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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01 18:42 수정 : 2019.01.02 09:58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여전히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투자가 많은 나라다. 지난 10년간 한국은 평균적으로 지디피의 약 30%를 투자에 늘 써왔다. 미국의 국내총투자율은 20%, 독일도 20%, 대만도 20%, 그리고 일본만 23%다. 그러나 한국은 투자 효율성은 매우 낮다. 가장 큰 이유는 생산성 증대 효과가 더 이상 높지 않은 건설투자에 지나치게 많은 자원을 배분하는 데 있다.

문재인 정부가 올해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민간부문 투자 활성화를 내세웠다고 한다.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온다. 그리고 이거 어디선가 본 것 같다. 거의 모든 정권이 출범하고 1~2년이 지나면 계면쩍은 얼굴로 관료들 뒷주머니에서 꺼내어 내놓던 구겨진 메뉴와 다를 게 없다.

과연 한국은 투자가 부족한 나라인가? 한국이 그동안 투자를 안 해서 성장률이 낮아진 나라인가? 아니다. 한국은 투자를 많이 하는 나라다. 그것도 그냥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하는 나라다.

숫자로 말하자. 지난 10년간 한국은 평균적으로 국내총생산(GDP·지디피)의 약 30%를 투자에 늘 써왔다. 국내총투자율은 2013년 이래 2016년까지 4년간 29%대에 머물다가 재작년인 2017년 31%로 비교적 급격히 올랐지만 이는 주로 최경환 효과에 의한 아파트 건설과 일시적인 반도체 호황으로 설비투자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시적 요인은 지속될 수 없다. 2018년 국내총투자율은 30%로 예상되는데 이는 2017년에 비해서 낮은 것일 뿐 2013~2016년과 비하면 높다.

물론 이는 고성장기에 비하면 많이 낮은 숫자다. 경제성장률을 7~8%로 억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재벌 기업을 동원해 무모한 투자를 때려박던 1990년대 초 한국 경제는 지디피의 약 40%를 투자에 썼다. 소위 국제통화기금(IMF·아이엠에프) 위기가 닥치기 직전인 1996년에도 한국은 지디피의 36%를 투자에 쓰고 있었다. 아이엠에프 위기의 쓰라린 고통을 겪고 난 후에야 제정신이 든 한국은 수익성을 무시한 방만한 투자와 이를 뒷받침하던 무분별한 기업대출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2000년 이후 한국의 국내총투자율은 지디피의 30% 근처에 머물러왔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투자가 많은 나라다. 다른 나라 숫자와 비교해보자. 미국의 국내총투자율은 20%, 독일도 20%, 대만도 20%, 그리고 일본만 23%다. 즉 이들은 자기들이 생산하는 부가가치의 20%만 투자하고 나머지를 소비하면서도 2%대의 성장률을 만들어내고 있고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성장률은 그들보다 훨씬 뛰어나지도 않은데 투자에 쓰는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지디피 대비 10%포인트나 더 높고 일자리는 부족하다.

조금 더 실감나게 설명하기 위해 이것을 구체적인 숫자로 환산해보자. 한국 지디피가 약 1700조원이라고 칠 때 그의 10%에 해당하는 170조원을 남들보다 투자에 더 써서, 비율로는 2.7%, 액수로는 46조원의 성장을 우리는 매년 만들어내고 있다. 만약 우리가 남들처럼 지디피의 20%만 투자해서 2% 성장만 한다면 이는 매년 170조원을 절약하는 대신 성장액이 34조원에 그친다는 말이 된다. 매년 170조원을 더 소비하는 대신 내년엔 전체 파이가 12조원이 덜 커진다고? 나라면 언제라도 이것을 택하겠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한국이 투자 효율성이 매우 낮은 나라라는 뜻이다.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투자해서 남들과 그리 다를 게 없는 성장률을 내고 있으니 말이다.

왜 그럴까? 투자의 구성을 들여다보면 실마리가 보인다. 한국은 총투자의 반, 즉 지디피의 15%를 건설투자에 쓰고 있다. 이에 비해 평균적으로 미국은 8%, 독일은 10%, 일본은 10%, 대만은 9% 정도를 건설투자에 쓴다. 한국으로 치면 지디피의 5~7%에 해당하는 85조~136조원을 이들 나라는 덜 쓴다. 만약 건설투자가 공장설비나 지식재산 투자에 비해 미래 경제 생산성 증대에 도움이 덜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투자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을 고집한다면 남들보다 더 높은 투자율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이 별다를 게 없는 결과를 누구든 피할 수 없다.

바로 그게 한국이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투자효율성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생산성 증대 효과가 더 이상 높지 않은 건설투자에 지나치게 많은 자원을 배분하는 데 있다. 그다음으로, 힘이 센 대기업 노조 때문에 대기업의 설비투자가 지나치게 자본집약적인 것도 한몫을 한다. 한국이 제조업에서 노동자당 로봇을 제일 많이 쓰는 나라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교육이 무의미한 순위 경쟁에 빠져 지적 자본을 위한 투자가 비효율적인 것도 한몫을 한다. 그래도 건설투자 과잉이 제일 큰 이유인 건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 말하길,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면서 다른 결과를 원하는 게 바로 미친 것이라고 했다. 집권 3년 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이 바로 그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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