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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12 18:21 수정 : 2018.06.13 12:22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정부는 진즉부터 정책 결과를 평가할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하고 있어야 했다. 최저임금 1년에 16.4% 인상은 일종의 대규모 경제정책 실험이다. 아무도 안 가본 길이다. 그에 따른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어야 했다.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밝히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나는 소득주도성장론에 회의적이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만원으로 올리자는 것에도 반대한다. 소위 속도조절론자다.

그러나 나는 이런 내 의견이 탄탄한 증거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자신하지는 않는다. 올해 급격히 인상된 최저임금이 고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직은 확실히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발표된 정부 통계에만 의존해 말한다면 고용 증가세가 둔화되고 소득분배가 나빠진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의한 것인지를 현재까지 알려진 통계에 근거해 확정적으로 결론 내기엔 아직 이르다. 최저임금 하나 좀 많이 올렸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6개월 만에 소득분배가 나빠졌다고 하는 주장도 믿기 어렵다.

한 가지 지적할 것은 있다. 정부의 준비 부족과 대응 방식이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분석하기 위한 준비를 제때에 미리 하지 않고 있다가 올해 1/4분기 통계가 나오면서 허둥대고 있다. 정책 당국자들 각자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그것과는 별개로 현 정권이 이 논란을 다루는 방식은 미숙하기 짝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준비 부족부터 얘기하자. 노동시장은 매우 복합적인 시장이다. 인구동학적인 요소, 거시경제적인 요소, 산업별 지역별 경기 효과 등이 중첩해서 작용한다. 이에 비해 고용률, 실업률, 임금 상승률 등은 그 복잡한 움직임의 일면만을 보여주는 통계다. 그래서 최저임금 인상에 노동시장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어떤 방식으로 반응을 보일지 미리 알기도 어렵고 나중에 분석하기도 쉽지 않다. 다른 변수에 의한 효과를 걸러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이미 학자들 사이에서도 예견되었다. 데이터가 나와도 그 데이터를 해석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3개월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은데 어차피 6월 말이 되면 또 2019년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하니 제대로 분석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정부는 진즉부터 정책 결과를 평가할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하고 있어야 했다. 최저임금 1년에 16.4% 인상은 일종의 대규모 경제정책 실험이다. 아무도 안 가본 길이다. 그에 따른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어야 했다. 제일 중요하게는 최저임금 근처 노동자, 즉 근로소득 월 150만원 근처의 노동자를 중심으로 그들의 고용, 노동시간, 그리고 임금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분석하기 위한 패널을 만들어 놓고 데이터를 미리 쌓아놓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준비는 안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고용동향과 가계소득 설문조사같이 다른 용도로 만들던 일반적 자료가 발표되자 추가로 데이터 분석을 의뢰하고 그걸 갖고 서로들 자기 멋대로 해석하느라 소동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두 통계 모두 최저임금의 고용 영향을 평가하는 데 적합한 자료가 아니다. 결국 서로 각자가 갖고 있는 기존 주장만 반복하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준비를 소홀히 한 것은 차치하고 논란을 자기들 안에서 정리하는 과정도 미숙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현 정부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사안이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이런 문제에 관한 대응을 둘러싸고 정부 내부에서도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에 관한 정부의 공식 입장과 대책은 내부 토론이 정리된 후 발표해야 한다.

이에 비해 정부는 외부에 거의 공개하다시피 하는 회의를 하고, 정책 당국자 간 이견 노출은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참석자들이 회의 분위기를 언론에 전하고, 대통령은 무슨 근거에 의한 판단인지 불확실한 발언을 하고, 청와대 대변인은 이를 언론 브리핑에서 전하고, 그 발언의 근거를 묻는 질문이 일자 그에 대해선 설명할 수 없다고 하다가, 며칠 뒤엔 경제수석이 직접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그랬더니 이번에 전체 가구 중 60%에 해당하는 근로자가구만을 갖고 견강부회를 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매우 부적절하고 미숙한 일처리 방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한가지 얻은 것은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을 어떻게 생각하든 적어도 최저임금 하나로 소득주도성장을 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인식하게 되었다. 사실 소득주도성장론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 최저임금 인상은 한 예로만 제시되었을 뿐 그것이 핵심 전략으로 제시된 적이 없다. 최저임금 만원 같은 인기 영합주의적인 어구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소득분배를 제대로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해야 할 때다. 정권이 출범한 지 1년이 지났고 눈치 보던 지방선거도 끝나니 충분히 기다린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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