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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08 13:53 수정 : 2019.01.05 10:11

[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②
뱅크시, ‘당신은 아름다운 눈을 가졌군요’

초등 2학년인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이른바 ‘혁신학교’. 그래서 그런지 수업 풍경이 내가 학교 다닐 때와 사뭇 다르다. 지난봄에는 학교에서 봄맞이 패션쇼까지 열었다. 패션쇼가 열리기 전날, 아이가 설레어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봄 느낌이 나는 옷을 골라 입고 가야 돼!”라며 옷장에서 옷가지들을 다 꺼내놓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뭘 입고 가야 할지 궁리하던 아이. 결국 당일 아침에야 아이는 파스텔 색상의 옷과 하늘색 모자를 성심껏 고른 뒤 신나게 학교에 갔다.

그날 오후, 담임 선생님께서 직접 동영상으로 찍은 아이들 패션쇼를 보내주셨다. 몽환적인 음악을 배경에 깔고, 책상을 다 이어 붙여 만든 무대 위에서 멋지게 워킹을 선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엄마 미소’를 지은 채 한창 보고 있는데 몇몇 아이의 패션이 눈에 띄었다. 봄과 어울리는 옷을 입으라고 했는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얼굴의 반을 덮는 커다란 마스크를 낀 칙칙한 모습의 아이. ‘큭큭. 어떻게든 삐딱하게 장난치려는 애들이 있게 마련이지’ 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며칠 뒤 엄마들 모임에서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에겐 그게 바로 봄과 어울리는 옷차림이었다는 것. 봄은 그냥 미세먼지와 황사가 찾아오는 괴로운 계절일 따름이고, 미세먼지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온몸을 꽁꽁 싸맸다는 이야기였다. 그랬구나. 봄이라고 하면 화사한 꽃부터 먼저 생각나는 어른들의 봄이랑 다를 수밖에. 겨우 아홉살, 이 아이들이 겪어온 대부분의 봄이 ‘봄꽃놀이’와 별로 관계없는 ‘오염된 봄’이었을 테니 말이다.

뱅크시, <당신은 아름다운 눈을 가졌군요>. 200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2시간 동안 전시되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얼마 전 영국의 거리예술가 뱅크시의 화집을 우연히 펼쳐 보다가 요즘 우리 상황과 딱 맞는 작품을 보았다. 드레스를 잘 차려입은 귀부인의 초상인데, 어울리지도 않게 방독면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난데없는 방독면 덕분에 눈만 도드라져 보이는데, 바로 이것이 그림 제목이 <당신은 아름다운 눈을 가졌군요>가 된 이유다.

사실 이 작품은 ‘해프닝’으로 탄생했다. 뱅크시는 2005년, 모자와 안경, 가짜 수염 등으로 변장한 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들어가, 미술관 벽에다가 몰래 이 작품을 전시한 것이다. 미술관 쪽이 알아차려 떼어내기까지 약 2시간 동안 <당신은 아름다운 눈을 가졌군요>는 성공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관 중 한 곳에 전시된 셈이다. 뱅크시는 “장난스러운 작품과 걸작을 구별하지도 못하는 미술관과 애호가들을 조롱하기 위해 그림을 도둑전시했다”고 밝혔는데, 요즘의 눈으로 보면 <당신은 아름다운 눈을 가졌군요>는 ‘장난’이라기보다는 10년 뒤를 내다본 ‘음울한 예언작’으로 보인다. 미세먼지가 봄에만 위세를 떨치는 줄 알았건만, 요즘에도 몇 주 전부터 내내 미세먼지 경고가 뜨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학교 가는 아이에게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를 쥐여주는데, 내게 돌아온 말이 서늘하다. “엄마, 봄도 아닌데 왜 자꾸 미세먼지야? 이젠 사계절 내내 마스크 써야 하는 거야?” 예전엔 미세먼지 때문에 아이들이 봄과 화사함을 연결 짓지 못하는 사실이 안타까웠는데, 이제는 더 나아가 한국의 패션이라고 하면 아이들은 먼저 ‘마스크’를 연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도 소용없다는 뉴스, 피부까지 뚫는다는 초미세먼지 뉴스가 속속 보도되고 있는 요즘, 이러다 정말 방독면이라도 쓰고 다녀야 하는 날이 올까봐 두렵다.

▶ 이유리 예술 분야 전문 작가. <화가의 마지막 그림>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검은 미술관> 등의 책을 썼다. 앞으로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코너에서 ‘여자사람’으로서 세상과 부딪치며 깨달았던 것들,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 살면서 느꼈던 감정과 소회를 그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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