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김수정의 여성을 위한 변론
(2) 가정폭력, 여성에 대한 폭력
직접 변론해오던 한 여성의 죽음
결혼 30년간 남편 폭력에 시달리다
살해 공포로 집 떠나 이혼소송
1심서 이혼·재산분할 판결 받았으나
새로 사랑한 남자에게 맞아서 사망
그녀의 상속재산 확인해줘 고맙다며
돈봉투 들고 찾아온 이혼 상대남
죽어서도 애도 대신 조롱당한 그녀
강남역 살인 뒤 오히려 여성 상대 범죄↑
국가는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전문위원. 이주여성인권센터 법률지원단. 두 딸의 엄마로 주업은 작은 로펌의 생계형 변호사다. 성폭력, 가정폭력, 이주여성 등에 대한 법률지원을 꾸준히 해왔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들 곁에서 손잡아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자 했고, 되고 싶다. 그녀들을 위한 변론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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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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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1978년에 발표한 에스에프(SF) 단편소설 ‘체체파리의 비법’에서 페미사이드(여성 학살)가 일어난 암울한 미래를 그렸다. ‘아담의 아들들’이란 사교집단이 여성이 없는 세상을 신의 뜻이라 생각하고 바이러스를 퍼뜨리는데, 그 바이러스는 남성의 성적 충동을 여성에 대한 살인 충동으로 바꾸는 치명적인 세균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남성들은 여성 살해를 실행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남편이 그 사실을 깨닫고 아내와 딸에게 ‘내가 찾아가더라도 나를 피하라고, 내가 당신을 죽일 것이다’라고 절규하지만, 딸은 이 경고를 부부싸움 정도로 생각하고 아빠에게 접근하여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주인공 여성은 남편에게 딸을 잃고 겨우 도망쳐 숲속에 숨어 산다. 주인공은 살아남은 여성이 있을 것이란 희망으로 연명하다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여성이 없어야 하는 세상은 ‘애석한 일이지만 저희는 더 이상 여성 시신을 받지 않습니다’라는 장례식장의 신문광고가 게재되는 그런 끔찍한 세상이다.
재판 앞두고 연락 끊긴 그녀
팁트리 주니어가 상상한 미래와 달리, 다행히(?) 오늘은 여성들이 살아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내게는 변론하던 여성이 살해당한(살아남지 못한) 오늘이라, 위 소설 속 미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이다. 얼마 전 그녀의 부고를 소송의 상대방(그녀의 남편)으로부터 들었다. 이혼소송을 대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와 연락이 닿지 않던 차였다. 재판 날짜는 다가오고 계속 전화를 하며 초조하게 연락을 기다릴 무렵, 상대방 쪽에서 그녀가 사망하였다며 자료를 제출한 것이었다. 상대방은 그녀가 사귀던 남자에게 맞아 죽었다는 내용이 기재된 검찰의 공소장을 증거로 제출했다. 그것으로 그녀의 이혼소송은 상대가 원하던 대로 소송 종료 선언 되었다. 나는 내가 본 서류의 진의를 의심해보고, 그녀에게 단 한 푼의 돈도 주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던 상대방이 지어낸 이야기는 아닐까 의심을 해봤지만, 사실이었고, 현실이었다. 그녀는 평생 두 명의 남자를 만났다. 남편이었던 한 명은 그녀를 때렸고, 애인이던 한 명은 그녀를 때려서 죽였다.
그녀의 삶은 너무 전형적이어서 징글징글하기까지 하다. 23살 꽃다운 나이에 결혼하여 30년 넘는 결혼생활 내내 폭력에 시달렸고, 무능력한 남편을 대신해 죽도록 일을 했다. 얼굴 고운 그녀의 손은 남편 대신 한 농사일과 가사노동으로 웬만한 공사판 노동자보다도 더 거친 손이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난 뒤에도 변치 않는 폭력에 맞아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으로 아이들의 양해를 얻어 집을 나왔다. 그녀는 재판이 열릴 때마다 상대를 마주칠까 매번 재판 두세 시간 전에 미리 나와 화장실에 숨어 있었고, 남편이 먼저 법정에 들어간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법정에 들어왔다. 남편을 떠났지만, 그가 두려워 여전히 숨어 지내던 그녀는, 혼인관계증명서에서 그의 부인이라는 기록이 삭제되는 날 진정한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재산분할이라는 정당한 권리를 찾는 것보다 이혼이 우선이었다.
그런 그녀를 설득하여, 그녀가 집을 나가자마자 상대가 팔아 치운 재산을 찾고 재산의 가치를 환산하였다. 판사는 몇번의 조정을 시도하면서 합리적인 재산분할의 선을 정하려고 하였으나, 상대방은 막무가내였다. 상대는 그녀에게 재산분할을 해줄 수도 없다, 잘못도 없는데 이혼을 당할 수 없다며 끝까지 재판을 어지럽혔다. 판사도 상대방을 괘씸하게 여겨 1심 판결에서 상대방의 잘못으로 인한 이혼을 인정함과 동시에 꽤 많은 위자료와 재산분할금을 인정해주었다. 상대방이 항소를 하여 그녀는 여전히 상대방의 법률상 부인이었지만, 그녀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안전한 삶을 누리며, 제힘으로 번 돈을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사용하며 행복하게 생활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에게 잘해주는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다. 이젠 안전하다고 믿은 그녀의 방심이었을까, 그렇게 당하고도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은 그녀의 순진함과 어리석음이었을까.
그녀를 보낸 지 몇달인데, 지금에야 비로소 치욕과 비통함에 몸을 떨고 있는 것은 그녀의 죽음조차 애도받지 못하고 조롱당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최근 상대남이 돈봉투를 들고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다른 후배 변호사와 함께 그녀를 변론했는데, 상대남이 죽은 부인 땅을 찾아주어 고맙다며 후배 변호사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재산분할을 하려면 원피고 쌍방 모두 자신 소유의 재산을 밝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그녀가 땅을 상속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상속받은 땅까지 갖게 해줘 고맙다며 그는 돈봉투를 들고 죽은 부인의 변호사를 찾았던 것이다. 후배 변호사는 나에게 이 소식을 전하며 전화기 너머로 흐느끼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아무런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감히 자기를 떠난 그녀를 용서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제 그녀가 사귀던 남자의 손에 맞아 죽었으니, 그에게 그녀의 죽음은 부정한 여자의 당연한 죽음일 뿐이었고, 조롱당해 마땅한 죄 많은 여자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죽음을 두고 죄 많은 여자의 죽음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게 어디 그녀 남편뿐이겠는가. 호적 정리하기 전에 남자를 만난 죄, 남자를 만나도 꼭 그런 남자만 만나는 죄, 수십년간 바보같이 맞고 산 죄 등등. 살면서 만난 단 두 명의 남자에게 죽도록 맞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 그녀가 그녀를 때리고 죽인 남자들보다 더 큰 죄인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피해자들 옥죄는 가정폭력특별법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20여년 동안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가정폭력 피해자 여성을 상담했고, 변론도 꽤 많이 했다. 가정폭력의 끝이 모두 죽음은 아니었지만, 살아 있어도 죽은 여성들을 많이 보았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은 심약하거나 취약계층 여성일 거라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고학력 여성이든, 재산이 있는 여성이든, 젊은 여성이든, 노인 여성이든 가리지 않는다. 한때는 똑똑하고 지적이었을 여성들이 폭력에 길들여지면서 무력해지고, 폭력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로 전락해버린 것을 보았다. 심지어 약사였던 한 여성은 남편에게서 탈출하고서야 자신이 약을 지을 수 있는 전문지식을 가진 약사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남편들의 변명은 하나같이 똑같았는데, 아내가 맞을 짓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냉장고에서 음식물이 썩어나고, 집안은 더러우며, 애들은 밥을 굶고, 몰래 사귀는 남자가 있다는 것이다. 처음 변호사가 된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반복되는 변명이다. 남편들 주장 대부분이 거짓인 것은 말할 것도 없는데, 아내의 버릇을 패서 고치려고 했다는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는 뻔뻔함에 기가 찰 뿐이었다.
남성들이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폭력에 가장 손쉽게 노출되는 여성은 혼인제도로 묶여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머물고 있는 여성이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가정폭력은 집안문제라거나,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며 별문제 아닌 것으로 취급받아왔다. 심각한 가정폭력으로 많은 여성들과 자녀들이 목숨을 잃어가자 여성계에서 들고일어났고, 그 성과로 1997년 가정폭력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이 특별법은 제정 당시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육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선언하였는데, 이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나 여성과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인권 보호보다는 ‘건강(?) 가정의 회복’이 우선이었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꾸준히 비판을 받다가 ‘피해자와 가족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건강가정 회복이라는 목적이 살아남아 가해자의 처벌과 가족 구성원 개인의 인권 보호보다 우선시되면서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옥죄고 있다.
특별법 제정 초기에는 가해 남편에게 아내에 대한 접근 금지의 일환으로 안방 출입 금지를 명하기도 하였는데, 오히려 여성이 안방에 갇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고, 벌금형을 선고한 경우 이혼을 선택하지 못한 여성이 남편의 강요로 대신 벌금을 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 수준이 얼마나 열악하였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법 시행 20년을 맞아 초기와 달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가정 내 문제라며 돌아가버리는 상황이 많이 줄어들긴 하였지만, 상담을 해보면 여전히 사법기관의 미온적 대응에 여성들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고, 처벌도 미약하여 가정폭력이 줄어들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2017년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2012년부터 5년간 가정폭력 검거 건수가 5배로 늘어난 사실이 확인된다. 대표적 암수범죄(드러나지 않은 범죄)였던 가정폭력이 인식의 변화로 신고가 늘어난 점을 고려하더라도 5배 증가는 매우 높은 수치라 할 수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발표한 ‘2017년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에 따르면 언론보도를 바탕으로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의 수(살인미수 포함)가 최소 103명으로 1.9일마다 한 명이 살해되거나, 살해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이는 언론 보도만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 그 수는 더 많을 것이다.
요즘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가정폭력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에서 나아가 그냥 아는 여자, 모르는 여자 등 불특정 여성에게까지 폭력이 무차별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류에서 밀려난 또는 진입하지 못한 남성들의 사회적 실패에 대한 분노까지 혐오라는 이름으로 엉뚱하게 여성을 향하고 있다. 2016년 강남역 부근에서 일어난 불특정 여성 살인 사건 당시 수많은 여성들이 ‘나는 우연히 살아남은 여성이고, 아직 맞지 않은 여성일 뿐’이라는 분노로 강남역에 모여들었었다. 그녀들은 이렇게 외쳤다. “한 명도 더 죽게 할 수 없다.”
죽어서도 ‘법률상 부인’인 그녀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여성 상대 강력범죄(성폭력, 살인 등)가 지난해 3만270건으로 강남역 살인 사건이 있던 2016년 2만7431건에 비해 오히려 10%가량 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자친구가 변심했다고 의심하여 때리고 밀쳐 중태에 빠뜨렸다는 기사, 헤어진 여자친구와 닮았다는 이유로 길 가던 여고생의 머리를 내리쳤다는 기사, 단순히 화가 난다는 이유로 생면부지의 여성의 머리를 돌로 수차례 내리쳤다는 기사, 길 가던 여고생 성추행 시도 뒤 흉기로 살해 시도를 했다는 기사가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당할지 모르는 공포와 불안이 여성들을 잠식하고 있다. 한 명이 당하면 우연한 사건이지만 다수가 당하면 사회현상이다. 국가는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밤길 귀가도우미 이런 것 말고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다시 죽어간 그녀를 생각해본다. 그녀에게 가장 미안한 것은 그녀가 죽어서도 그의 법률상 부인으로 서류에 남게 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재산 따위 개나 줬어야 했다. 그녀가 죽어서도 자유롭지 못할까 두렵다. 무지개다리 끝에 난쟁이들이 숨겨놓은 황금덩이를 찾아 그녀가 꿈꾸던 폭력 없는 ‘평화 가득한 세상’으로 건너갔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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