 한번 처참하게 무너졌다. 또 성폭행을 당했다. 다음날 새벽, 최은미는 화성 신혼집을 빠져나와 급히 서울로 왔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엄마, 이재형이 또 그러려고 해’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경찰에 “칼을 든 남편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신고했다. 최은미는 혼자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을 찾아 진료를 받았다. 이후 경찰 안내에 따라 경찰병원으로 옮겼다. 성폭행 증거를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검사가 끝나고 최은미는 강남 집으로 돌아갔다. 곧이어 흉기를 든 이재형이 집 앞에 찾아왔다. 딸 돌잔치에 함께 서 있었어야 할 두 사람 가운데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특수강간과 살인으로 기소돼 재판정에 섰다. 김보미에겐 자책과 후회가 남았다. “은미가 ‘나 진짜 죽어’라고 말했을 때 은미 머리채를 잡아서라도 데리고 있었더라면.” ■ 총체적 난국이었던 경찰 대응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최은미의 죽음 뒤에는 경찰의 매개가 있었다. 11월26일 이른 아침 최은미의 성폭행 신고를 받은 서울 수서경찰서는 오전 9시께 이재형에게 곧장 전화를 걸어 신고 사실을 전달했다. 당시 이재형과 20여분 동안 대화를 한 수사관은 “성폭행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으면 빨리 사진으로 찍어 남기라”는 조언까지 해줬다. 경찰은 최은미가 죽음에 이른 뒤 이러한 사실을 부모에게 알렸다. 최은미의 부모는 “상을 치르고 경찰서에 갔더니 ‘당일 아침에 (이재형에게) 연락했다고 하더라. 경찰은 보호조치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은미가 거절했다’는 이야기만 했다. 당사자가 거절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수서경찰서의 대응은 다른 경찰에게도 의아한 일이었다. 가정폭력 사건을 오랫동안 담당한 한 경찰 관계자는 “피해사실 조사를 마치고 피해자 안전이 확보된 뒤에라야 가해자 조사가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현장에서 가정폭력 가해자의 위험도를 신중하게 조사했다면 죽음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안이한 대응이었다”고 지적했다. 여성계 역시 흉기를 이용한 가정폭력 전력이 있었음에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즉각 격리하지 않은 경찰을 비판했다. 조재연 한국여성의전화 인권문화국 인권팀장은 “경찰병원에서 검사를 받을 때부터 피해자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져 위험을 면밀하게 파악했어야 했다. 입원을 권유하거나 쉼터를 안내할 수도 있었다. 최소한 당일 집에 경찰이 동행하거나 핫라인을 연결하는 등 좀더 적극적인 조처가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이재형은 3월19일 열린 1차 공판에서 살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특수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이재형의 변호인은 당시 목에 남아 있던 ‘키스 자국’을 찍었다는 사진을 증거로 제출했다. “다툼이 있었던 건 맞지만 방 안에서 화해하고 관계를 회복해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김보미는 “내가 아는 은미는 절대 이재형과 잘 사람이 아니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재형은 사건 한달 전부터 받은 정신과 진료 기록도 증거로 제출했다. 심신미약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이 이뤄졌다고 주장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 “은미 딸 어떻게 데려오나” 애타는 은미 가족들 “제가 교회 가는 길에 ‘엄마, 우리 가족 행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줘’라고 은미에게서 온 문자가 마지막 문자가 됐어요.” 최은미의 어머니는 그날 일을 떠올리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한참 연락이 안 되다가 오후 6시쯤 전화통화가 됐는데, 밝은 목소리로 ‘엄마 자느라 그랬어’라며 안심시켰다. 은미가 양치질 중이어서 말소리가 잘 안 들려 ‘다시 전화해’ 하고 끊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최은미는 30분 뒤 이재형에게 살해당했다. 유가족들은 황망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딸이 이재형에게 맞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미처 손을 쓸 시간조차 없었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최은미의 딸은 이재형의 어머니가 데리고 있다. 최은미가 죽으면서 이재형이 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살인사건 피해자의 아이를 가해자의 어머니가 데리고 있는 셈이다. 최은미의 부모는 손녀를 데리고 오고 싶지만 “수소문해서 알아보니 (다시 데려오기) 쉽지 않다고 하더라”며 전전긍긍했다. “은미가 혼자 돈을 벌면서도 형편이 어려운 아기 엄마들에게 돈과 기저귀, 분유를 보내 도와줬다는 이야기를 은미가 떠나고 나서야 들었습니다. 우리 딸은 그런 아이였어요.” 최은미의 어머니가 말했다. 아버지는 이재형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네가 잘못한 건 알고 있냐”고. 그리고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다. “내 딸과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오면 절대 안 됩니다.” *이 기사는 지난 2월 최은미의 지인, 유가족들과의 인터뷰, 이재형의 진행중인 재판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조재연 한국여성의전화 인권문화국 인권팀장,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가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재호 이유진 기자 ph@hani.co.kr, 일러스트 son of you 디자이너 wjsalsry1@gmail.com
가정폭력도 스토킹으로 이어진다 가정폭력도 스토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혼소송 가운데 일방적으로 찾아오는 행동이 전형적이다. 가해자의 접근을 막는 일이 유독 쉽지 않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와 자녀라는 연결고리 탓이다. 조재연 한국여성의전화 인권문화국 인권팀장은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상 긴급임시조치·임시조치·보호명령은 피해자 보호에 턱없이 부족하다. 일말의 위험성이라도 있다면 가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격리조치, 즉 체포우선주의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2016년 경찰백서를 통해 ‘3년 이내 가정폭력 2회 이상’ 재범자, 흉기 휴대 또는 심각한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자 등에 대해 원칙적으로 구속수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정춘숙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6년 가정폭력 사건 검거 인원 5만3476명 가운데 구속수사를 받은 인원은 509명에 그쳤다. 서울의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 담당 관계자는 “임시조치는 어겨도 과태료만 부과하기 때문에 강제성이 떨어진다.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해도 법원이 잘 발부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해자 처벌은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가정폭력의 위험성이 높을 때는 피해자 의사에 반하더라도 가해자를 강제로 구인해야 하는데 현재 이런 규정이 없다. 예컨대 가정폭력이 심한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 반드시 성폭행이 따라온다. 이런 객관적인 지표를 바탕으로 위험성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본 통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는 이재정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을 통해 남편에 의한 아내 살해 기수·미수 사건 횟수와 일시, 장소, 동기, 도구 등에 대한 자료를 경찰청에 요청했다. 경찰청은 “별도 관리하지 않아 제출하지 못함을 양해 바란다”고 밝혔다. 경찰 범죄통계는 전체 살해 사건 가운데 남성이 여성을 죽인 사건 비율조차 알 수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친족 여부로만 분류하다 보니 배우자 살해 사건 수는 알 수 없다. 그나마 시민단체 자료로 대략의 추정은 가능하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09~2017년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 사건을 분석한 결과 9년간 824명이 살해되고 602명이 살인미수에서 살아남았다”고 밝혔다. 모두 1426명이다. 최은미와 같이 죽임을 당하거나 죽음 위기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이틀에 한명꼴인 셈이다. 이 숫자도 최소치다. “결혼 생활은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거나 “그래도 아이들 얼굴을 봐서…”와 같은 사회적 인식도 가정폭력 피해자의 이른 탈출을 방해하는 주원인이다. 특히 피해자는 자기방어적 인지 왜곡으로 객관적 판단이 어렵다. 주변에서 가정폭력 징후가 보이면 ‘남의 가정사’라고 무심할 게 아니라 ‘범죄 예방’ 측면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이유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 디지털 인터랙티브 페이지로 이 기사를 보시려면: https://goo.gl/atcF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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