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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15 18:03 수정 : 2018.06.07 15:21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이사

문재인 정부는 조세와 재정정책에서 지나칠 정도로 소심하다. 집권 후에는 기껏해야 핀셋 증세로 세금을 5조원 늘렸고 재정 지출은 임기 도중 연 8%씩 증대하겠다고 했다. 여당이 말하던 복지국가가 겨우 5조원 증세로 되는 것이었나? 문재인 정부의 복지국가 정책은 5조 증세로 가능한 복지국가였나?

문재인 정부 1주년을 맞아 여러 곳에서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거의 모든 설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최소한 80%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경제와 교육이다. 가장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갤럽이 5월4일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긍정평가 비율은 47%에 그쳤다. 게다가 그 평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나빠지고 있다. 경제정책에 대한 긍정평가가 취임 100일 후엔 54%, 취임 6개월 후엔 52%였던 것에 비해, 1년 뒤에는 47%로 떨어졌다.

서운하겠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앞에 내건 경제정책은 소득주도성장과 일자리 정책이다. 그런데 그 소득주도성장은 재정과 복지를 통해 총수요를 늘리겠다는 정책이 아니었다. 최저임금을 올려 자영업자와 기업 주머니에서 돈을 빼서 노동자 주머니로 옮기겠다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제로섬은 아니지만 제로섬에 가깝다. 일자리 정책은 어떤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둘러싼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 50만개를 만들겠다고 한 것은 너무도 기발했다. 52시간 법정노동시간 준수를 통해 약 20만개, 노동자들이 연차휴가를 다 쓰게 하여 30만개, 합계 약 50만개를 만들겠다는 발표를 보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이 연차를 많이 쓰면 기업 경영자가 채용을 늘리게 될 것이다? 유권자를 너무 바보 취급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조금이라도 민간기업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차라리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잊지 말자. 국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은 그의 개별 정책 때문이 아니다. 경제정책이 대단히 훌륭해서 뽑은 것도 아니다. 아무려나 그런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 그의 인간적 품격이 주는 신뢰감과 안정감 때문이었다.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사드 배치를 결정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책을 국민에게 여러 차례 자신있는 목소리로 피력해왔던 것도 큰 몫을 했다.

그에 비해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전이나 후나 경제정책에 관해 자신의 목소리로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을 설명하고 설득한 적이 없다. 대선토론을 할 때 유승민 후보가 일자리 정책에 대해 물어보자 그것은 정책본부장과 토론을 해보라고 대답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취임 후에도 지난 일 년간 문 대통령은 자기만의 목소리로 자기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과 일자리 정책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질문에 답해본 적이 없다. 국민들이 대북정책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아니라 문 대통령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듯이 경제정책에서도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낮고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순위와 경중이 뒤섞여서 그렇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성장이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구사할 수 있는 경제정책은 조세와 재정 정책이 제일 중요하다. 소득분배 개선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정책을 써볼 수도 있겠지만 그래 봤자 곁가지다. 그래서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이 선거를 할 때 경제정책 분야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늘 조세와 재정 정책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조세와 재정 정책에서 지나칠 정도로 소심하다. 지난 정권 내내 박근혜 정부를 증세 없는 복지를 하겠다는 것이냐며 비난하던 사람들이 정작 자기들이 정권을 잡을 것 같으니까 갑자기 입이 무거워졌다. 집권 후에는 기껏해야 핀셋 증세로 세금을 5조원 늘렸고 재정 지출은 임기 도중 연 8%씩 증대하겠다고 했다. 여당이 말하던 복지국가가 겨우 5조원 증세로 되는 것이었나? 문재인 정부의 복지국가 정책은 5조 증세로 가능한 복지국가였나? 혹시 노무현 정부 때 종부세 파동의 상처에서 잘못된 교훈을 얻은 것은 아닌가 싶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방 한가운데에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있는 코끼리는 못 본 척하고 방구석 쥐만 잡으려는 형국이다. 과거에는 고속경제성장 덕분에 턱없이 불공정한 조세와 빈약한 복지로도 사람들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지금처럼 경제성장이 연간 3%인 나라가 조세부담률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20%로 유지하면서 어떻게 소득 양극화를 개선하겠다는 것인지 누가 제발 설명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설명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했으면 좋겠다.

*‘조한혜정 칼럼’을 마치고 ‘주진형 칼럼’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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