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수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 ㅣ 이상갑 ‘강제징용 피해 소송’ 변호사
미쓰비시와 17차례 협상, 일본 정부 지침으로 중단
일본 최고재판소도 ‘개인 청구권 살아 있다’고 인정
‘중재위 구성’ 주장에 “모든 논란 다 포함” 역제안 가능
청와대, G20 앞두고 처음 징용피해자 의견 들었다
한국 정부, 일본과 ‘외교적 교섭’ 두려워할 이유 없어
전범기업과 포스코 등의 공동기금 방안도 논의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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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갑 변호사가 7일 오후 광주 북구 신용동 사무실에서 박병수 <한겨레> 논설위원의 물음에 답하고 있다. 광주/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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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일 갈등의 최대 현안은 일제강점기 징용피해자 배상 문제다. 한국의 대법원이 지난해 일본 기업의 강제징용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데 대해 일본 정부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다 해결된 문제다.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주장하고 있고, 한국 정부는 “사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사건이어서 행정부가 개입하기 어렵다”며 지켜보고 있는 상태다.
2009년부터 미쓰비시중공업 징용피해자 할머니들의 소송을 대리해온 이상갑(52·법무법인 공감) 변호사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한-일 양국 간 외교 분쟁으로 비화한 사건이 됐다. 정부가 나서 징용피해자들과 함께 ‘피해자 중심주의’를 지키며 외교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해법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그래도 먼저 일본 쪽과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그렇지만 일본 정부가 기업들에 내린 ‘협상에 응하지 말라’는 지침을 철회하지 않으면, 압류 자산에 대한 현금화 절차나 추가 피해자 모집·소송 등 가능한 법적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7일 광주에 있는 이 변호사의 개인 사무실에서 2시간 남짓 이뤄졌다.
― 일본이 징용피해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신일철주금과 후지코시의 징용피해자들은 얼마 전 압류한 이들 기업의 자산에 대한 현금화 절차에 들어갔다. 우리도 조만간 미쓰비시의 압류 자산에 대해 현금화 절차를 밟을 것이다. 피해자들이 워낙 고령이어서 마냥 미루기가 어렵다. 피해자들의 추가 모집과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 이후 광주 지역에서 9건 54명의 피해자 소장을 접수해놓았고 서울에서도 19건 26명의 소장을 접수해놓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법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원래 우리가 원한 방식이 아니다. 일본 기업과 협상으로 풀고 싶다.
원래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미쓰비시 쪽과 17차례 협상을 한 적이 있다. 당시는 미쓰비시가 소송에서 모두 이기고 있을 때였다. 그럼에도 미쓰비시가 우리의 협의 요청에 응한 건, 미쓰비시도 이 문제에 대한 부담 같은 게 있다는 뜻이고 또 이 문제를 털고 가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체 협의를 거부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협상이나 화해에 절대 응하지 말라’는 지침을 일본 기업에 내린 탓이다. 이런 상황에선 우리도 달리 대안이 없으니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상황 변화 가능성을 지켜볼 뿐이다.”
― 미쓰비시의 압류 자산을 현금화하면 일본이 보복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한-일 간 경제갈등으로 비화하고, 한-일 관계 전반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한-일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국내 여론은 잘 안다. 혹 파국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소송하는 피해자들이 직접 비난받진 않겠지만,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난이 더 커질 수는 있다. 지금도 몇몇 언론은 ‘한-일 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고 정부를 대놓고 공격하고 있지 않는가. 아베 신조 총리는 한국 정부의 이런 약점을 잘 알고 또 잘 이용하는 것 같다. 일본에는 한국처럼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을 정부에 묻는 여론이 별로 없다. 오히려 ‘한국이 1965년 청구권 협정의 약속을 어겼다’는 아베 총리의 입장에 동조하는 분위기이고, ‘아베 총리가 국가 이익을 위해 잘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니까 일본 정부는 아무 부담 없이 한국 정부를 몰아붙이고 있다. 일본에선 강경론이 국내 정치적으로도 이득이 되는 상황인 것 같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실제 경제보복을 하는 등 한-일 관계를 막장으로 몰고 갈지는 속단하기 이르다. 한-일 간 보복 조치를 주고받는 상황이 되면 세계 여론의 관심을 받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미쓰비시 같은 일본의 글로벌 기업들이 과거 강제노동을 시켜놓고 아직 배상 문제도 해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부각될 수 있다. 일본에도 좋을 게 없다.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위협 등에 대항하기 위한 한-미-일 3각 안보협력 구상에 구멍이 생긴다는 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 정부는 “사법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서 행정부가 개입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한 적이 과거에 두차례 있었다. 1990년대 중반 일본의 ‘아시아여성기금’ 설립과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인데, 둘 다 피해자들의 반발만 사고 실패했다. 정부가 이들 실패 사례에 대한 부담이 있는 것 같다. 정부가 또 과거사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거나 외교적 협상 대상으로 다룰 경우 이들 실패를 되풀이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과거 시도가 실패로 끝난 이유는 정부가 나서 외교적으로 풀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외교 교섭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협상 과정을 피해자들과 공유하면서 풀어가면 된다. 외교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제대로 구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협상 과정을 공유하면서 ‘이런 것은 관철하기 어렵고 이런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식으로 진솔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 그걸 외면할 피해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분들도 일본과의 협상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것 정도는 다 아는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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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3년8개월 만에 승소가 확정된 2018년 10월30일 피해자 이춘식(94)씨가 소감을 밝히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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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중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인사들과 징용피해자 쪽 관계자들이 만났다. ‘앞으로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태도 변화로 볼 수 있나?
“정부 인사들이 징용피해자 쪽의 얘기를 듣고 싶다고 해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이달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앞둔 시점이라는 게 청와대를 움직인 직접적인 계기인 것 같다.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으니 사전 의제 점검 차원에서 우리를 만난 것 아닐까 생각한다. 또 일본이 이 문제로 계속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어떤 식으로든 대응책을 모색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떻든 얼마 전만 해도 정부는 거의 꿈쩍도 안 했는데, 이젠 대화 통로가 아주 차단된 것이 아닌 정도는 된 것 같다.”
― 우리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개별적으로는 과거 징용피해자들의 소송이지만, 그 여파는 한-일 관계 전반에 미친다. 외교적 파장이 커지면 정부가 관할해야 하는 업무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책임의식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이처럼 파문이 클 수밖에 없는 사건을 그냥 소송 당사자 개인에게 맡겨둔 채 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선은 한-일 양국 정부가 1965년 청구권 협정에서 누락된 부분을 다시 보충한다는 차원에서 새로운 합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게 가장 좋지만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징용피해자들과 일본의 가해 기업이 직접 협상할 수 있도록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일본 정부의 ‘협상 금지’ 지침이 철회되도록 해야 한다. 일본의 전범기업은 350여개나 되는데, 의지만 있으면 구체적인 해법은 기술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 이들 기업과 청구권 협정의 국내 수혜 기업, 예컨대 포스코 등이 함께 돈을 내어 기금을 조성하고 그것으로 피해 구제를 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는데, 그런 방식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와 다른 접근법도 필요하다. 앞으로 나올 해법에는 세가지 원칙이 들어가야 한다. 첫째, 가해 기업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둘째, 적절한 손해배상을 해야 하고, 셋째, 재발 방지를 위한 적절한 후속조처, 역사적 교훈으로 삼는 작업이 따라야 한다. 1965년 청구권 협정엔 첫째와 셋째 원칙이 빠졌고 돈 얘기만 있다. 이런 점에서도 이 문제가 청구권 협정으로 다 해결된 게 아니라는 건 명백하다.”
― 일본 정부는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다 해결된 문제라는 입장이 완강하다.
“일본이 혹세무민하는 것이다. 우리 대법원만 징용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살아 있다고 판결한 게 아니다. 대법원 격인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을 봐도 일본 정부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은 1972년 중-일 공동성명을 체결하면서 ‘전쟁 배상의 청구를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7년 4월 중국인 징용피해자의 소송을 기각하면서, 판결문에서 중-일 공동성명을 인용하며 ‘공동성명에 따른 청구권 소멸은 재판상 청구를 요구할 권리, 즉 소구권이 없어졌다는 의미이지 개인청구권 자체의 실체적 권리가 소멸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가해 기업인 니시마쓰 건설에 ‘피해자 청구권에 대해 자발적으로 피해구제를 할 것’을 권고했다. 이 법리는 한국 징용피해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일본 정부는 이런 내용은 쏙 뺀 채 징용피해자들의 소송이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기각됐다는 결과만 부각하고 있다.
애초 일본 정부의 입장도 최고재판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일본 외무성 관리들은 1990년대 들어 이 문제가 논란이 되자 중의원, 참의원에 출석해 ‘한-일 청구권 협정이 체결됐어도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 다만 외교 보호권이 소멸한 것’이라고 여러차례 발언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는 상황이 바뀌니까 ‘청구권 협정으로 다 해결됐다’고 강변하는 것이다. 우리 외교부가 일본 정부와 협의할 때 이런 대응 논리를 적극 제기해야 한다. 일본 최고재판소도 ‘청구권 자체의 실체적 권리는 있다’고 판결했는데, 왜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징용피해자들과 협상을 하는 것조차 막느냐, 행정부라면 자국의 사법부 판결을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얘기해야 한다. 외교적 갈등은 피하는 게 좋다는 식으로 수세적으로만 대응할 일이 아니다.”
- 일본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나오자 1965년 청구권 협정에 대한 이견 해소 절차로 ‘중재위원회’ 구성을 요청했다. 또 국제법정에 가져가자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의 중재위 구성 요구는 정치적 공세다. 실제 교섭을 하겠다거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명분쌓기용으로 보인다. 이미 두 나라의 최고 법원이 청구권의 실체적 권리를 용인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를 존중하는 기반에서 협의하는 게 옳다. 또 일본이 이번에 청구권 협정에 따른 이견 해소 절차 가동을 주장하고 있으니, 그러면 우리도 이참에 그동안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느냐 안 됐느냐를 두고 논란이 됐던 문제들, 예컨대 위안부 문제, 원폭 피해자 문제, 사할린 체류 동포 문제 등도 포함해서 이번에 다 포괄적으로 해결해보자, 이렇게 역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 같은 국제법정으로 가져가자는 건 정치적인 의도가 크다. 무엇보다 실효성이 없다. 설혹 우리가 이기더라도 일본이 그 결과를 수용할지 의문이다. 국제법정에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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