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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08 13:53 수정 : 2018.12.08 13:59

만석동(인천 동구) 골목에는 각목과 비닐로 만든 굴막이 있다. 동네 사람들은 그 굴막에 옹기종기 모여 겨우내 굴을 깐다. 그림 김성수

[토요판] 도르리의 골목 도르리 ⑦
굴 익는 계절

만석동 굴막에 모여 굴 까는 할머니들
굴 껍질 속에 들어찬 그들 삶의 이야기

사람마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순간이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날씨로, 어떤 사람은 꽃이 피고 지는 것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나는 냄새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만석동(인천 동구)은 늦가을이 되면 동네 어귀부터 비릿한 굴 냄새가 퍼지기 시작한다.

만석동 골목에는 각목과 비닐로 만든 굴막이 있다. 동네 사람들은 그 굴막에 옹기종기 모여 겨우내 굴을 깐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굴막 주위로 굴 껍데기를 담은 비닐 포대가 쌓인다. 굴 냄새가 골목마다 고이면 내 입안에는 침이 고인다.

며칠 전 이른 새벽이었다. 판자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만석동 골목을 걸었다. 비를 피해 골목 어디론가 숨은 고양이들마저 잠이 들었을 그 시간에 굴막이 환했다. 날이 춥고 알이 여물 때 굴을 까야 하기 때문에 할머니들은 밤낮없이 굴을 깐다. 나는 까닭 없이 빛이 새어 나오는 굴막 앞을 한참 동안 서성였다. 그 굴막에서 굴을 까며 자식들을 키워내고, 손자손녀까지 키운 할머니들의 고단한 삶이 내 발목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미세먼지 없이 맑고 햇볕이 따뜻한 날이었다. 갓 잡은 새우를 그 자리에서 소금에 절여 파는 모습을 보러 북성포구로 갔다. 제철을 맞은 갖가지 생선들과 해산물들이 좌판에 가득했다. 북성포구에서 만석동 43번지까지 걸었다. 날이 좋아 집 밖에서 굴을 까는 할머니들이 눈에 띄었다. 오랫동안 굴을 까온 할머니들의 손놀림은 무척 빨랐다. 뾰족한 칼로 단단한 굴 껍데기를 한번에 가르고 안에서 알만 쏙 꺼내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말을 거셨다.

만석동 골목의 굴막에서 동네 사람들이 굴을 깔 때 사용하는 도구들. 만화 오정희
“신기하지? 요즘에 굴 까는 데는 이 동네뿐이야. 알 큰 걸로 하나 줄까? 생굴 먹을 줄 알아?”

“먹을 줄 알죠. 고맙습니다.”

할머니가 굴을 까던 면장갑을 낀 채로 가장 큰 굴을 골라 내 손바닥 위에 올려 주셨다. 그 굴을 호로록 빨아 먹었다.

“어때. 짭짤한 우유 맛이지?”

“와, 진짜 맛있어요!”

할머니께 굴 깐 지 얼마나 되셨는지 물었다.

“이 동네 온 뒤부터 깠으니까 50년 됐지. 이북에서 미군 배를 타고 피란 왔어. 처음에는 부산으로 갔어. 그런데 거기에 사람이 많으니까 미군들이 우리를 거제도에 떨어뜨려 놓고 가버렸다니까. 열네살에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서 식모살이를 하다 열일곱에 결혼했어. 결혼하고 2년 만에 만석동으로 왔지. 그때부터 쭉 굴을 깠어.”

만석동 골목마다 보이는 굴 까는 풍경은 정겹고 따뜻하다. 만석동 사람들마다 굴을 까게 된 사연은 다 다르지만 굴 껍데기처럼 거칠고 굴곡 많은 삶은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삶을 묵묵히 견디고 지켜낸 이들의 이야기는 굴 껍데기 속의 알처럼 단단하고 향기롭다.

글·그림 김성수, 만화 오정희

▶ ‘도르리’는 음식을 차례로 돌려가며 내어 함께 먹거나 어떤 것을 똑같이 골고루 나누는 일을 뜻합니다. ‘창작집단 도르리’는 인천 동구 만석동 기차길옆작은학교에서 자라거나 활동해온 이모·삼촌의 창작 공동체입니다. 김성수·오정희·유동훈 세 사람이 함께합니다. 그들은 예술활동을 통해 ‘가난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편견을 무너뜨리길 꿈꿉니다. ‘도르리의 골목 도르리’는 그림, 만화, 인형 등으로 우리가 사는 동네와 골목, 사람, 세상을 격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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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도르리의 골목 도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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