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컬처 한국 ⑤ ‘커피 뿌리찾기’ 나선 사람들
“커피 한 잔 할래요?” 인사말처럼 친숙한 기호품인 커피는 우리 근대사에서 서구문화 유입을 상징하는 ‘기호’이기도 하다. 2005년 통계로, 100%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나라의 커피 소비량은 세계 11위권, 국민 한사람이 하루에 한잔씩(1년 347잔)은 마시고 있다. ‘양탕’에서 ‘다방커피’, ‘인스턴트 커피’, ‘자판기 커피’를 거쳐 ‘스타벅스’와 ‘원두커피’까지, 이 땅에 들어온 이래 150여년 동안 갖가지 유행과 풍속을 낳았다. 최근엔 원두 애호가가 늘어나면서 갖가지 커피 정보들도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껏 우리 시각에서 쓴 커피 연구서 한 권 없다. 그만큼 우리는 외래문물을 소비하는 데만 급급했다는 뜻은 아닐까? 이런 문제 의식에서 ‘커피의 뿌리찾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달 8일 출정하는 국내 첫 ‘커피역사탐험대’가 그들이다. “한국인과 커피의 첫 인연이 1896년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했을 때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문헌을 뒤져보니 1800년대 중반에 이미 선교사들에게 커피를 대접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커피의 원산지가 에티오피아의 지마라는 게 정설이지만 그 역시 영미인들한테 전해들은 것입니다. 과연 진실인지, 우리 발로 찾아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26일 저녁 남양주종합촬영소 진입로에 자리잡은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충주 보련산(해발 764m)으로 극기훈련을 떠나기 앞서 탐험의 취지를 설명하는 박물관장이자 대장 박종만(47)씨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지난 연말 박물관 홈페이지와 네이버 카페를 통한 공모에서 선발된 김상범(24·중앙대 정외과)씨와 김의진(24·고려대 국문과)씨, 그리고 다큐멘터리 전문 프로듀서 박익찬(31·채널코리아)씨 등 3명의 탐험대원들 역시 ‘한국인의 시각으로 커피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 첫 시도’라는 데 나름의 사명감과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한국인 첫 커피역사탐험대 일행. 박종만 대장, 김의진·김상범 대원, 박익찬 피디(왼쪽부터)가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의 커피 전파지도 앞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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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함께한 서구문화 아이콘
커피 이동경로 따라 7개국 탐험
우리 발과 눈으로 문화사 첫조명
‘한국식 커피’ 전파 그날을 그리며 그도 그럴 것이 ‘커피’라는 소재는 언뜻 사소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이들이 작정한 노정은 지금껏 시도해 본 적이 없는 ‘미지의 길’이다. 아프리카 커피의 주산지인 케냐와 탄자니아로 들어간 다음 에티오피아에서 홍해를 건너 예멘의 아덴과 모카항,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시리아, 터키까지 커피의 초기 이동경로를 따라 20일 동안 7개국을 답사한다. 관광 노선은 물론 없고 국가간 교통도 원활하지 않은데다, 언어 소통도 만만찮은 장벽이다. “다분히 모험적이지만 걱정스럽지는 않아요. 탐험 소식이 인터넷을 타고 전세계로 퍼진 덕분에 우리가 거쳐갈 현지에서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속속 보내오고 있거든요. 자발적 후원자들의 관심과 열의가 놀랍기도 하고 든든합니다.” 지난해 초 일반인 첫 남극세종과학기지 극지체험단을 26박27일 동안 동행취재한 경험이 있는 박 피디는 벌써부터 공중파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이번 탐험기를 방영하겠다는 제안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300 대 1의 경쟁을 뚫고 뽑힌 두 대원도 각자 특기를 살린 임무를 맡았다. 김상범 대원은 아버지를 따라 10여년간 갈고 닦은 사진촬영 감각으로 탐험의 전 과정을 찍기로 했고, 대학 방송국 피디이자 방송작가 교육 경력이 있는 김의진 대원은 글로써 기록할 계획이다. 그 결과물을 사진전과 책으로 대중들과 나누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커피와 특별한 인연이 없어서 뽑았습니다. 순수한 호기심과 신선한 시각으로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을 담고 싶거든요.” 그 자신 국문학과 출신의 칼럼니스트이고,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커피 애호가나 중독자들이 자비로 동행하겠다고 지원했지만, 박 대장이 굳이 문외한 젊은이들을 기록자로 택한 이유다.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의 온실에서 재배실험중인 커피나무에 빨간 커피체리 열매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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