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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01 19:15 수정 : 2006.05.01 19:15

‘가족, 행복이 해체되는 공간’을 주제로 한〈한겨레〉선진대안포럼 토론회 참석자들. 왼쪽부터 양현아 서울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김승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정책연구본부장, 장혜경 한국여성개발원 가족연구센터장.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1부 대안을 향한 성찰 ⑪ 가족, 행복이 해체되는 공간

1부 막바지에 이른 〈한겨레〉 선진대안포럼이 ‘가족’에 눈을 돌렸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붕괴하는 또다른 현장이다. 재벌·노동·미국·북한 등 굵직한 주제에 매달렸던 지난 석달여의 자리와 구분된다. 진보개혁세력의 미래를 밝히려는 노력은 가장 가까운 일상의 문제를 푸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믿음이 이번 토론회에 깔려 있었다.

김승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정책연구본부장, 장혜경 한국여성개발원 가족연구센터장, 김호기 연세대 교수, 양현아 서울대 교수 등이 지난 7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했다. 외국에 머물고 있는 홍경준 성균관대 교수는 서면으로 의견을 보내왔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가족 문제에 대해 현실감있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문이 적지 않았다. 토론전문은 〈인터넷한겨레〉(www.hani.co.kr)에서 볼 수 있다.

환란이후 가족간 소득보전 약화…노인·아동 큰 타격
복지서비스예산 늘려 가족해체 막을 안전망 갖춰야

“가족이 국가와 시장을 상대로 저지른 최초의 반란이다.”

홍경준 성균관대 교수는 최근 가족 해체/변동의 양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 사회의 근원을 뒤흔드는 거대한 변화가 가족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전통사회에서 한국의 가족은 생산과 복지를 제공했다. 근대화 이후에는 저임금구조를 떠받들고 우수한 인적자원을 공급하는 모태였다.” 홍 교수가 말하는 ‘반란’은 이런 위계구조의 붕괴를 가리킨다. 국가와 시장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랐던 가족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 해체/변동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진보개혁세력은 국가-시장-시민사회로 이어지는 삼각축을 중심으로 고민해 왔다. 가족이 그 지평에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가족·공동체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와는 달리 진보개혁세력은 개인을 중시해왔다”며 “가족이 억압의 공간이라는 인식까지 더해 진보개혁세력은 대단히 중요한 사회구성요소인 가족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사이 가족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나. 김승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정책연구본부장은 다양한 가족 형태의 출현 양상을 분석했다. 동거가족, 독신가족, 무자녀가족, 공동체가족, 맞벌이가족, 기러기가족 등이 대표적이다. 전통적 가족 형태가 다변화되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적 상황’은 아니다.

진보개혁세력이 주목해야 할 것은 가족 변동의 구체적 내용이다. “부부 11쌍 가운데 1쌍이 이혼하고 있는데, 이들 이혼 가족의 80% 이상이 (경제적) 한계 계층이다. 유럽의 미혼모는 차별철폐에 따른 자발적인 것이지만, 한국의 미혼모 대부분은 (사회로부터 소외된) 16~17살의 미성년자다.”(김승권 본부장)


이로부터 노인, 여성, 아동 등이 가족의 경계 밖으로 계속 밀려나는 일이 빚어진다. 경계 밖에는 가혹한 시장과 무심한 국가가 기다린다.

김호기 교수는 “근대화 과정에서 국가와 시장의 폭력 앞에 내던져진 개인을 보호해준 유일한 장치가 가족이었고, 한국에선 ‘국가복지’가 아니라 ‘가족복지’만 있었다”고 말했다. 국가복지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가족복지가 급속히 무너지는 현상이 서민들을 괴롭히는 고통의 실체라는 이야기다.

홍경준 교수는 가족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개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부모가 자식을 뒷바라지하고, 자식이 부모를 공양하며, 형제가 서로를 돕고, 다시 부모가 재산을 물려주는 게 ‘한국형 가족복지’의 핵심이었다. 소득을 서로 보전해주는 게 뼈대다. 홍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가족간 소득보전 기능이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가장 먼저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게 노인층이다. 끊어진 소득보전의 고리는 결국 소득보장제도를 통해 사회가 메워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홍 교수는 “더 중요한 것이 보살핌 노동의 사회적 수용”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 복지체제의 여러 특성은 보살핌 노동을 처리하는 방식에 따라 나뉜다. 일정시점까지는 보살핌노동을 시장에서 사고 팔수 있도록 돕되, 궁극적으로는 공공부문이 보살핌노동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회경제적 무능력자인 아동·노인 등을 누군가는 보살펴야 하고, 그 비용을 사회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장혜경 한국여성개발원 가족연구센터장도 “결혼·출산 등은 개인의 결정과 책임이지만, 사회변화가 가족의 기능·구조·형태에 영향을 주는만큼 가족 역시 사회정책적 대상”이라고 말했다. 핵심은 경제적 문제다. “경제적 부담에 취약한 가족이 등장하고 있고, 이로 인해 다시 취약계층의 빈곤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문제는 돈이다. 김승권 본부장은 한국 정부가 돈 쓰는 방식을 설명했다. 2001년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지출 비중은 8.7%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1950년대 이전 수준이다. 2001년 OECD 국가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지출 비중 평균은 21.8%다.

최근 관련 예산을 늘리고 있긴 하다. 그런데 그 실체가 다시 씁쓸하다. 98~05년 사이 기초보장예산은 325.7% 증가했다. 의료보장예산은 228.8% 늘었다. 반면 복지서비스예산은 7.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복지서비스 예산이 다양한 가족 해체/변동에 대처할 사회복지서비스의 곳간이다. 가족이 빈곤과 불행의 공간으로 전락한 데에는 이런 숫자들이 숨어 있었던 셈이다. 양현아 서울대 교수는 “가족 해체를 막아주는 사회안전망이 없어서 가족이 취약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일은 국가 복지 시스템이 가족 복지와 만나는 지점을 만드는 것이다. 김호기 교수는 “재원 마련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권 본부장도 “사회의 발전과 가족의 발전이 함께 갈 수 있도록 정책적 유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보개혁세력이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공언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풀어야 할 매듭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저출산이 경쟁력 해쳐…이민정책 도입”
“아이 낳을수 있는 여건 마련 우선돼야”

가족문제 엇갈린 견해

참석자들은 가족 해체/변동이 복지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도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 애를 먹었다. 출발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김승권 본부장은 주로 국가·사회 경쟁력의 차원에서 가족 문제를 주목했다. “저출산·고령화는 생산인구 감소, 저축·투자감소, 고용창출 미흡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대책의 하나로 선진국처럼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도입할 수도 있다”며 “우수한 자질을 갖춘 이민자를 수용하는 ‘동화주의’ 정책”을 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여기서 이민자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푸는 핵심고리다. 한국 사회의 개방성을 높이는 게 관건이다.

양현아 교수는 국가주의를 비판하며 젠더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가족 해체라는 말에는 ‘자기보살핌’이 가능한 정상가족이 유지되어 복지를 떠맡기려는 국가의 시선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국가의 양성화(兩性化)’도 말했다. “국가가 가족·저출산·고령화 정책을 말할 때 여성을 대상으로 ‘아이를 낳아라’고 말하기보다, 양성을 주체 삼아 ‘어떻게 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젠더 문제에 둔감한 이상, 국가가 ‘진보적’으로 재구성되더라도 가족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홍경준 교수는 두 입장 모두에 대해 비판적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홍 교수는 “70년대 산아제한으로 대표되는 인구정책의 연장선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가족을 통한 사회성원의 재생산 방식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급진적인 젠더의 관점을 논외로 한다면, 사회구성원의 재생산 기능이 축소되는 가족의 변화는 분명 가족해체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가족 변동보다는 가족 해체라는 문제의식을 수용하면서도 인구 정책이 아닌 복지 정책에 주목하자는 뜻이다.

사회를 맡았던 김호기 교수는 “진보개혁세력이 큰 담론은 많이 말했지만, 직장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가족에 대해선 진지한 관심과 성찰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담론’의 수준에서 가족 문제를 진보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자는 취지였다. 미묘하게 엇갈린 참석자들의 시선은 가족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 논의의 현주소를 드러냈다. 가족을 둘러싼 담론과 정책은 더 깊은 숙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건 또다른 고민이다.

안수찬 기자

◇ 지금까지 <한겨레> 선진대안포럼에 참여해주신 분들 (가나다순)

강신욱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양극화연구팀장, 강원택 숭실대 교수, 고병권 수유+너머 공동대표, 권영근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장, 권용립 경성대 교수, 김근식 경남대 교수, 김명인 인하대 교수·실행위원, 김상조 한성대 교수,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김수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김승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정책연구본부장,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실행위원, 김윤철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 김진방 인하대 교수,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김호기 연세대 교수·실행위원, 문정인 연세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실행위원, 박순성 동국대 교수,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진도 충남대 교수, 박태균 서울대 교수·실행위원, 서동만 상지대 교수, 서형원 초록정치연대 정책위원, 손호철 서강대 교수, 신광영 중앙대 교수,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 양현아 서울대 교수·실행위원,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윤석원 중앙대 교수, 윤형근 모심과살림 선임연구위원,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이병천 강원대 교수, 이상수 노동부 장관, 이수영 경총 회장,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이용범 한국노총 기획조정본부장, 이일영 한신대 교수·실행위원, 이정우 경북대 교수,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이필렬 방송대 교수, 임지봉 서강대 교수·실행위원, 장상환 경상대 교수, 장혜경 한국여성개발원 가족연구센터장, 전기환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정세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정승일 국민대 겸임교수,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 조명래 단국대 교수, 조영철 국회 산업예산분석팀장,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 조형제 울산대 교수,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실행위원,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실행위원, 황인성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홍경준 성균관대 교수, 홍성태 상지대 교수·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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