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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27 19:05 수정 : 2006.03.27 19:29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1부 대안을 향한 성찰 ⑦ 북한, 평화로 가는 불편한 동반자


북한은 평화로 가는 동반자다. 그러나 남한의 평화·통일 지향 세력조차도 때로는 북한이 불편하다. 그 균열을 비집고 냉전·수구 세력이 다시 창궐하고 있다. 단순히 ‘북한 문제’가 없다고 눈가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평화를 바라는 한 대립을 무작정 증폭시키는 것 역시 해결책이 아니다.

이 고민을 풀기 위해 북한 문제 전문가 9명이 모였다. 박순성 동국대 교수, 서동만 상지대 교수, 김근식 경남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이 지난달 27일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마주 앉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박태균 서울대 교수, 임지봉 건국대 교수, 김수암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센터 연구위원은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했다.

흥미롭게도 전체 논의의 절반 이상이 북한 인권 문제에 쏠렸다. 최근 한국 진보개혁세력의 고심이 이 대목에 집중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속깊은 고민을 공개적으로 토론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지면의 대부분을 북한 인권 문제에 할애하는 이유다. 통일운동의 관성과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도 도마에 올랐다. 아프지만 인정하고 넘어가야할 이야기가 곳곳에 있다.

동북아평화체제, 북핵문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 남북관계를 둘러싼 여러 제도·정책·경로에 대한 검토와 모색이 있었지만 모두 지면에 담지 못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 한겨레>(www.hani.co.kr)의 토론전문을 참조할 것을 부탁드린다.

이제 진보개혁세력이 북한 인권을 말한다. 인권을 빙자한 냉전반공주의의 범람을 막으려는 노력이다. ‘북한, 평화로 가는 불편한 동반자’를 주제삼은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참석자들이 그 초석을 놓았다.

북인권문제 피해갈수 없어

보수공세 막으면서 실직적 개선 노력 절실
평화원칙 아래 문제해결 논의 양성화해야


본격적 실천의 터를 닦지 않으면 안될 조건이 이미 존재한다. “과거에는 통일의 정당성만 주장해도 괜찮았지만, 이제는 화해협력적 접근을 통해 북한에 민주화와 인권을 어떻게 정착시킬지 고민해야 한다.”(김근식 경남대 교수) “북한 내부에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인권문제는 더 이상 피해갈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박명림 연세대 교수) 특히 박태균 서울대 교수는 “진보세력이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이중잣대’를 갖고 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문제 제기 과정을 깊이 있게 살펴온 김수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는 것을 막으면서도 북한 주민의 실질적 인권개선을 위한 진보진영의 역할이 확대될 필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참석자들은 이 물음에 대한 객관적인 답부터 진보세력이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근식 교수는 “북한에 인권 문제가 있다고 싸잡아 ‘전제’하고 들어가는데, 사실을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면 신빙성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균 교수도 “사실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진보세력의 체계적인 조사·연구활동이 절실하다고 짚었다. 한국 보수세력을 진앙지 삼은 ‘정보’들만 횡행하는 상황부터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북한 인권문제의 실체가 ‘체제의 불안정성’과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인신매매, 여성·아동권리 침해 등의 문제는 사회주의적 제도가 악화되는 동시에 급격히 자본주의화 되면서 생겨난 것”이라며 “따라서 단순히 북한의 현 체제를 변형시키겠다는 방식이 아니라 북한 내부의 갈등상황을 관리해서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근식 교수는 남한 진보세력의 ‘후원’을 말했다. “북한 스스로 민주주의를 추구할 물질적 토대나 인권 향상을 위한 시민사회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남한 진보세력이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적 방법 통해 평화에 도달”

김수암 연구위원은 국제사회의 압력이 일정한 효과를 내고 있는 점도 무시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폐쇄적인 북한체제 성격을 고려할 때, 유엔을 통한 도덕적 압박은 일정하게 북한 당국의 인식·정책변화를 이끄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표적 사례로 북한이 2004년 형법·형사소송법을 개정하면서 인권적 요소를 크게 반영한 것을 꼽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인권 문제 해결의 과정과 목적에 두루 관철시키는 것”이라고 박명림 교수는 강조했다. “평화적 방법을 통해 평화에 도달한다”는 이 원칙은 최근 일부 보수세력의 북 인권 문제제기와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다. 인권을 위한다면서 갈등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움직임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기도 하다.

박순성 교수는 “남한의 국가보안법은 안보의 차원에서 이해하면서, 북한의 체제보장 전략은 인권의 차원에서 비판하는 것은 일관성이 부족한 논리”라며 “보편적 관점에서 인권문제를 남북한 동시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 보안법·북인권 함께 풀어야

이태호 처장은 인권문제를 고리삼은 남북 동시 민주화를 언급했다. “남한이 북한 내부 문제에 대해 개입하려면, 남한 문제에 대한 북한의 개입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상·양심의 자유에 대한 남한 문제를 풀고 이를 다시 북한에 제의하자”고 덧붙였다.

박태균 교수도 ‘상호주의’적 접근을 제시했다. 북파공작원 문제 해결을 위해 남파공작원 문제도 함께 풀자는 이야기다. “장기수 몇 사람을 돌려보내는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체제의 문제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문제부터 해결하자= 당장 매듭을 풀 수 있는 계기들도 있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남북이 국가간 절도·절차·제도·관행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인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구난방식의 문제제기가 난무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 인권 문제를 바라보는 하나의 기준을 만들자고 말했다. “막연히 국제사회나 보수단체가 요구하는 추상적 인권논의가 아니라 북한체제의 개혁·개방·경제발전의 단계와 수준을 고려해 그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태호 처장은 ‘인권대화’를 제안했다. “남과 북이 인권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북 인권문제가 국제적으로 ‘정치화’되는 흐름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박명림 교수는 ‘동북아인권협약’ 체결을 주문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환경·안보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노력을 통해 북한 인권 문제를 풀자”는 발상이다. 각 제안의 공통점이 있다. 평화라는 큰 관점 아래 일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인권 문제 논의를 양성화하자는 것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미·일정부 연계한 탈북자돕기는 역효과”

보수세력 ‘북 인권 접근법’ 비판

참석자들은 북한 인권 문제를 접근하는 보수세력의 방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비판의 핵심을 이루는 질문은 두가지다. 실제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북한 인권 상황의 개선인가.

서동만 교수는 “남북 화해협력이나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는 적대적·냉전적 인식을 지키면서 그 해결을 가로막는 수단으로 ‘북한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특히 서 교수는 보수세력 내부의 이른바 ‘민간운동’의 양상을 꼬집었다. “(탈북자 돕기 등의 사업이) 국제연대의 차원에서 진행되는데 그 대상이 민간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 정부와 연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북한이 유럽연합의 문제제기에는 다소 개방적이면서도 미국·일본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상황을 거론했다. “북한과 수교 관계를 형성한 유럽연합 등과 달리 북한과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일본 정부와 연계한 민간운동은 실제 효과도 없고, 오히려 미·일 대북강경 정책의 들러리만 선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태호 처장은 “진짜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1960년대부터 우리는 교과서를 통해 북한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탄압받는다고 배웠다. 그런 면에서 (보수세력이 최근 제기하는) 북 인권 문제는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김수암 연구위원은 한 수 너머를 보는 시야를 제공했다.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비판하더라도, 그 비판과 상관없이 보수성향의 단체들은 국제적 연대를 통해 지속적으로 북한을 압박할 것이라는 ‘현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북한 인권을 논의하면서 과연 ‘체제의 문제’를 계속 피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진보세력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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