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5.03 17:38 수정 : 2019.05.05 12:18

돈 볼스의 죽음을 갚기 위해 모인 탐사보도 기자들의 연합이 작성한 ‘피닉스 40’ 기획의 표지. 출처: 미국 탐사보도협회(IRE)

[권오성의 세상을 바꾼 데이터]
동료가 의문의 폭탄 테러로 숨지자
정재계-마피아 검은 연결 밝히려
미국 전역서 뭉친 38명 탐사기자의
‘애리조나 프로젝트’

이들의 탐사 저널리즘 방법론은
현대 데이터 기법 공유 정신으로 살아있어

돈 볼스의 죽음을 갚기 위해 모인 탐사보도 기자들의 연합이 작성한 ‘피닉스 40’ 기획의 표지. 출처: 미국 탐사보도협회(IRE)

미국 탐사보도협회(IRE)는 1976년 당시 미국 각지의 탐사보도 기자들이 모여 결성한 비영리단체다. 오늘날 이 조직의 연례 콘퍼런스는 세계 각지의 탐사보도 베테랑들이 모이는 국제적 행사로 컸다. 이 단체의 근본과 성격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애리조나 프로젝트’가 꼽힌다.

멕시코와 접한 황량한 미 서부 애리조나주의 피닉스시 탐사보도 기자 돈 볼스(Don Bolles)는 1976년 6월 거짓 제보원을 만나러 갔다가 차량 폭탄테러를 당해 결국 숨지고 만다. 그는 대선 후보 경선까지 올랐던 지역의 유력 정치인과 마피아들의 커넥션에 대해 추적하던 중이었다. 그의 죽음은 함께 탐사보도협회 첫 콘퍼런스를 열 계획이었던 동료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에 미국 전역의 38명의 탐사보도 기자들이 때로는 소속사 동의 아래, 때로는 일을 때려치우고 볼스가 하던 작업을 완수하러 애리조나로 모여들었다. 이것이 애리조나 프로젝트다. 이런 형태의 언론인 협업은 전례가 없었다.

이들은 수개월에 걸쳐 정·재계 인사들과 갱들의 불법적 관계를 파헤친 23개 시리즈를 내보냈고 비록 유력 정치인까지 도달하진 못했지만, 조직폭력배에 대한 수사를 끌어내고 수많은 인사를 법의 심판대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애리조나 프로젝트는 폭력과 테러로도 기자와 진실을 입막음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인 사례로 지금까지 회자하며 우리나라에도 몇 차례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데이터 저널리즘’의 중요 사례이기도 하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탐사기자 연합군’의 시리즈물 가운데 하나는 애리조나의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거물 정치인·기업가 40명, 이른바 ‘피닉스 40’에 대한 관계도를 그려낸 것이었다. 탐사기자들은 당시 한 대학 교수와 협업해 데이터로부터 이들의 관계망을 그려냈다. 탐사보도 기자 출신의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정보학과 교수 브랜트 휴스턴(Brant Houston)은 이에 대해 “저널리즘 영역에서 이뤄진 최초의 사회 관계망 분석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돈 볼스의 죽음을 갚기 위해 모인 탐사보도 기자들이 그려 낸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 정재계 거물 40명의 사회관계망 분석도. 출처: 미국 탐사보도협회(IRE)

이들은 우선 이 지역 주요 산업(농업, 은행업, 건설 등)의 주요 기업들에 대한 데이터를 끌어모았다. 그리고 이 기업들의 주요 임원을 뽑았다. 이후 이들이 속한 가문, 모임 등에 대한 데이터가 추가됐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를 메트릭스화 한 뒤 여러 부문에서 겹치는 이들을 적절한 방법으로 추출해 이들의 관계망을 얻어낸 것이다. 이를 통해 애리조나를 주무르는 이들이 어떻게 총체적으로 엮여 있는지 그려냈다.

동료 기자의 억울한 죽음을 기사로서 갚은 이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감동적이지만 이미 오래 전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이들의 행동이 남긴 유산은 무엇일까. 첫째, 협업의 정신이다. 기자는 서로의 특종 거리를 혹여 빼앗기지 않을까 서로 경계하기 마련인 종족이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협업이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둘째는 과학적 보도다. 이들은 동료 기자의 죽음에 분노해 사망사고로 기사의 시야를 좁히거나 감정적 호소에 머무르지 않았다. 오히려 냉철하게 데이터를 모으고 사회 전반을 내리누르는 커넥션을 시각화로 효과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뉴포트 비치에서 열린 미국 컴퓨터활용보도기자회(NICAR) 2019년 콘퍼런스에 다녀온 국내 참여자의 이야기를 최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컴퓨터활용보도기자회는 탐사보도협회의 데이터 관리 및 기자 교육을 중점으로 맡는 산하 조직이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의 김강민, 임송이 기자는 1천명이 넘는 미국 내외 기자들이 모여 얼마나 열정적으로 “컴퓨터 기술을 활용한 보도에 대한 지식을 서로 나누고 가르치는가”에 대한 감명을 전해 주었다. 43년 전 한 기자의 죽음에 대한 동료들의 접근법은 현대까지 ‘공유에 기반을 둔 데이터 저널리즘’으로 전해오고 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권오성의 세상을 바꾼 데이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