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27 09:28
수정 : 2018.10.27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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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구럼비바위에 누워 평화를 꿈꿨다.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부지런한 사람들이 400년 동안 이어온 강정마을이 그대로 지켜지길 빌었다. 그러나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2013년 3월 구럼비는 파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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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도르리의 골목도르리 ④
제주 강정마을 국제관함식
제주 해군기지 국제관함식
강정 아이 이우가 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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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구럼비바위에 누워 평화를 꿈꿨다.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부지런한 사람들이 400년 동안 이어온 강정마을이 그대로 지켜지길 빌었다. 그러나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2013년 3월 구럼비는 파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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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르리’는 음식을 차례로 돌려가며 내어 함께 먹거나 어떤 것을 똑같이 골고루 나누는 일을 뜻합니다. ‘창작집단 도르리’는 인천 동구 만석동
기차길옆작은학교에서 자라거나 활동해온 이모·삼촌의 창작 공동체입니다. 김성수·오정희·유동훈 세 사람이 함께합니다. 그들은 예술활동을 통해 ‘가난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편견을 무너뜨리길 꿈꿉니다. ‘도르리의 골목도르리’는 그림, 만화, 인형 등으로 우리가 사는 동네와 골목, 사람, 세상을 격주로 이야기합니다.
2011년 7월18일 제주 강정마을에 처음 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첫눈에 들어온 것은 집집마다 걸어놓은 ‘해군기지 반대’ 노란 깃발이었다. 강정마을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이다. 길이 1.2㎞의 구럼비바위가 펼쳐진 중덕바닷가 앞에는 천연기념물인 연산호가 살고, 남방돌고래가 헤엄을 쳤다. 처음 일주일은 구럼비바위 위에 있는 할망물 식당에서 밥을 먹고, 구럼비바위 위에서 잠을 자며 주민들을 도왔다. 구럼비바위는 제주의 거친 현무암 바위와 달리 회갈색의 평평한 통바위이고 용천수가 고였다. 그래서 민물에서만 산다는 붉은발말똥게와 맹꽁이가 살고 바위 곳곳에 통이라는 물웅덩이가 있었다. 거기서 멱을 감으며 강정 아이들과 놀았다. 그리고 구럼비바위에 누워 평화를 꿈꿨다.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부지런한 사람들이 400년 동안 이어온 강정마을이 그대로 지켜지길 빌었다.
제주 강정마을에서 찍어 온 사진을 돌에 새긴다.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윤동주의 시 한 구절을 되뇌어본다.
2018년 10월11일부터 나흘간 제주 강정 해군기지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은 강정 주민들을 또다시 갈등에 휩싸이게 했다. 경찰은 국제관함식을 반대하는 강정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을 고착시킨 채 행사를 강행했다. 고착된 이들의 분노가 커질수록 경찰 벽은 더욱 모질게 사람들을 압박했다. 분노가 슬픔과 무력감이 섞인 절망으로 바뀌어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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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함식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경찰에 고착됐다.(위) 강정에서 평화활동을 하다 주민이 된 에밀리가 바리케이드 앞에서 콩을 다듬었다.(아래 왼쪽) 그의 세살배기 딸 이우가 온종일 고착된 할아버지 신부님에게 가서 자기 간식을 한입 떠 넣어줬다. 돌에 사진 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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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에서 평화활동을 하다 부부가 된 에밀리와 동원의 세살배기 딸 이우가 움직였다. 종일 경찰들에게 고착되어 있던 할아버지 신부님에게 가서 자기 간식을 한입 떠 넣어줬다. 경찰에 밀려 안경이 깨지고 눈가에 멍이 든 미량 이모 옆에 앉아서는 위로라도 하듯 뭐라고 속삭였다. 온종일 마이크를 들고 해군과 경찰에게 항의를 하던 딸기 이모가 그 모습을 보며 그날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날이 저물자 사람들은 투쟁하던 그 자리에서 밥을 먹었다. 구럼비바위가 있던 곳을 웃는 듯 우는 얼굴로 바라보면서.
사진을 새기며 빈다. 그날의 풍경이 위정자들의 가슴을 돌이 되어 무겁게 누르기를, 엄마 아빠가 강정마을의 평화와 마을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싸워왔듯이, 강정 아이 이우도 언젠가 해군기지 너머 깨어진 구럼비바위 위에 바닷바람을 맞으며 당당하게 서기를.
글·그림·사진 김성수 유동훈 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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