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김수정의 여성을 위한 변론/ ⑤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
공무원 임용 10개월 만에 생 마감
장례 뒤 확인한 친구와 카톡 대화
성희롱·성차별 시달린 사실 보여줘
“이쁜이” “커피 타 와라” “쉬었다 가자”
우울증 발병과 자살로 이어졌지만
공무원공단 공무상 재해 인정 안 해
“직장생활 부적응” “무능력했다” 등
가해자 황당한 진정서 증거로 제출
성차별·성희롱이 근무환경 악화
여성들 견디기 어렵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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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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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나는 국방부에서 주최한 대체복무제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자 네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으로 특히 더 긴장한 채로 토론을 진행했다. 군대도 가지 않는 여성이 군대 문제를 논할 자격이 있느냐는 자극적이고 일차원적인 공격이 언제 어디서 날아들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두시간여 토론의 말미, 한 참석자가 많이 참았다는 듯 나에게 말했다. “여자는 군대 갔다 오기 전에는 발언을 하지 말라.” 귀를 의심하던 중 옆자리 다른 토론자가 먼저 “차별적인 발언”이라며 항의를 했고, 나도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출산을 못하는 남자들은 출산정책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과 똑같다. 발언하시는 분은 남자인데 출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느냐”며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여성으로서 나는 늘 긴장된 삶을 살아왔다. 학생일 때도, 어른이 되어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뒤에도, 언제 어디서 내가 여성이라는 것이 문제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성희롱·성폭력에서, ‘여자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나의 능력이 저평가될까 봐 긴장하고 또 긴장하며 살아왔다. 쉰살이 다 된 지금도 나는 여성이라서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발언권을 제지당하는 삶을 여전히 살고 있다. 이렇게 상시적인 긴장 속에서 고단하게 살고 있는 여성이 어디 나뿐인가. 지난해 초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뒤, 연극계 문화계 등 각계각층에서 이어진 여성들의 성희롱·성폭력 피해 사실 폭로와 이에 연대하는 #미투운동을 보면서 나는 그녀들에 대한 격려의 박수를 치기보다 속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여전히 여성의 삶은 고단하다는 사실과 오직 위안이 되는 것은 ‘나도 당했다’고 외치는 슬픈 연대라는 사실 때문에….
친구 한명에게만 남겼던 ‘비밀’
죽은 뒤에 나를 찾아온 그녀는 20대 후반의 갓 결혼한 공무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찾아온 것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녀는 수년간 공무원이 되려 공부한 끝에 4전5기 만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그런데 어렵게 공부해 공무원이 된 그녀가, 임용된 지 불과 10개월 만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대체 그녀는 왜 죽어야 했단 말인가. 그렇게 원했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그녀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 사랑하는 남편과 행복한 삶만 꿈꾸면 됐는데 말이다.
그녀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그는 그녀의 휴대폰에서 친한 친구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확인하고서야 그녀가 왜 병이 들었고, 자살에 이르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녀는 공무원으로 임용된 뒤 성희롱과 성차별에 시달려온 것이다. 그는 그녀의 카톡에서 실명이 확인되는 가해자들의 성희롱 행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였고, 인권위원회는 조사 결과 성희롱 사실을 확인했다. 이 일로 관계기관은 발칵 뒤집어져 성희롱 전수조사를 하고 성차별적 문화 개선, 엄벌 등의 성희롱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책을 마련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죽음이 공무상 재해가 아니라는 공무원연금공단(이하 공단)의 판단에 있었다. 공단은 그녀의 발병과 그로 인한 자살은 그녀의 기질로 인한 것일 뿐 직장 내 성희롱 등은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고 봤다. 그녀가 당한 언어적 성희롱 몇번이 그녀의 우울증을 발병시키거나 악화시키기에는 미흡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녀는 입사 뒤 6개월간 시보(일종의 수습) 공무원이었다. 6개월간의 근무성적이 좋으면 정식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있었다. 그녀를 성희롱한 사람은 모두 그녀의 근무성적을 평가하는 상급자였다. 정식 임용을 앞둔 그녀는 그들의 부당한 지시나 성희롱에 문제제기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그녀의 근무공간은 매우 좁은 연구실 같은 곳이었는데, 그 좁은 공간에서 성희롱 가해자와 함께 근무해야 했고, 심지어 나중에 그녀가 성희롱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린 뒤에도 4개월 가까이 가해자와 분리되지 못하고 같은 공간에서 근무했다. 게다가 그녀는 가해자들을 포함해 직장 상사들에게 “이쁜이”라 불리며 수시로 커피를 타는 등 업무와 무관한 성차별적인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가해자를 알 수 있었던 여러차례의 성희롱 외에도 “나는 딸을 안을 때 가슴이 닿는 느낌이 좋다”, 회식 뒤 “쉬었다 가자” “둘이 같이 가서 옷을 골라달라” 등 직장 상급자의 농담을 가장한 성희롱 발언이 그녀 또는 다른 여성 동료들에게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었음이 그녀가 남긴 기록에서 확인됐다. 그녀의 여성 상급자도 성희롱을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그녀들 또한 시보 공무원에 불과한 그녀와 다를 바 없이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못했다. 정식 공무원이 되고 승진을 해도 성희롱이나 성차별적인 관행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여성 상급자들을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전히 암울할 자신의 미래를 생각했을까.
농담 하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성 없는 예민한 여자로 찍히지 않기 위한, 상급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그녀의 침묵은 그녀를 병들게 하였다. 견디다 못한 그녀는 책임자에게 가해자를 특정하지 않은 채 성희롱을 여러차례 당했으니 성희롱 방지 교육을 실시해달라고 요청했다. 단 자신이 이런 요청을 한 사실은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바로 이튿날 가해자 한명이 찾아와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 그녀는 사과를 받았다는 기쁨보다 가해자가 즉시 알고 찾아왔다는 사실에 더 큰 두려움을 느꼈고 “이 일은 앞으로 직장생활에서 나에게 두고두고 족쇄가 될 것”이라는 내용의 카톡 메시지를 친구에게 남겼다.
소송 중 공단은 일부 성희롱 가해자가 직접 작성한 진정서를 증거로 제출했는데, 나는 그 내용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원래 직장생활 부적응 성격으로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할 정도였고 무능력했으며, 심지어는 그녀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열애 기사가 그녀의 죽음에 영향을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기관의 징계까지 받고도 저런 내용의 진정서를 쓴 가해자들의 태도보다도 더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그 진정서를 증거랍시고 법정에 제출한 공단의 태도였다. 나는 공단의 태도를 지적하는 것은 물론, 반성은커녕 심각한 명예훼손적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한 가해자들의 태도에 비추어볼 때, 그녀가 생전에 가해자들로 인하여 얼마나 고통받았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며 그녀의 자살이 공무상 재해로 인한 것임을 강조했다.
우울증으로 인한 그녀의 자살이 성희롱과 무관하다는 공단의 판단에는, 그녀가 우울증 진단과 치료를 위해 찾은 병원에서 한번도 의사에게 이런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유가 됐다. 그녀가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하면서도 성희롱 피해 사실 등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그녀의 우울과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상담 의사에게뿐만 아니라, 입사 동기들과 카톡으로 직장 내 고충에 대해 활발히 대화를 나눌 때에도 성희롱 피해 사실만은 밝히지 못하였고 남편에게조차 피해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 오직 친구 한명에게만 피해 사실을 토로했다.
이는 성폭력(성희롱도 넓은 의미의 성폭력에 해당한다) 피해자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모습이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원인을 자기 자신(자신의 행실)에게 돌림으로써 죄책감으로 우울감에 빠지거나 자해행위를 하기도 한다. 또한 수치심 때문에 피해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넘기려고 하고, 치료를 받으러 가서도 피해를 당한 사실은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처럼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주된 이유는 성희롱 피해 사실을 공개하더라도 피해가 회복되기 어렵고, 오히려 2·3차 가해는 당연한 부록이며, 결국에는 피해자 자신이 직장과 공동체에서 손가락질받고 쫓겨날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공단은 그녀의 이런 전형적인 태도를 오히려 그녀의 죽음과 성희롱 피해 사실이 전혀 무관하다는 근거로 사용하고 그녀의 기질만을 문제 삼은 것이다.
끝까지 노력했지만
나는 그녀의 우울증이 원래 그녀의 우울 기질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 초·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을 뒤지고 대학 친구들까지 찾아 그녀의 과거 생활을 추적했다. 쾌활하고 밝은 그녀였다. 수년의 긴 수험 기간을 견뎌낸 강인한 그녀였다. 그녀가 당한 언어적 성희롱만 떼어놓고 보면 ‘추행이나 강간도 아니고 언어적 성희롱 몇마디 들었다고 자살까지 하나’라고 반문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언어적 성희롱 자체로 인한 고통을 회피하고자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다. 언어적 성희롱을 비롯한 성차별적 근무환경에 수시로 노출되면서 우울증이 발병했고 급격히 우울증이 악화됐으며, 결국에는 병이 깊어져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녀가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다면 성희롱과 성차별을 견뎌낼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 인내하면서, 때론 싸우면서 죽을힘을 다해 견뎌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소송을 하면서 그녀의 죽음의 억울함에 대해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않고 과학적으로 규명하려 노력했다. 자살의 원인을 밝혀내는 철저한 심리적 부검(자살자의 가족을 비롯한 지인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하고 고인의 유서나 일기 등 개인적 기록과 병원 진료 기록 등을 분석해 자살의 이유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을 하여, 그녀의 우울증 발병과 악화의 원인이 수시로 발생하는 성차별과 성희롱을 견뎌야 했던 직장 내 환경에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직장 내 성희롱이 경중을 불문하고 심각하게 고려돼야 하는 것은 성차별적 사고에서 비롯된 성희롱이 여성이 일하는 근무환경을 크게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성차별로 인한 근무환경의 악화는 결국 여성을 직장에서 견디기 어렵게 만들고, 여성을 사회에서 격리시키게 된다.
소송은 1심 패소, 2·3심 승소로 그녀가 사망한 지 수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판결문을 받아 들고 판결문에 기록된 그녀의 행적을 되새겨보았다. 그녀는 끝까지 살기 위해 노력했다. 병원을 찾아가고 약을 복용하고, 아이를 낳을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도 마지막 순간 삶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를 생각하니 눈물이 솟구쳤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해도 피해자의 죽음과는 상관없는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의 생각처럼 그녀의 죽음 자체는 이례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많은 여성이 직장 내 성차별과 성희롱, 성폭력으로 때론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을 받고, 실제 죽기도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많은 여성이 직장 내 성폭력 등 피해 사실 드러내기에 동참했다. 이는 여성들의 사사로운 투정이나 남성에 대한 모함이 아니라 직장과 사회에서 동등한 동료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자구책이다. 그나마 여성들이 말하고 외치고 드러내는 것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는 징표이다. 희망이 좌절되는 순간 그녀의 이례적인 죽음은 일상이 되어, 집단으로 절벽을 뛰어내려 자살하는 레밍처럼 모두가 손을 잡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릴지도 모른다. 새해 벽두 희망의 좌절보다 희망의 실현을 믿고 싶다. 혐오와 차별의 언어보다 공감의 언어가 훨씬 더 힘이 세다는 것을 믿고 싶다.
▶ 김수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전문위원. 이주여성인권센터 법률지원단. 두 딸의 엄마로 주업은 작은 로펌의 생계형 변호사다. 성폭력, 가정폭력, 이주여성 등에 대한 법률 지원을 꾸준히 해왔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들 곁에서 손잡아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자 했고, 되고 싶다. 그녀들을 위한 변론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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