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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30 13:49 수정 : 2018.07.31 19:45

노회찬 의원의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 특1호실 입구.

정치BAR_서영지의 오분대기
기자 전화도 잘 안 받는 국회의원 많지만
고민상담 하러 온 10대까지 환대한 노회찬
“잡초 같은 우리 위해 싸워주고 받은 상처는
어디서 위로받았나요…” 넘치는 ‘노회찬의 추억’

노회찬 의원의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 특1호실 입구.
지난 5일간은 그저 ‘꿈’같았다.

지난 23일 오전 계엄문건에 딸린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구하기 위해 국회 의원회관을 한창 돌고 있었다. 그때 같이 있던 보좌관의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렸고, 갑자기 그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얘기했다. “노회찬 의원님이 돌아가셨다는데요.” 그 길로 곧장 노 의원의 사무실인 510호로 달려갔고, 눈물을 흘리며 헐레벌떡 뛰어오는 당직자들이 보였다. 하지만 510호실은 굳게 잠긴 상태였고, 정의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은 심상정 의원 방으로 모여들었다. 놀란 그들도 뉴스 속보를 보면서 상황파악에 나섰다. 그날 많은 사람이 꿈과 현실의 중간쯤에 서서 넋이 나간 듯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날부터 지난 27일 발인까지 총 3만8741명의 조문객이 그의 빈소를 다녀갔다. 장례식장 직원이 “이렇게 많은 조문객은 처음 본다”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사람을 끌어들인 ‘정치인 노회찬’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 노회찬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들

노회찬 의원의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들이 노란 포스트잇에 추도 메시지를 적어 벽에 붙였다.
지난 23일 오후 2시께 빈소가 정해지자마자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빈소는 아직 차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조문은 이날 오후 5시께부터 시작됐고, 첫날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 정치인들의 조문이 잇따랐다. 첫날은 주로 동료들에게 그들이 기억하는 노회찬 의원에 관해 물으면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노회찬 의원과 인연이 있으시냐’ ‘이런 낌새를 미리 알고 있었느냐’ 등의 질문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기억하는 노회찬 의원에 대해 떠올려봤다. 나는 정치인 노회찬을 화려하게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그를 잘 알지 못했다. 문득 지난 5월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국회를 출입하고 나서보니 대다수의 국회의원은 이름도 모르는 말진 기자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누군지도 모르는 기자의 꼬박꼬박 전화도 받아주고, 콜백도 잊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일일지 몰라도 그게 고마웠다. 매일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거절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의원들 사이에서는 적어도 말이다.

그는 내게만 특별한 게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존재’였다. 지난 25일 낮 20대 초반의 3명의 학생이 조문을 마치고 한편에 서서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학생이 들려준 노 의원과의 에피소드를 듣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는 인터뷰를 위해 찾아온 학생들을 기꺼이 맞았고, 밥 한 끼를 먹여 돌려보내려고 애썼다. 송웅근(21)씨는 그때 노 의원이 쥐여준 5만원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동아리에서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선뜻 승낙해주셨어요. 그 뒤로도 실제 연락을 했는데도 받아주시더라고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제가 친구생활 때문에 힘들어서 노원구까지 상담하러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의원님이 다른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친구들 간 경쟁이 심해서 그럴 수 있으니까 자신만의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해주셨어요. 그러면서 웃으면서 이건 선거법 위반 아니니까 받아도 된다면서 5만원을 쥐여주셨어요. 그때 인간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고, 다른 정치인과는 다르다는 기억이 남았어요.”

그렇게 저마다 노 의원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하며 빈소를 찾았다. 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들은 다양했다.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온 어머니부터 20대 학생, 30~50대 직장인, 구순 노인까지 특정 세대를 가리지 않았고, 특정 지역을 대표하지도 않았다. 노동자들부터 장애인 등 그가 평소 대변하려고 했던 이들도 있었다.

■ “‘혼자 조문하게 해 달라’는 정치인 모습에서 노회찬 그리워져”

노동조합 등에서 노회찬 의원 빈소에 보낸 근조 화환 리본들이 옆방까지 빼곡하게 늘어서 있다.
노 의원의 장례식장을 보면,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보였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도, 모두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다. 또 노동을 빼놓고는 노회찬 의원을 설명하기 어려운 만큼 장례식장에는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 ‘전국민주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 ‘방송작가 유니온‘ 노동조합에서 보낸 조화도 유독 많았다. 영결식 당일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운구 행렬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습은 그가 걸어온 행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지난 2016년 국회사무처가 업무 공간이 부족하다며 휴게실과 노동조합 사무실을 비워달라고 하자 청소노동자들에게 “혹 일이 잘 안 되면, 저희 (정의당) 사무실을 같이 쓰자”라고 연대를 제안한 일은 다시금 회자된다.

또 그의 장례식장에 조문 온 사람들은 누구든지 길게 줄을 서서 조문을 했다. 처음엔 그게 신기했다. 바쁜 일정을 핑계로 새치기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부분 그러지 않았다. 물론 안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고 했다. 한 자원봉사자는 조문 온 정치인들을 보면서 노회찬 의원이 다시 그리워졌다고도 했다. “장례식장에서 신발 정리하는 일을 돕고 있는데 어떤 의원들은 시민들과 다 같이 조문을 하지 않고, 혼자 조문하겠다고 우기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 의원들은 실제 친한지도 의문이고요. 노 의원 같으면 그러지 않을 텐데…” 사진을 찍히기 위해 굳이 혼자 조문하겠다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 어느 조문객이 선물한 새 구두

지난 27일 오전 9시 발인을 위해 노회찬 의원 영정이 나가고 남은 빈소의 모습이다.
노회찬 의원이 떠나던 날, 그날은 참 더웠다. 지난 27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안장식을 지켜보면서 컴퓨터 위로 떨어지는 게 그게 땀인지 눈물인지 구별이 안 되었다. 30도가 오르내리는 더운 날이었지만, 1000여명의 시민이 노 의원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기 위해 모였다. 유골함이 안장되고, 시민들은 그의 묘역 앞에 노란 국화꽃을 헌화했다. 이제야 마지막이 실감났다.

지난 5일 동안 노회찬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기자가 되려고 했던 이유에서부터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안했다. 많은 사람이 노회찬 의원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울었다’ ‘오열했다’ 그 이상을 표현해내지 못했다. 빈소에서도, 추모제에서도 모란공원에서도 그게 미안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진심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잘 몰랐다.

그날 오전 9시 노회찬 의원의 영정이 마지막 길을 떠나고, 남은 빈소를 둘러봤다. 그는 사시사철을 양복 두 벌과 10년 넘게 신은 닳아빠진 구두로 지냈다고 한다. 그런 그를 위해 묘역 옆에는 어느 조문객이 선물한 새 구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여 있었던 편지 한 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사랑하는 우리 노회찬 의원님께.

제가 의원님이 나오시는 영상 중에 각별히 좋아하는 게 있는데요, ‘노회찬의 요리교실’에서 매생이굴국을 끓이시던 모습이에요. 이전에는 정치인들은 다 부자고, 다른 세상에서 사는 존재들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의원님은 옷이며, 집이며 꼭 우리 아빠 같은 거예요.

그냥 밟고 지나가 버리는 잡초 같은 우리를 위해 대신 싸워주고 받은 상처들은 어디에서 위로를 받으셨나요? 하루하루가 척박해서 감사인사조차 마음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저를 위해서 저희 엄마와 아빠를 위해서 평생을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성의 날이라고 보내주신 장미를 받고 너무 기뻐서 나중에 정성껏 그림을 그려드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급하게 그려드릴 줄 몰랐어요. 의원님께서 남기신 말대로 매년 꼬박꼬박 의원님 식구들에게 응원할게요. 사랑하는 우리 노회찬 의원님 정말 죄송해요.

글·사진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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