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17 18:09
수정 : 2019.01.17 19:29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을 리 없는 동물들은 구조된다 한들 이후의 삶이 평탄하지 않다. 우선 새 반려인을 만나기가 어렵다. 구조된 동물 다섯마리 중 한마리꼴로 안락사를 당하고 있다.
박현철
애니멀피플 팀장
“먹이를 주고 올가미로 들어 올린 다음 숨을 막히게 해 죽였다. 다른 개들이 다 보고 있었다. 개들이 철장에서 안 나오려는 이유가 이제 자기 순번인 줄 알고 그러는 거다.”
2018년 7월9일 경기도 남양주의 한 개농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악취가 들끓는 수십개의 뜬장(배설물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바닥에 구멍을 뚫은 장) 속에 갇힌 개들은 사람들이 다가가자 으르렁댔다. 자신들을 구하러 온 동물단체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을 개들은 무서워했다. 식용을 목적으로 태어나 길러진 개들에게 철장 밖은 곧 죽음이었다.
이틀에 걸쳐 200여마리 개들이 구조됐다. 동물권단체 케어(CARE) 활동가와 자원봉사자, 연예인까지 15명 이상이 구조에 동원됐다. <애니멀피플>도 현장에 있었다. “구조된 개들은 건강 검진과 치료, 사회화 훈련을 무사히 마친 뒤 입양을 보내기로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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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8일 경기도 포천에 있는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구조견 보호소 모습. 포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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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사회화 훈련을 하고 입양시키고) 한다기에 믿었다. 저항하는 농장주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인 개들을 구조하는 과정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일들을 해냈으니 이제 ‘좋은 일’만 남았다고 믿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날을 포함해 동물권단체 케어가 박소연 대표의 지시 아래 구조한 개들 중 200마리 이상을 보호소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몰래 안락사시켰다는 폭로가 지난 11일 나왔다. 대규모 구조로 단체를 홍보하고 보호소가 비좁아지자 안락사를 시키고, 다시 대규모 구조를 벌이는…. 법적인 책임 유무를 떠나 생명을 살리겠다는 이들이 생명을 또 다른 수단이자 도구로 대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구조는 활동이 아닌 사업이었다.
‘구조된 개들이 구조될 개들을 위해 희생됐다’는, 믿기 힘든 이 이야기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구조에 환호하고 열광하는 것으로 우리 곁의 동물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눈감아버린 건 아닐까.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을 리 없는 동물들은 구조된다 한들 이후의 삶이 평탄하지 않다. 우선 새 반려인을 만나기가 어렵다. 구조된 동물 다섯마리 중 한마리꼴로 안락사를 당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보면, 2017년 한해 동안 전국 지방자치단체 동물보호센터를 통해 구조된 유기동물은 10만2593마리였는데, 이들 중 30%(3만945마리)가 입양됐고 27%(2만7844마리)가 자연사, 20%(2만768마리)가 안락사했다. 반려인구 천만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펫숍이나 가정 입양을 통해 반려동물을 데려온다. 이런 현실은 해마다 10만마리 이상의 유기동물이 발생하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구조된 동물이 입양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힘겹게 만나더라도 반려인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박소연 대표와 ‘몰래 안락사’를 도모한 것으로 보이는 케어 직원은 박 대표와 카카오톡으로 이런 얘길 나눴다. “사람들 눈만 없으면 그랬음(안락사) 좋겠어요. … (중략) 너무 사람 무서워하고 순화시키려면 시간도 걸리고. 먼 데 가서 잘못되느니….” 동물들 역시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여는 데 시간이 필요할 테지만 사람들은 잘 기다려주지 않는다. 반려인도, 보호센터도, 동물권 단체도.
‘몰래 안락사’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박소연 대표를 비롯한 관련자들에게 법적, 사회적, 도의적 책임을 묻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보호소에 유기동물들이 넘쳐나는 현실, 생명을 사서 버리는 행위가 초래한 현실을 드러내고 바꿔야 한다. 왜 버리는지, 못 버리게 할 순 없는지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야 한다.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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