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동(인천 동구) 골목에는 각목과 비닐로 만든 굴막이 있다. 동네 사람들은 그 굴막에 옹기종기 모여 겨우내 굴을 깐다. 그림 김성수
|
[토요판] 도르리의 골목 도르리 ⑦
굴 익는 계절
만석동 굴막에 모여 굴 까는 할머니들
굴 껍질 속에 들어찬 그들 삶의 이야기
사람마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순간이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날씨로, 어떤 사람은 꽃이 피고 지는 것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나는 냄새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만석동(인천 동구)은 늦가을이 되면 동네 어귀부터 비릿한 굴 냄새가 퍼지기 시작한다.
만석동 골목에는 각목과 비닐로 만든 굴막이 있다. 동네 사람들은 그 굴막에 옹기종기 모여 겨우내 굴을 깐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굴막 주위로 굴 껍데기를 담은 비닐 포대가 쌓인다. 굴 냄새가 골목마다 고이면 내 입안에는 침이 고인다.
며칠 전 이른 새벽이었다. 판자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만석동 골목을 걸었다. 비를 피해 골목 어디론가 숨은 고양이들마저 잠이 들었을 그 시간에 굴막이 환했다. 날이 춥고 알이 여물 때 굴을 까야 하기 때문에 할머니들은 밤낮없이 굴을 깐다. 나는 까닭 없이 빛이 새어 나오는 굴막 앞을 한참 동안 서성였다. 그 굴막에서 굴을 까며 자식들을 키워내고, 손자손녀까지 키운 할머니들의 고단한 삶이 내 발목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미세먼지 없이 맑고 햇볕이 따뜻한 날이었다. 갓 잡은 새우를 그 자리에서 소금에 절여 파는 모습을 보러 북성포구로 갔다. 제철을 맞은 갖가지 생선들과 해산물들이 좌판에 가득했다. 북성포구에서 만석동 43번지까지 걸었다. 날이 좋아 집 밖에서 굴을 까는 할머니들이 눈에 띄었다. 오랫동안 굴을 까온 할머니들의 손놀림은 무척 빨랐다. 뾰족한 칼로 단단한 굴 껍데기를 한번에 가르고 안에서 알만 쏙 꺼내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말을 거셨다.
만석동 골목의 굴막에서 동네 사람들이 굴을 깔 때 사용하는 도구들. 만화 오정희
|
▶ ‘도르리’는 음식을 차례로 돌려가며 내어 함께 먹거나 어떤 것을 똑같이 골고루 나누는 일을 뜻합니다. ‘창작집단 도르리’는 인천 동구 만석동 기차길옆작은학교에서 자라거나 활동해온 이모·삼촌의 창작 공동체입니다. 김성수·오정희·유동훈 세 사람이 함께합니다. 그들은 예술활동을 통해 ‘가난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편견을 무너뜨리길 꿈꿉니다. ‘도르리의 골목 도르리’는 그림, 만화, 인형 등으로 우리가 사는 동네와 골목, 사람, 세상을 격주로 이야기합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