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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22 19:34 수정 : 2007.01.25 10:11

전환점에 선 민주노총

민주노조가 간절한 ‘소망’인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노동자들은 “민주노조 깃발 아래 와서 모여 뭉치세”라며 목이 터지게 외치고 싸웠다. 그 민주노조들이 뭉쳐 등장한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에게 ‘희망’이었다. 그렇게 모인 민주노총은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했으며, 교직원·공무원을 노동자에 포함시켰고,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의 국회 진출도 이뤄냈다.그러나 화려한 ‘성과’는 어느덧 빛이 바랬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가 아닌 정규직·대기업 노동자를 위한 조직이 돼 버렸다는 말이 나왔다. 정파 간 알력과 다툼은 정치판의 그것보다 더 심하다는 말도 나온다. 성과 없이 거듭하는 총파업 투쟁도 많은 이를 지치게 한다. 해마다 터져나오는 조직 내 비리 사건은 ‘도덕성’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민주노총이 다시 ‘희망의 길’을 갈 수 있을까? 전·현직 민주노총 위원장 등 노동계 인사들의 평가와 조언을 바탕으로 민주노총이 걸어온 길과 갈 길을 세 차례로 나눠 짚어본다.

노동자 권익 넘어 전체 사회운동 방패막으로
기초생활 보장 이끌고 ‘원내 진보정당’ 실현

s민주노총이 다시 우리 사회 모든 노동자들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사진은 1997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민주노총 창립 기념 대회에서 민주노총 깃발과 산별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 모습.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성과] 민주노총은 오는 26일 제5기 노조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갈림길에 놓여 있다. 누가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전체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세력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소속 조합원의 이익 추구 집단이 될 것인가의 갈림길이다. 민주노총은 원하든 원치 않든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과거 민주노총은 소속 조합원만의 조직이 아니라 민주노조의 기지이자 보루였다.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로 90년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와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업종회의)가 결성되기 전까지 민주노조 운동은 힘들게 맥을 이어오면서 형극의 길을 걸어야 했다. 민주노조 운동의 열매인 민주노총은 더 많은 사업장에 민주노조의 씨를 뿌렸다.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권위주의와 물리력이 지배하는 80~90년대의 시대 상황에서 아래로부터의 힘과 조직으로 노동운동의 구심점을 만들어낸 게 민주노총의 가장 큰 성과였다”고 평가했다. 93년 전노협과 업종회의가 합쳐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는 1048개 노조, 조합원 42만명으로 출발했으며, 그 후신인 민주노총은 현재 743개 노조, 조합원 76만명으로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민주노총의 성장은 전체 노동자의 권익 신장과 통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은 “87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이 2배 가량 상승했으며, 많은 작업장에서 노조의 힘이 커져 노동조건도 크게 개선됐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권익 수준을 넘어 전체 사회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96년 12월26일부터 97년 2월 말까지 계속된 ‘노동법·안기부법 개정 투쟁’이 대표적 사례다. 신한국당이 ‘정리해고 허용, 복수노조 유보, 공무원 단결권 불허’ 등을 내용으로 한 노동법 개악안을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시키자 민주노총이 총대를 멨다. 이 총파업에는 민주노총 소속 3422개 노조, 388만명의 노동자가 참여했으며, 김영삼 대통령은 결국 관련법 재개정을 약속했다.


민주노총은 95년 발족 이후 지금까지 30차례 이상의 대규모 파업을 벌이며 노동조건·기본권 보장, 노동시장 유연화 저지, 비정규 권리 보장, 공기업 사유화 반대, 기간산업 국외매각 반대, 주5일 근무제 도입 등 투쟁을 벌였고, 주요 사회권력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민주노총이라는 든든한 방패가 없이 다른 시민·사회 운동의 성장을 생각할 수 없다”며 “4대 사회보험 확대, 건강보험 재정 통합, 기초생활 보장, 의료급여, 최저임금 상승 등 사회적 약자 보호 정책에서 민주노총은 주도적 구실을 했다”고 평가했다.

민주노동당을 건설해 2004년 4월15일 총선거에서 13.1%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10명의 의원을 국회에 보낸 일도 빛나는 성과였다. 민노당은 현재 국회의원 9명, 광역의원 15명, 기초의원 66명을 보유하고 있다. 민노당 심상정 의원실의 손낙구 보좌관은 “민주노총이 설립된 것처럼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한 것 자체가 큰 성공”이라며 “노동운동 차원을 넘어 전체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나아가는 것이 과제”라고 평가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민주노총의 성과와 한계

‘노사정 타협’으로 정리해고 길트고 분열씨앗
외환위기뒤 중소기업·비정규직 문제 손놓아

[한계] 민주노총의 봄날은 너무도 짧았다. 1995년 설립된 민주노총이 96~97년 ‘노동법·안기부법 개정 투쟁’을 승리로 이끈 지 1년도 되지 않아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외환위기는 87년부터 시작된 노동자 운동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첫번째 실패는 98년 2월 정리해고와 파견노동 등을 허용한 ‘노사정 대타협’에 참여했다가 이를 번복한 일이 꼽힌다. 이 노사정 대타협은 민주노총에 두 가지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하나는 ‘대타협’에서 사용자에게 유리한 정리해고와 파견노동이 즉각 허용돼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줬다는 것이다. 반면 이 대타협의 성과인 전교조 합법화나 공무원 단결권 보장 등은 실현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둘째는 이런 노사정 대타협의 후유증으로 민주노총 내부에서 패가 갈린 사실이다. 2005년 대의원 대회의 폭력 사태 역시 노사정위원회 참여 문제를 두고 벌어진 사달이었다. 하부영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은 “98년 사회적 대타협의 실패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민주노총 내부의 분열을 잉태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에 대해선 부정적 시각이 상존한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한국에서 사회적 대화는 노동쟁의와 계급문제를 막고 노조를 지배하려는 수단으로 쓰였다”며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국가·사용자에게서 뭔가 쉽게 얻으려 하지 말고 민주노동당 건설이나 산별노조 전환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환위기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민주노총은 투쟁 전선을 점차 좁혀갔다. 손낙구 민주노총 전 교육선전실장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현장 노조들이 구성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활동을 강화했고, 이 과정에서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배제됐다”며 “결국 노동자의 공동 이익을 대변하지 못함으로써 위기를 맞게 됐다”고 말했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도 “외환위기는 노사관계를 전면적으로 바꿨는데, 전투적 문화로 인해 외부와 투쟁과 교섭을 병행하지 못했고, 내부의 모순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현재 민주노총의 과제로서 가장 주목받는 일은 지난해 민주노총 조합원의 75%가 전환한 ‘산별노조’의 활동이다.산별노조는 비정규직과 사회적 대화 모두에 물꼬를 틔울 수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산별교섭이 이뤄지면 비정규·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권익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다”며 “민주노총은 정부와 함께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에 나서도록 하고, 합의된 내용을 전사회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민주노총이 외환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정규직·대기업 노동자들만을 위한 조직으로 변했다는 따가운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2004년 9월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있었던 민주노총·한국노총·참여연대 등 32개 시민사회단체가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이 겪는 일상 속의 차별을 없애자”며 마련한 ‘차별 없는 세상 만들기’의 마지막날 행사.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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