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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8 06:00 수정 : 2019.08.28 11:37

김영배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 /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

전기요금에 ‘복지 개념’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
오는 11월까지 요금개편안 마련해 제시할 예정
짜장면값 14배로 오를 때 전기료는 1.9배 올라

한전 적자, 탈원전 정책 탓 아니다
신재생에너지 활용하는 발전설비 늘려가야
최적의 대안은 해상풍력·영농형 태양광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자리에 앉자마자 한장짜리 표를 내밀었다. ‘지속가능 에너지 시스템’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아침에 메모를 좀 해서 세계적인 추세, 우리가 걸어온 길, 앞으로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간단히 표로 만들어본 것”이라고 했다. 표에서 세계적 추세는 ‘탈탄소화, 높은 전기요금’인데,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낮은 전기요금으로 수요관리에 취약’으로 요약돼 있었다.

김종갑(68) 한국전력 사장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현행 전기요금에는 복지 같은 여러 정책적 요소가 너무 많이 가미돼 있어 개편이 필요하다”며 “올해 11월 말까지 한전의 개편안을 마련해 내년 상반기 중 정부에 인가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앞으로는 대규모 발전설비를 짓고, 송전탑을 건설하는 방식의 사업은 민원 비용 때문에라도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며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소규모 지역분산형 발전을 늘려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올여름에도 전기요금을 할인해준 건 세계적인 추세나 한전의 전기요금 개편 방향과 안 맞는 것 아닌가?(한전은 정부 정책에 따라 지난해 특별할인에 이어 올해는 상시할인 방식으로 7~8월 요금을 깎아주고 있다.)

“작년에 재난 수준의 폭염을 겪다 보니 ‘하계 냉방권’을 확대해주는 게 좋겠다는 지적이 정부에서 나왔다. 정부로선 국민 전체의 에너지 접근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수요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측면에선 방향이 안 맞긴 하다. 주택용에 복지 개념이 너무 많이 포함돼 있다. 그중에서 특히 ‘필수사용량 공제 제도’(누진 1단계인 200㎾h 이하 사용자한테 최대 4천원 할인)는 개선해야 한다. 1단계가 958만세대인데 정말 복지 대상에 남겨둬야 할지 면밀히 따져보고 있다. 복지 개념으로 계속 혜택을 받아야 할 대상은 수십만세대에 불과할 것이다.”

―저소득층 가구의 부담을 늘리지 않겠나?

“지금은 1인가구의 대표성 있는 게 31세 남자다. 직장 얻어 혼자 살다 보니 적게 쓰는 것이다. 소득과 (전기소비량) 관련성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 가구원 수와 전기사용량이 비례하는 것 같다. 3대가 함께 사는 저소득 가구가 어려운 것이다.”

―누진제(주택용 3단계) 얘기가 기왕 나왔으니 묻겠다. 누진제를 없애는 쪽으로 갈 수 있는가?

“(3단계 요율을 1단계의) 3배까지 누진 적용하는 것은 국제 관례로 보면 과도한 것 같다. 3단계 요금 적용 사례에서 가구원 수가 많은 경우도 있고, 전기를 아주 많이 쓰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가구원 수와 비례하는데, 조정 여지가 있다.”

―2배 정도로 조정하겠다는 것인가?

“어떤 사람은 ㎾당 얼마 하는 식의 요금을 적용받고 싶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계절별로, 시간별로 달리하는 요금제를 좋아할 수도 있다. 선택 폭을 넓히려 한다. 휴대폰 요금제를 선택하는 것처럼 소비자 스스로 요금제를 선택한다면 다른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주택용에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는데, 콩나물이나 두부 같은 일반 상품처럼 전기도 많이 쓸수록 (단위당) 값을 깎아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잘못된 얘기는 아니다. 그게 전압별 요금제다. 선진국들 대부분, 그런 전압별 요금제다. 공장에는 대량으로 공급하니 원가 회수에 유리하다. 규모의 경제다. 손실률 적고, (단위당) 설치비도 적다. 대용량으로 가는 것과 전주(전봇대) 일일이 거쳐 가는 것에서 관리 비용 차이가 크게 난다.”

―전기요금이 싸다, 비싸다 논란이 있었는데, 객관적인 국제비교 통계에 따른 실상은 어떤가?

“우리 전기요금, 많이 싸다. 지난 34년간(1984~2017년) 물가를 보면, 전기는 1.9배 올랐다. 짜장면값은 14배, 버스 요금은 10.8배, 지하철 요금은 6.8배 올랐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떤가?

“주택용은 굉장히 싼 편이다. 산업용도 싼데, 주택용보다는 덜하다.”(한전이 제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보면, 2017년 기준 주택용 전기료는 오이시디 평균의 66%, 독일의 29% 수준이다. 산업용은 오이시디 평균의 96%, 독일의 69% 수준이다.)

―원가를 공개해야 오해가 풀릴 텐데, 지난번에 원가구조를 공개한다고 하지 않았나?

“주택용, 산업용이 달라 뭉뚱그려 하나로 (공개)하면 비교가 안 된다. 정부와 논의 중이다. 공개 제도를 구체화하고 정부가 그 원가를 확인해줘야 한다. 정부와 협의하는 절차를 거친 뒤 연말까지 공개할 것이다.”

―원가를 공개한 적이 없었나?

“예전에 네차례 원가 회수율을 공개한 적 있다.(한전 자료를 보면 2009년 6월, 2010년 10월, 2011년 7월과 12월이었다.) 그때 당시는 (요금을 원가에 따라) 매년 조정했다. 2013년 이후엔 안 했다.”

―산업용은 원가에 근접하고 주택용은 원가 이하라는 수치를 공개할 수 없는가?

“예전에 네차례 공개한 기준에 따른 원가구조는 갖고 있다. 다만, 감사원에서 원가를 공개하는 게 맞다고 하면서도 주택용의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어, 거기에 맞춰야 한다. 또 마지막으로 정부가 검증을 해줘야 한다.”

―앞으로 요금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건가?

“작년 원가 회수율은 100%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대부분 연료 가격에 좌우된다. 발전 부분 전체 원가의 74%가 연료 가격이다. 우리나라처럼 수입 에너지 비중이 95%인 상황에서 지금처럼 계속 소비가 늘어나는 이런 구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금 부담을 안 하면 후세에 부담이 늘고, 내가 덜 내면 남이 더 내야 한다.”

―목표 시점을 두고 있는가?

“한전 개편 방안을 11월까지 마련할 예정이다. (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지금의 요금 체계에선 소비 패턴, 산업 유형이 에너지를 많이 쓰는 쪽으로 맞춰지게 된다. 물론 하루아침에 다 바꿀 순 없다. 단계별 로드맵을 만들어 제시할 예정인데, 불필요하게 심야 경부하대(전기요금을 싸게 적용하는 야간)로 작업을 옮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전기 난방으로 바나나를 재배하는, 전세계 유일한 나라가 우리다. 또 여름에 문 열어놓고 (가게) 냉방하는 나라다. 이런 식은 곤란하다. 물론, 원가 반영은 단계별로 적용해서 갑자기 큰 영향은 안 받게 해야 할 거다.”(전기 난방으로 겨울철 온도를 유지해 바나나 재배에 활용하는 일이 한때는 대전 지역까지 퍼졌다고 한다. 영세농 보호를 위해 농업용에 준 할인 혜택을 일부 기업농이 활용하는 것이다. 바나나 관세가 낮아진 뒤 그나마 줄었는데 지금도 남해안 지역에서 바나나, 용과 같은 열대과일을 재배하면서 전기 난방을 활용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한전 적자가 탈원전 정책 탓이라는 지적이 반복해서 나왔는데.

“그건 아니다. 원전 가동률이 하락한 것은 ‘후쿠시마 사태’ 뒤 안전 문제에 대한 국제기준이 강화된 결과다. 안전 문제가 있는데, 가동률만 높일 수 있겠는가. 작년 66%의 가동률이 탈원전 정책 탓이라고 하더라도 그 원인은 재정이 나빠진 것의 18% 정도다. 대부분 국제유가 상승 때문이다. 한전 수지는 국제유가에 제일 많이 영향을 받는다.”(한전 당기순이익은 2017년 1조4414억원, 2018년 -1조1745억원, 2019년 상반기 -1조1733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원전 이용률은 71.2%, 65.9%, 79.3%였고 국제유가(두바이)는 배럴당 각각 53.2달러, 69.3달러, 65.5달러였다.)

―‘탈원전’ 구호는 실제와 다른 너무 최상급의 표현 아닌가? 탈원전이 이뤄지는 건 먼 미래의 일일 텐데.

“그래서 ‘에너지 전환’이라고 하지 않나. 세계적으로 보면, 일본이 원전 54기 중 9기를 승인했지만 실제 가동은 4기뿐이다. 추가로 안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미국도 몇개 주에서만 제한적으로 시도하고 대부분 못 하고 있다. 미세먼지 문제 탓에 과거보다는 다른 고려를 하자는 얘기도 나오지만, 오이시디 국가에서는 신규 발전설비 투자의 70% 이상을 신재생 분야에 쏟고 있다. 개발도상국까지 합쳐도 3분의 2가량을 신재생에 투자하고 있다.”

―한국의 지형, 자연조건에선 신재생 분야는 효율적이지 않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우리한테 신재생 분야는 비싼 에너지원이다. 국토가 좁고 자연조건이 불리하다. 이 때문에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한다. 독일은 석탄, 원자력 발전을 줄인다는 데 국민 다수가 동의했다. 우리도 국민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 ‘깨끗한 공기, 깨끗한 에너지는 좋은데, 비용 부담 의사는 없다’는 식으로는 안 된다. 이제 소비 성향이 점점 더 ‘가격’보다 ‘가치’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비싸더라도 서비스의 가치를 더 평가하고 있다. 전기에 대해서도 그렇게 돼야 한다.”

―신재생 쪽 가치를 높게 평가하더라도 효율이 지나치게 낮다면 실제 의미 있는 추진은 어렵지 않은가.

“신재생 분야에서 가장 많이 희망을 거는 건 대단위 해상풍력이다. 목포 신안 앞바다를 비롯한 서남해·제주도 해역에 (발전) 자원이 있다. 태양광은 영농형으로 시도해볼 만하다. 산지에는 이제 여지가 별로 없다. 논농사는 그대로 짓고 그 위에 태양광 설비를 하는 방식이다. 경남 고성에선 이미 시도하고 있다. 2년 시험한 결과, 쌀 소출 감소는 17~18% 수준이었다. 농민들로선 소출이 크게 줄지 않는 상태에서 가외 소득을 올릴 수 있다. 경지 면적의 10%에만 설치해도 발전 용량이 40GW에 이른다.(태양광 40GW는 이용률(15%)을 고려해도 원전 6기와 맞먹는다고 한다.) 영농형 태양광 발전은 일본에서 많이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여건에선 태양광 발전 방식이 최적의 대안일 수 있다. 경지정리가 잘돼 있는 것도 유리한 점이다.”

―한전은 사우디, 영국, 아랍에미리트에 원전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이 기조인데, 다른 나라에 원전을 수출하는 건 자가당착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탈원전이라고 하나, 서서히 줄여가는 것이다. 우리로선 걱정거리가 원자력의 지역 집중도가 높고, 원전 30㎞ 안 거주민이 많다는 점이다. 면적당 원자력발전소, 특히 동해 바닷가 일부 지역의 집중에 대한 우려가 많다. 안전 시각에서 그런 것이지, 기술력 유지를 게을리할 일은 아니다. 한전은 유에이이(UAE·아랍에미리트연합) 원전사업의 주계약자이고 18% 지분을 가진 사업자다.”

―탈원전이 원전 수주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닌가? 상대국에서 우려를 제기할 법한데.

“상대국에서 물어는 보는데 크게 걱정하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공급망이나 기술이 한순간에 없어지지 않는 한, 그렇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유에이이, 사우디, 영국과 협의할 때 탈원전 기조가 결정적으로 문제 될 것이라는 식의 우려는 못 들어봤다. 원전을 더 이상 안 짓는 미국도 수출하겠다고 나서고 경쟁하러 들어오는 상황이다.” kimyb@hani.co.kr

산자부 차관 출신···하이닉스 정상화 이끌어

김종갑 사장은 누구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대구상고,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 경영학 석사(MBA), 인디애나대 경제학 석사, 성균관대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17회 출신으로 공직의 대부분을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보냈으며, 특허청장을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차관을 지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엔 산업계로 진출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하이닉스반도체(현 에스케이(SK)하이닉스) 사장, 이사회 의장으로 경영 위기에 빠진 하이닉스의 정상화를 이끌었다. 2011년 독일계 글로벌 기업 지멘스㈜로 자리를 옮겨 아시아 지역 사업을 주도했고, 지멘스그룹 핵심간부(톱 50)로 활동하던 중 지난해 4월 임기 3년의 한국전력 사장에 선임됐다.

김 사장은 현행 전기요금은 원가를 반영하지 못해 에너지 소비구조를 왜곡하고 있다며 조정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사장 선임 석달 만인 지난해 7월 페이스북에 올린 ‘두부 공장의 걱정거리’라는 글도 그런 맥락이었다. “수입 콩값이 올라갈 때도 그만큼 두부값을 올리지 않았더니 이제는 두부값(전기요금)이 콩값(LNG·석탄 등 발전 연료)보다 더 싸지게 됐다.” 김 사장은 ‘콩값’에 맞춰 ‘두부값’을 조정하는 방안을 오는 11월께 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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