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06 19:48
수정 : 2006.05.18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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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제 울산대 교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 정승일 국민대 겸임교수, 김진방 인하대 교수 (왼쪽부터)가 지난달 10일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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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선진대안포럼 1부 대안을 향한 성찰 ⑤ 재벌, 길들여지지 않는 자본권력
공정거래법 등으론 지배구조 문제 해결 어려워
재벌 위주 벗어나 중소기업 중심 산업정채 절실
토론은 접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팽팽하게 진행됐다. 진보개혁세력 내부에서도 재벌 문제에 대한 ‘하나의 시각’이 존재했던 시기가 지나버렸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양한 시각으로 다양하게 펼치는 운동’이 오히려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두루 공감대를 형성한 정책 의제도 있었다.
김진방 교수는 “‘설계주의적 해결방법’을 찾아선 안된다”고 말했다. 하나의 모델을 정해놓고 그 쪽으로 몰아가는 게 아니라 “어떤 체제로 가든 공통적으로 반드시 갖춰야 할 질서를 정돈하자”는 이야기다. 김상조 교수도 “미래의 바람직한 기업모델을 합의하려는 것은 헛된 노력”이라며 “참여연대는 재벌개혁운동을, 대안연대는 외국투기자본 감시운동을 하는 식으로 진보진영이 분업·협업 체계를 갖춰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재벌개혁·투기자본감시 함께 해야
서로의 시각차를 확인한 것 외에도 성과는 있었다. 재벌정책의 큰 방향으로 “기업 집단 전체를 규율·감시할 제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 큰 의견이 일치했다. 김상조 교수는 “공정거래법이나 금산법 등 개별 법률로 개별 기업 단위의 재벌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며 “기업집단 전체를 규율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재벌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지배구조를 선택하면 된다”고 말했다.
영미권에서는 개별 법인을 회사법의 주체로 설정하면서도 판례 등을 통해 기업집단 전체의 지배구조를 규제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기업집단을 회사법의 주체로 세운다. 이 때문에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정보를 청구할 수 있고, 자회사 노동자 대표가 모회사의 감독이사회에 참여할 수도 있다. 영미식이건 독일식이건 기업집단 전체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감시·감독할 장치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 대해선 정승일 교수도 “기업집단의 존재를 긍정하면서 소속 회사간 관계, 지배종속 관계 등 특수한 문제를 풀 법률을 마련해야 한다”며 “공정거래법을 대신하는 독일 회사법(콘체른법)과 같은 특수한 법이 필요하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재벌체제가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국민경제’ 차원의 우려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재벌 문제 해결과 함께 “산업정책은 중소기업을 중심에 두고 펼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일영 교수는 “대기업의 다국적 성향이 강화될수록 국내 산업과의 연관은 옅어지고 고용효과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며 “(재벌개혁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거나 과열된 논란을 계속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산업 정책 차원에서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책보다는 중소기업 정책, 동북아-남북한의 협력 정책에 더 높은 비중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형제 교수도 “세계경제가 통합되면서 (재벌과) 국민 경제의 내부 분업 고리가 약화하고 있다”며 “국민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혁신적 중소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벌과 국민경제 내부분업 고리 약화
김상조 교수는 “1990년대 이후 대기업과 영세기업의 비중은 늘어나는데 국민경제의 중추인 중견기업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며 “대기업의 선도적 투자·발전의 성과물로 중소기업을 발전시킨다는 발상엔 한계가 있는만큼,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 자체를 목표로 하는 산업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재벌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라도 산업정책만큼은 중소기업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이야기다.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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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 주요 발언
◇ 재벌체제와 국민경제
김상조=“재벌체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권리와 의무가 이행되는 과정을 왜곡하는 비민주적이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이제 형평성뿐 아니라 효율성 측면에서도 한계를 드러냈다.”
정승일=“미우나 고우나 재벌이 한국 경제를 이끄는 주역이다. 수출·설비투자·기술혁신투자·고용창출을 통해 장기적 효율을 이뤄내는 재벌기업이 잘못되면 국민경제가 입을 피해가 막대하다.”
이일영=“재벌문제에만 정책역량을 집중하거나 과열된 논란을 진행시키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의 세계경제 환경에서는 대기업이 한국의 국민경제와 발걸음을 함께 할 것이라는 기대는 별로 현실적이지 않다.”
◇ 재산상속과 경영권
정승일=“재벌의 재산상속은 기업집단의 경영권 승계다. 재산의 절반을 상속세로 내면 그만큼 총수일가의 기업지배력이 약화돼 경영권 승계가 불가능해지고 그룹이 붕괴될 것이다.”
김진방=“지금은 재벌총수가 마음대로 다른 주주나 다른 종업원의 이익을 탈취하는 상황이다. 이를 못하게 하면서 거대기업의 이익도 필요한 만큼 보장하면 된다. 무능·부패한 경영자는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해야 한다.”
조형제=“재벌이든 아니든 정당한 방식의 경영 성과를 통해 시장에서 심판받아야 한다. 탈법적 방식으로 경영승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 적대적 합병과 경영권
조영철=“재벌은 견제를 너무 적게 받고 있는 게 문제다. 적대적 합병은 재벌 총수를 견제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허용돼야 한다.”
정승일=“적대적 인수·합병 방식으로 기업을 규율하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앵글로색슨식 정글자본주의이다. 지금은 오히려 개방된 자본시장의 상황에서 적대적 인수·합병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김상조=“기업의 안정성장을 위해 지배적 대주주가 필요하다는 검증되지 않은 명제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 만일 적대적 인수·합병의 사회적 비용이 크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외부견제 제도를 제시해야 한다.”
◇ 진보개혁세력의 재벌인식
이일영=“진보개혁세력 내부에도 한국 자본주의와 재벌에 대한 합의된 인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화를 신자유주의 국제경제질서 확립으로만 이해하면 저항의 논리는 나오지만 대안을 설계하기 어렵다.”
김상조=“참여연대는 재벌개혁 운동을 열심히 하고, 대안연대는 외국자본의 투기적 행태를 열심히 감시해야 한다. 분업과 협업 체계를 갖춰야 진보진영의 역량이 강화된다.”
정승일=“참여연대가 주장하는 소액주주 권리 제고 운동은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의 권리 제고 요구와 동일하다. 개방된 자본시장과 결합된 주주자본주의 체제는 양극화의 근본적 배경이다.”
◇ 재벌문제와 사회대타협
김상조=“협력을 낳기 위해서라도 협력의 룰을 위반한 자를 철저히 응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는 총수의 자발성이 아니라 감독기구·사법기구·노동조합·시민사회의 압력에 의해 재벌을 둘러싼 환경이 바뀔 때 가능해진다.”
정승일=“기업집단의 지배구조 변동으로 인한 혼란과 국민경제에 대한 타격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관계자들과 시민사회가 지금부터라도 본격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조형제=“지금 청와대, 재벌총수, 노조위원장이 모인다고 시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 등을 상대로 중층적 타협을 이뤄 점진적으로 신뢰가 쌓여야 가능하다. 책임의 비중을 생각하면 재벌이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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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한겨레> 선진대안포럼에 참여해주신 분들 (가나다순)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양극화연구팀장, 강원택 숭실대 교수, 고병권 수유+너머 공동대표, 김명인 인하대 교수·실행위원, 김상조 한성대 교수,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실행위원, 김진방 인하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실행위원, 박명림 연세대 교수·실행위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태균 서울대 교수·실행위원, 손호철 서강대 교수, 신광영 중앙대 교수,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 양현아 서울대 교수·실행위원, 이병천 참여사회연구소장, 이일영 한신대 교수·실행위원, 이정우 경북대 교수, 임지봉 건국대 교수·실행위원, 장상환 진보정치연구소장, 정승일 국민대 겸임교수, 조영철 국회 산업예산분석팀장, 조형제 울산대 교수,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실행위원,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실행위원, 황인성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홍성태 상지대 교수·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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