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4·16재단 이사장 60~70년대 미술인들은 술만 취하면 ‘베껴묵기’를 노상 입에 달고 살았다. 이런 식이다. “누구는 브랑쿠시(루마니아 태생 프랑스 유명 조각가)를 ‘베껴묵고’ 베껴묵은 누구를 또 누가 베껴묵고….” 서양 모더니즘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시절의 풍경이다. 그러면 베끼기의 일종인 ‘인용’과 ‘훔침’은 어떻게 다른가? 이번엔 만 52개월 된 내 손자 얘기로 시작한다. 요즘 들어 이 애가 가끔가다 독특한 말솜씨를 구사한다. “굳이 지금 밥 먹을 필요가 있나.” “불난 꿈을 꿨는데 가로등에 공을 던지니 공이 깨지고 피지직 하며 불이 났어. 심지어 등이 켜져 있지도 않았는데….” ‘굳이’와 ‘심지어’와 같은 부사는 그 나이에 쓰기 어려운 단어다. 내가 손주 얘기를 하는 이유는 모든 감성적인 활동은 다른 사람이 이미 한 행위(말이나 글쓰기, 그리기)를 빌려 온다는 것이다. 내 손주가 사용한 ‘굳이’ ‘심지어’ 등의 어휘는 자기 엄마나 유치원 선생님한테 들은 말 가운데 자기 말의 맥락에 맞추어서 사용했을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창조적 베끼기’가 아닐까.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본 글이다.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에서 이 책의 저자 오스틴 클레온은 이렇게 말한다. “알다시피 예술 작품은 역사 속 수많은 선배와 동료의 작품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영향받고, 영감을 얻으며, 도용하고, 슬쩍 베끼고, 똑같은 것을 다른 맥락에 놓고, 같은 것을 다르게 사용하며… 등의 행위와 함께 만들어진다. … 좋은 작품 하나에는 온갖 예술의 역사와 현재의 여러 요소와 징후들이 교집합을 이루며 가득 들어차 있다.”
칼럼 |
[김정헌 칼럼] 글쓰기와 그림그리기에서 ‘인용과 훔침’ |
화가, 4·16재단 이사장 60~70년대 미술인들은 술만 취하면 ‘베껴묵기’를 노상 입에 달고 살았다. 이런 식이다. “누구는 브랑쿠시(루마니아 태생 프랑스 유명 조각가)를 ‘베껴묵고’ 베껴묵은 누구를 또 누가 베껴묵고….” 서양 모더니즘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시절의 풍경이다. 그러면 베끼기의 일종인 ‘인용’과 ‘훔침’은 어떻게 다른가? 이번엔 만 52개월 된 내 손자 얘기로 시작한다. 요즘 들어 이 애가 가끔가다 독특한 말솜씨를 구사한다. “굳이 지금 밥 먹을 필요가 있나.” “불난 꿈을 꿨는데 가로등에 공을 던지니 공이 깨지고 피지직 하며 불이 났어. 심지어 등이 켜져 있지도 않았는데….” ‘굳이’와 ‘심지어’와 같은 부사는 그 나이에 쓰기 어려운 단어다. 내가 손주 얘기를 하는 이유는 모든 감성적인 활동은 다른 사람이 이미 한 행위(말이나 글쓰기, 그리기)를 빌려 온다는 것이다. 내 손주가 사용한 ‘굳이’ ‘심지어’ 등의 어휘는 자기 엄마나 유치원 선생님한테 들은 말 가운데 자기 말의 맥락에 맞추어서 사용했을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창조적 베끼기’가 아닐까.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본 글이다.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에서 이 책의 저자 오스틴 클레온은 이렇게 말한다. “알다시피 예술 작품은 역사 속 수많은 선배와 동료의 작품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영향받고, 영감을 얻으며, 도용하고, 슬쩍 베끼고, 똑같은 것을 다른 맥락에 놓고, 같은 것을 다르게 사용하며… 등의 행위와 함께 만들어진다. … 좋은 작품 하나에는 온갖 예술의 역사와 현재의 여러 요소와 징후들이 교집합을 이루며 가득 들어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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