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11 10:31
수정 : 2018.10.11 13:53
|
그래픽_김지야
|
정치BAR_서영지의 오분대기
①측근 김성우 ‘다스 역사’ 진술
②삼성의 ‘소송비 대납’ 포착
③삼성 압수수색 뒤 이학수 시인
|
그래픽_김지야
|
“엠비(MB)는 형을 몇 년 받았답니까.”
지난 5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가 있던 날, 평양에서도 관심은 1심 선고 결과였다. 10·4 공동선언 11주년 취재차 머물렀던 북한에서 인터넷이 되지 않았던 탓에 방북단은 결과를 알 길이 없었다. 그날 자정에서야 이 전 대통령이 징역 15년에 벌금 130억원을 받았다는 뉴스를 봤다. 그 뉴스를 전했을 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한숨부터 쉬었던 기억이 난다. 방북단 대부분은 이 전 대통령이 자기 잇속을 챙겼다는 점에서 1심에서 24년을 선고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죄질이 나쁘다고 평했다. 2007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대선후보 경선에서부터 제기됐던 “다스가 누구 겁니까”에 대답은 그렇게 11년을 돌고 돌아 이 전 대통령의 소유로 결론났다. 검찰은 이번 수사의 결정적 장면으로 ‘김성우의 자수서 제출, 삼성의 소송비 대납, 이학수의 자백’ 등 세 가지를 꼽았다.
① 호랑이 등에 탄 수사팀… ‘철통보안’ 속 김성우 설득
지난해 이 전 대통령이 가장 먼저 타깃이 됐던 수사는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사건‘이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을 수시로 독대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입을 꾹 다물면서 수사는 ‘정점’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국군 사이버사령부 정치 관여 의혹 역시 지난해 11월 법원이 특별한 사정변경이 없는데도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이 구속적부심으로 석방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이 전 대통령을 피고발인으로 한 고발장이 접수됐다. 비비케이(BBK) 주가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장아무개씨가 이 전 대통령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것이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신봉수)에 배당됐다. 그때만 해도 검찰은 반신반의했다.
|
지난 3월23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지난해 11월~12일 전병헌 전 정무수석을 수사하는 동안 자료를 들여다보다가, 수사가 마무리 될 때쯤 다스를 본격 검토했다. 처음엔 포토라인에 엠비를 과연 세울 수 있을까 생각했다. 횡령 액수가 300억이든 400억이든 결국 비상장 회사이고, 10년 전 일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신병 확보까지는 어렵다는 생각이 있었다. (다스가 이 전 대통령의 소유라는) 진술이 과연 나올까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호랑이 등에 탔는데, 중간에 내려올 수가 없었다. ”
다스가 다시 수사 대상에 오른 건 꼭 10년 만이었다. 그해 12월 참여연대 등도 이상은 다스 대표이사와 성명 불상의 실소유주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범죄수익은닉규제법,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정호영 전 특별검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서울동부지검에 차려진 ‘다스 수사팀‘은 지난해 12월26일 출범했다.
이 무렵 서울중앙지검도 김성우 전 다스 사장에 대한 ‘물밑접촉’에 나섰다. 수사팀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비밀리에 김 전 사장을 접촉했다. 대검에 보고도 하지 않고, 보안을 유지한 상태에서 설득에 나섰다. 검찰에 들어온 뒤 조서를 7~8차례 받았다. 다스 설립 자금부터 설립 이후 상황까지 구체적으로 얘기했다”며 “다스 자금을 선거캠프에 유용했다는 진술 역시 김 전 사장과 권승호 전 다스 전무의 입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다스의 핵심 간부 두 명으로부터 ‘다스의 실소유주는 이 전 대통령’이라는 자수서를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서울동부지검은 조아무개 다스 경리직원으로부터 추가 진술을 확보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② ‘삼성 소송비 대납’ 나온 순간 확신
다스의 실소유주를 확인한 검찰이 그다음 무게를 둔 수사는 ‘다스 소송비 대납’이다. 다스가 비비케이(BBK)에 투자한 140억원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미국 내 소송을 대리한 곳은 법무법인 ‘에이킨 검프’였지만, 아무리 다스 내부 자료를 봐도 소송비 지출 내역이 없었다. 그러던 중 다스 소송비를 삼성이 대납한 사실을 확인하는 데 결정적 진술을 사람은 이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었다.
그러나 김 전 기획관이 처음부터 검찰에 협조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검찰이 애초 김 전 기획관의 구속영장을 발부받은 것은 다스가 아닌 국정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였다. 검찰은 다스 관련 수사를 진행하던 비슷한 시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국고횡령 혐의 단서를 잡고 수사 중이었다. 원 전 원장이 국정원 돈을 ‘이명박 청와대‘에 상납한 사실을 포착했고, 검찰에 소환된 김주성 전 기조실장 등은 이를 인정했다. 이를 근거로 올해 1월12일 국정원 특활비를 전달받은 인물로 지목된 김 전 기획관을 포함해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 등 최측근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같은 달 17일 구속된 김 전 기획관의 진술 태도는 그때부터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다스 소송비 출처를 묻는 검찰의 질문에 처음에는 ‘외부’에서 내줬다고 진술했고, 이후 서울중앙지검은 다스의 자회사 ‘홍은프레닝‘ 명의로 임차한 서울 서초구 영포빌딩 지하 사무실을 두 차례 압수수색 하는 과정에서 소송비 관련 문건을 확보했다. 검찰 관계자는 “(다스 미국 소송을 맡은) 에이킨 검프는 세계적인 로펌인데 여기에 돈을 지불한 흔적이 없었다. 다스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문건을 보면, 에이킨 검프의 돈은 ‘김 전 기획관이 알아서 한다’는 식으로 적혀 있다. 그걸 바탕으로 집요하게 물어봤다. 그래서 결국 삼성 소송비 대납까지 연결된 것”이라고 했다. 다시 정리하면, 검찰은 다스 소송비 대납에 수사초점을 맞췄고, 김백준 전 기획관의 ‘제3자’가 대납했다는 초기진술과 영포빌딩 문건을 토대로 ‘출처‘를 추적해 들어간 결과 삼성이 이를 대납했다는 결정적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던 셈이다. 김 전 기획관의 ‘캐릭터’도 수사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본인이 물어보면 설명을 하는 스타일이고, 악한 스타일이 아니었다. 한 번에 훅 무너진 건 아니지만, 아주 조금씩 설명을 했다. 가령 영포빌딩에서 확보한 정아무개씨가 작성한 장부에 수상한 돈 액수와 이름이 쓰여 있는 걸 토대로 김 전 기획관에게 물어봤고, 본인은 기억나는 대로 설명을 했다. 그렇게 김소남 전 한나라당 의원의 공천헌금과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부터 받은 뇌물을 확인했다.”
이팔성 전 회장의 경우 애초 수천만원을 건넨 것으로 파악했지만, 압수수색 과정에서 ‘비망록’을 확보하면서 뇌물 액수는 크게 늘었다. 지난 8월 법정에서 공개된 이 전 회장의 비망록은 “나는 그(이 전 대통령)에게 약 30억원을 지원했다. 옷값만 얼마냐. 그 족속들이 모두 파렴치한 인간들이다.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2008년 3월28일)”고 적혀 있었다.
③ 삼성의 자백
하지만 그 이후인 올해 2월8일 이뤄진 삼성에 대한 압수수색은 일종의 ‘모험’이었다고 했다. 검찰은 평창겨울올림픽이 개막하기 전날 삼성전자 서초·수원사옥,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검찰 관계자는 “평창동계올림픽이 시작되기 전 삼성을 수사대상에 올려놓는 게 중요했다. 이 전 부회장이 한국에 없어서 불안한 상황이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부회장은 올해 압수수색 1주일 뒤인 2월15일 미국에서 귀국해 다스의 소송비를 대납했다는 사실을 진술한다. 당시 이 전 회장이 검찰에 제출한 자수서에는 “미국의 대형 로펌 ‘에이킨 검프’에서 근무하던 김석한 변호사는 1990년대부터 미국 내 삼성 법인의 일을 많이 해줘서 업무 관계로 알고 내왕하던 사이“라며 “김 변호사에게 부탁받고 이 전 대통령의 미국 내 법률문제에 드는 비용을 삼성에서 대신 내도록 한 적 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 전 대통령의 신병 확보를 확신한 것도 ‘이때’라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뒤 한 선배가 했던 질문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수조원의 자산가치를 지닌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이 전 대통령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서영지 기자
yj@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