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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21 19:00 수정 : 2018.10.15 18:36

언어치료사 노성임씨가 ‘ㅊ’ 발음을 하지 못하는 47개월 된 남자아이에게 발음 교정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양선아 기자의 베이비트리]

“마마마…음…마…”라고 말하던 아이가 어느 날 “엄마”라는 말을 정확히 내뱉는 순간, 모든 엄마는 환호성을 지른다. 아이의 말문이 트인 사실에 기뻐하며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한다.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는 이처럼 아이 발달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아이의 ‘말’에 관심을 쏟는다. 말을 한다는 것은 아이의 뇌가 끊임없이 시냅스와 가지 돌기를 재구성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이러한 언어 발달의 토대 위에서 인지 발달도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기에 아이가 말하고 의사 표현도 잘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아이의 ‘말’과 관련해 부모가 고민하는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고, 각각의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살펴본다.

선택적 함구증, 친구도 잘 못 사귀어

가장 흔한 고민 중 하나가 또래보다 말이 늦거나 말을 더듬는 경우다. 아이가 태어나서 12개월 정도 지나면 엄마나 아빠라는 단어 외에 한두 단어를 더 말할 수 있다. 18~24개월 된 아이는 “엄마, 우유 줘” “이게 뭐야?”처럼 두 단어로 간단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이보다 늦게 말문이 트이는 경우가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생후 24개월 이후 말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말귀를 잘 알아듣고 눈맞춤도 잘하고 부모의 말에 제대로 반응하면 생후 48개월 정도까지는 기다려볼 수 있다고 말한다.

말문 늦다고 너무 안달 말고
말귀 알아듣고 제대로 반응하면
48개월 정도까지는 지켜볼 필요

나이 상관없이 청각 자극 무디거나
연령별 일정 기준 못 미치면 치료

성대·뇌 이상이나 발달 지체 등
언어 장애의 원인과 증상은 다양

어린이집에만 가면 ‘꿀 먹은 벙어리’
혼내거나 억지로 말 시키지 말고
집에서 친구와 편안하게 놀게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얼음’
기질 인정해주고 공감 우선
적당한 무관심이 오히려 도움

그러나 생후 9개월인데 옹알이가 없거나 18개월에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경우, 24개월에 간단한 명령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두 단어 문장을 말하지 못할 때, 36개월에 문장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거나 5살 이후 말 유창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는 전문가와 상담을 해 언어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청각 자극에 반응이 부족한 경우도 치료가 필요하다.

언어 장애의 원인과 증상은 다양하다. 잘못된 발음을 하는 ‘조음 장애’, 성대 이상에 따른 ‘음성 장애’, 말을 더듬는 ‘유창성 장애’, 뇌의 이상으로 인한 ‘신경언어장애’(실어증), 난청·농으로 생기는 ‘청각 장애’, 나이보다 언어 수준이 떨어지는 ‘언어 발달 지체’ 등이 있다.

말을 할 줄 아는데도 특정 상황에만 말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49개월 된 정아(가명)는 가족들 앞에서는 말을 유창하게 하고 자기주장도 강하다. 그런데 유독 어린이집에만 가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선생님에게 말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30분마다 한 번씩 “화장실에 가고 싶으냐”고 물어봐야 할 정도다. 어린이집만 가면 입을 닫고 있는 정아는 친구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정아 같은 사례를 선택적 함구증이라고 부른다.

낯선 사람 앞에서 수줍음을 타는 아이에게 무조건 말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이의 수줍음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적당한 무관심과 함께 천천히 다른 사람과 만났을 때 즐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부끄러움 많은 아이” 사과는 잘못

김영훈 가톨릭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선택적 함구증을 보이는 아이들은 말을 할 줄 알면서도 자신이 누구에게 언제 어디에서 말할지 선택해서 말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김 전문의는 “이런 아이들은 놀이치료를 하면서, 양육자가 적절하게 아이에게 사회적 상호작용할 기회를 제공하면 차차 증상이 개선된다”고 설명했다. 선택적 함구증을 가진 아이에게는 자신이 편안한다고 생각하는 공간(대개는 집)에서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를 늘려줘야 한다. 갑작스럽게 친구 여러 명을 초대하는 것보다는 친구 한 명을 초대해서 함께 놀 시간을 주고, 점차 노는 시간과 접촉하는 친구 수를 늘려나가는 것이 좋다. 부모와 아이가 역할 놀이를 하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 좋다. 말을 할 때 쭈뼛쭈뼛한다고 혼내거나 억지로 말을 강요하면 증상은 악화된다.

언어 발달은 정상적인데 기질상 수줍음이 많아 발표력이 떨어지거나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얼음’이 되어버리는 아이도 있다. 이럴 땐 부모가 아이의 기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 “아빠도 어렸을 때 선생님이 발표하라고 하면 엄청나게 떨렸어”라는 식으로 아이의 입장을 잘 이해해주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미국의 아동 심리학자 제리 와이코프는 <소리치지 않고 때리지 않고 아이를 변화시키는 훈육법>에서 “아이의 발달 단계와 성격을 감안했을 때 당신이 아이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비현실적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부모가 친화력 좋고 외향적인 아이라는 이상적인 아이상을 만들어놓고 조심스럽고 소심한 자녀는 문제아로 치부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라는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 앞에서 “왜 이리 숫기가 없느냐” “왜 어른에게 인사를 안 하냐?”라고 핀잔을 주거나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니 이해해달라”고 다른 사람에게 부모가 사과를 하는 것은 잘못된 대처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아이는 더욱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고, 자신을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라고 스스로 낙인찍게 된다.

즐거운 경험 되도록 장치 마련

수줍어하는 아이에게 과도하게 친절을 베풀거나 관심을 보이는 것도 아이의 수줍음 극복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줍음이란 자신에 대한 상대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반응이기 때문이다. 서천석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는 “적당한 무관심이 오히려 도움이 되며, 만약 아이가 조금이라도 자기표현을 하고 개선된 모습을 보이면 양육자나 주변에서 강하게 칭찬을 해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서 전문의는 아이가 낯선 사람을 만날 때면 조건반사를 만들듯 즐거운 경험이 되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다른 사람과 만날 때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음식을 사주면 아이는 타인과의 만남에서 즐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게 된다. 또 가족끼리 있는 편안한 시간에 부모와 아이가 대화를 하면서 구체적인 대화법을 가르치는 것도 좋다. “아까 할아버지가 아영이에게 몇살이냐고 물었지? 그럴 땐 ‘세살이에요’라고 말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알려준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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