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는 너무 많은 가짜의 범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니 가짜가 진짜를 누르고 진짜 행세를 하고 있다. 국회를 비롯한 정치인들,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인들, 무한 반복되는 가짜뉴스들, 야만의 혐오 발언 등등, 우리 사회에 가짜는 차고 넘친다. 오죽하면 모든 언론 매체에 ‘팩트체크’라는 가짜 감별사까지 등장했겠는가. 다시 한번 사회 전반에 가짜를 몰아내고 적폐를 청산하는 새로운 리얼리즘 정신이 필요해 보인다.
김정헌
화가, 4·16재단 이사장
우리의 삶은 항상 줄타기를 한다. 우리의 삶이란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기도 하다. 하루는 긍정적이었다가 다음 날은 부정적이다. 그러다 며칠 지나다 보면 그러면 그렇지 하고 좀 더 낙관적인 전망을 갖게 된다. 요즘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그렇다. 하여튼 이 ‘혹시나’에서 ‘역시나’의 널뛰기의 전망은 한마디로 ‘아슬아슬하다’다.
리얼리즘은 사회의 현실과 삶을 대하는 태도나 자세다. <문제는 리얼리즘이다>를 쓴 루카치는 ‘리얼리스트는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또 그들이 행동하는 상황 속에서, 객관적 발전 경향으로서 사회에 대해, 나아가 전 인류의 발전에 대해 장기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지속적 요인들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삶(현실)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자세는 300년 전후 조선시대의 사대부 화가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여기서 잠시 조선시대 문예부흥기라 일컫는 영·정조 때의 사대부 문인 화가 관아재 조영석을 호출해 보자. 관아재 전후해서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에서 한 두 세대 뒤의 단원, 혜원 등의 화원화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미술의 힘을 보여주는 조선시대 리얼리즘의 전성기이다. 특히 관아재 조영석의 풍속화첩을 보고 있으면 그가 얼마나 민중들의 삶에 눈길을 돌리고 이를 잘 표현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 같은 경우 그림의 범주로 보면 조선시대의 붓으로 그린 그림과는 다른 서양화를 배웠고 서양화가로 쭉 지내왔다. 요즘 들어 유홍준 교수의 <화인 열전>과 이태호 교수의 <조선 후기 회화의 사실정신>을 읽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회화상의 리얼리티에 관한 연구’로 대학원 논문도 쓴 필자로서는 우리 회화에도 사실주의 정신이 18세기 초부터 그 줄기가 뻗어 있구나 하는 자각과 함께 부끄러움이 앞섰다.
인생 후반기에 발견한 조선시대의 ‘화인(환쟁이) 열전’은 나로 하여금 미술의 사실정신이 엄격한 계급사회인 조선시대에도 사대부들 속에서 꽃피었다는 게 한없이 반가웠다. 그들 가운데 대표 격인 관아재 조영석은 사실정신의 강조에서 더 나아가 그림의 ‘사회적 역할’까지 ‘대책을 묻노라’는 책제(策題) 속에서 다음과 같이 자문자답한다.
“묻노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회화는 법교를 이루게 하고 인륜을 돕는다고 했는데, 어느 시대에 비롯되고 어느 시대에 왕성하게 빛났는가? (중략) 송(宋)의 정협은 기근으로 인한 유민들의 참상을 아뢰기 위해 유민도(流民圖)를 그려 바침으로써 신종(神宗)을 감동시켰는데, 그림보다 나은 것이 없었는가?…”
그러면서 그는 형상을 제대로 그려 내는 사실주의 정신과 문장이나 글씨로 형용해 낼 수 없는 것을 그림에서는 (능히) 구할 수 있다는 ‘그림의 힘’까지 역설하고 있다.
관아재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저 무시무시한 자화상을 그리고 천문지리에도 밝았던 공재 윤두서는 주위의 일상과 관련된 풍속이나 말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묘사했다. 그래서 그도 여러 점의 풍속화를 남겼는데 그중에는 <돌 깨는 석공>도 있다. 이는 서양의 사실주의, 즉 리얼리즘을 처음으로 주장한 귀스타브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석공을 그린 그림이다. 물론 쿠르베와 공재와 관아재의 현실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쿠르베보다 한 세기 반 이상을 앞선 관아재의 화론이나 공재의 풍속화는 우리의 리얼리즘이 얼마나 빨랐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무릇 회화에서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면 이에 대한 여러 비평이 존재해야 하고 또한 그 경향에 따른 수요층, 즉 관객층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그 시대의 문화예술이 폭넓게 활력을 얻는다. 그 당시 비평을 주도했던 <청죽화사>의 남태응과 <화주록>의 이규상 등이 이에 속한다. 그들의 회화론과 회화비평은 그림을 그리는 화인들과 함께 그 시대를 문예부흥기로 이끌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대부 화가들도 자기의 화론과 더불어 남의 그림에 대한 비평을 쏟아내곤 했다. 예컨대 공재와 관아재, 강세황이 그랬으며, 다산 정약용은 그의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사실주의 화론을 펼쳤다. 또한 단원과 함께 혜원 신윤복의 뛰어난 풍속도가 나타났던 것은 그를 필요로 하는 수요와 관객층, 그림의 매매시장이 어느 정도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공재 윤두서의 그림은 ‘중인층이 좋아하여 수표교 최씨가 많이 소장하였다’거나 김홍도의 후원자 중에 소금장수 갑부가 포함되었다(남태응의 <청죽화사>)는 기록 등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 조선 후기 사실정신은 임진, 병자의 두 대란을 겪은 후의 비교적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시대였다는 것이 시대 배경이다. 이태호 교수는 위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경제성장을 토대로 한 봉건사회 해체기 내지 근대로의 이행기라는 커다란 사회 변동 속에서 다른 분야보다 당대 사람들의 의식 변화와 미적 이상, 삶의 정취와 시대 향기, 예술성을 구체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발산하고….”
특히 탕평책을 쓴 영조와 단원 같은 천재 화가를 알아보고 후원했던 정조의 품격 있는 안목이 그 시대를 문예부흥기로 만들었으리라. 한편으로 관아재가 주장했듯이 그림은 문장이나 글씨가 담아내지 못하는 것을 능히 담아내기도 하지만 또한 사대부나 화원화가를 가리지 않는다. 즉, 그림은 계급을 가리지 않고 오직 그림에 나타난 품격만을 가릴 뿐이다.
내친걸음이니 여기에서 내가 호출한 관아재에게 한번 물어보자. “관아재에게 묻노라, 그대는 300년 후 오늘에 살았으면 능히 ‘민중미술’을 우리와 같이하였겠는가?” 아마도 관아재만이 아니라 공재, 겸재, 단원, 혜원 등이 우리 시대에 살았으면 그들은 틀림없이 ‘민중미술’ 패에 가담했으리라.
조선시대 중반에 시작된 사실주의 정신은 그 후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정신을 이어 발전하지 못하고 퇴보를 거듭했으며 근대에 서양 문물이 도래하여 서양화가 들어온 다음부터는 서양의 모더니즘이 우리의 화단을 휩쓸었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이어진 유신, 군부 독재는 우리 시대의 사실정신을 말살하다시피 했으니 우리 회화사에 미친 악영향은 막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70년대 말 시작된 <현실과 발언>을 비롯한 민중미술은 다시 ‘비판적 리얼리즘’을 살려내 오늘날까지 뚜렷한 성과를 우리 사회에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너무 많은 가짜의 범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니 가짜가 진짜를 누르고 진짜 행세를 하고 있다. 국회를 비롯한 정치인들,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인들, 무한 반복되는 가짜뉴스들, 야만의 혐오 발언 등등, 우리 사회에 가짜는 차고 넘친다. 오죽하면 모든 언론 매체에 ‘팩트체크’라는 가짜 감별사까지 등장했겠는가. 다시 한번 사회 전반에 가짜를 몰아내고 적폐를 청산하는 새로운 리얼리즘 정신이 필요해 보인다. 진실과 정의에 가까이 가려는 리얼리즘 정신이 미술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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