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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6 17:54 수정 : 2019.11.27 17:46

정부 산하 대·중소기업 상생협의회 회장을 맡은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접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영배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황철주 대·중소기업 상생협의회장

일본 ‘수출 규제’ 피해 없지만 불확실성은 여전
한-일 관계 좋아져도 ‘소부장 국산화’ 긴요

일본이 우리의 잠든 의식을 일깨워준 건 ‘행운’
대·중소기업, 대학, 연구기관이 한마음으로 뛸 때다

노동 쥐어짜서 경제발전하는 시대, 이제 끝났다
기업 혁신 안 하면서 자식에게 물려주는 건 ‘위험’

정부 산하 대·중소기업 상생협의회 회장을 맡은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접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유예 뒤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의 감정 대립이 폭발하고 있다. 유예 결정 뒤 잠깐 일던 일본의 수출규제 완화 기대감은 멀어졌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일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야 할 이유다.

정부는 지난 7월 일본의 수출규제 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에 힘을 쏟아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소부장 경쟁력위원회’를 꾸리고, 산하에 민간협의체인 ‘대·중소기업 상생협의회’를 둔 게 그 일환이다. 10월16일 정식 출범한 상생협의회는 경쟁력위원회를 도와 소부장 분야에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분업적 협력을 꾀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상생협의회장을 맡은 황철주(60)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대기업이라고 해서 다 잘할 순 없고 혼자서 하려다간 기회를 놓치게 되는 문제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 뚜렷하다”며 “일본의 수출규제 변수가 없었더라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을 통한 상생이 절실해진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소부장 경쟁력 강화라는 시대적 화두가 제기되며 대-중소기업의 협력과 상생을 통해 성장하자는 컨센서스가 형성됐다”며 “이는 국운이며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대-중소기업 분업적 협력을 통한 상생의 필요성이 확산되고는 있지만 대기업의 인식과 행동은 아직 미흡한 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인터뷰는 지난 15일 이뤄졌으며,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뒤인 25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뒤 한-일 관계가 다시 냉랭해졌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끝내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는가?

“두 나라 정상이 만나고 나면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관계가 아무리 좋아져도 소재·부품의 조달 통로를 다변화해 위험 변수를 줄여가야 한다. 일본에 쏠려 있는 것은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좋지 않다.”

― 일본 수출규제 뒤 국내 기업들에 별 영향이 없었고 오히려 일본 쪽 피해가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나 기업 쪽의 공식 설명과는 다른 속사정이 혹 있지는 않은가?

“실제 직접적인 피해를 본 기업은 없는 것으로 안다. 다만 불확실성 문제는 있다. 소재·부품의 공급 중단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건 부담이다. 특히 양산 라인에선 (불확실성 문제가) 크다고 봐야 한다.”

― 한·일 정부 간 문제가 당장은 풀리기 어려운 것 같다. 기업으로선 그 전제 아래 준비를 해야 할 상황이겠다.

“우리와 일본 사이의 관계가 나빠지지 않았어도, 지진이 일어난다거나 하면 양산을 어떻게 할 건가. 그동안 우리는 그런 문제에 준비가 미비했다. 일본에선 아무리 큰 대기업도 공장을 한 군데 두지 않는다. 몇 군데 분산해 둔다. 지진, 태풍에 대비한다. 국가 간에는 말할 것도 없다. 한 나라, 한 기업과 독점거래하는 것은 위험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10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 반도체 연구소를 둘러본 뒤 연구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일본의 수출규제 조처가 없었더라도 해야 했을 일이라는 뜻인가?

“한국은 그동안 ‘리스크 관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를 바꿀 수 있는 굉장히 좋은 기회를 맞았다. 리스크 관리를 위해 소재·부품을 국산화하고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일이 불편하고 고생스럽고 경비가 더 들겠지만, 안 되는 게 아니다. 양국 정부 간의 문제가 풀려도 상생 협력, 국산화, 다변화는 계속 추진해야 한다.”

― 상생협의회를 꾸린 뒤 변화를 좀 느낄 수 있었나? 소부장 분야에서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관계가 좀 달라질 수 있을까?

“처음엔 대기업들이 (협의회 출범을) 별로 안 좋아했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데 왜 귀찮게 하느냐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건 대기업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이 그렇다. 소부장의 상위 산업인 디스플레이·반도체·자동차·철강·조선 분야의 경쟁력을 위해 소부장 키우자는 것이니까. 대통령의 소부장 화두가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나온 거 아니냐, 이게 중소기업들만 위한다고 생각할 일이냐고 했다.”

― 지금도 비슷한 분위기인가?

“요즘엔 많이 달라져 마음을 열려는 분위기다.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 일본 수출규제 뒤 넉달가량 지났다. 여전히 별 피해가 없는 상황이니 긴장감이 떨어지고 대-중소기업 협력의 필요성도 그만큼 덜 느끼게 되는 것 아닐까?

“그 전에는 오너(대기업 사주)가 현장의 생태계를 잘 몰랐다. 밖에서 좋은 제품(소재·부품) 사 오면 되지, 왜 국산을 써서 문제를 일으키냐는 식의 생각이 많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전문 경영진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제일 좋은 걸 쓰면 사고가 나더라도 책임을 면할 수 있다. 국산화한 걸 갖다 쓰면 질 좋고 가격이 싸다 하더라도 문제가 한번 생기면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다.”

―이젠 달라졌다는 것인가?

“(일본의 수출규제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을 할 수밖에 없게 됐으니. 사실 완벽한 기술이라는 건 없다. 지식·기술·사람은 영원한 미완성이다. 완벽하다면 그건 신이다. 외국 것이든 국산이든 기술이나 혁신은 완벽한 게 아니다. 그런데도 국산을 썼다가는 만일의 경우 문제가 커지는 분위기였다. 국내 중소기업과 협력해 잘되면 표시가 안 나고, 조금 잘못되면 국내 조그만 회사와 협력했다가 일을 어렵게 만든다는 비난을 듣기 쉬웠다. 이 한마디면 (전문 경영인은) 잘린다. 이제 상황이 바뀌어, 좀 불편해도 국내에서 조달해야겠네 하는 인식이 생겼다.”

― 국제 분업 체계에서 전부 국산화할 수는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대기업들로선 질 좋고 싸다면 일본 제품을 갖다 쓸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는 세계 정세나 환율 움직임에 따라 경제가 크게 출렁거린다. 언제 바뀔지 조마조마하다.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

― 기술 면에서 일본에 아직 많이 뒤처져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과학과 기술은 ‘있고 없고,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먼저 하느냐, 나중에 하느냐’ 또는 ‘힘들게 하느냐, 쉽게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불가능의 영역이 아니다.”

― 국내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간 협력이 중요하다면 ‘갑’의 자리에 있는 대기업 쪽에서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지식·기술·정보가 빛의 속도로 공유되고 있다. 빨리 잘해야 경쟁력이 생기는 시대다. 빨리 잘하려면 좋은 파트너와 협력해야 한다. 모든 분야, 모든 사람이 협력해서 새로운 걸 누가 빨리 잘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다. 혁신의 방법이 바뀌었다. 과거의 혁신은 ‘원리의 혁신’이었다. 지금은 ‘결과의 혁신’이 필요한 시대다. 열심히 연구·개발하더라도 그 결과가 금방 경쟁자한테 들어가고, 개발하기도 전에 경쟁자가 알아채는 시대다.”

― 특허 제도가 있지 않은가?

“특허가 모든 걸 보호하지는 않는다. 원리의 혁신에서 결과의 혁신으로 바뀐 게 4차 산업혁명이다. 좋은 파트너와 협력해 다른 이들보다 새로운 것을 더 빨리 시장에 내놓아 초기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이 시대의 성공 방식이다. 협력하지 않으면 1등을 못 하고, 초기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한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9월 1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일본이 지난 7월 4일 시행한 수출제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목에서 황 회장은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들이나 웬만한 기업인들이 이 부분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며 “30년 전의 생각·방법·고정관념에서 벗어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도발에 따라 리스크 관리와 협력의 필요성에 대해 각성은 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중견·중소기업 오너의 혁신 의지와 역량의 부족도 꼬집었다.

“내가 만든 회사가 백년 천년 간다고 생각한다. 경쟁력·기술력이 없는데 자식한테 물려주면 뭐 하나. 기술 혁신은 오너가 하고, 개선은 조직원들이 하는 것이다.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혁신의 주체는 오너다. 중견·중소 오너들, 혁신의 역량을 얼마나 갖고 있나. 굉장히 드물다. 경쟁 상대를 이길 역량이 부족하고, 이길 수 있는 혁신을 안 하면서 저절로 회사가 영속될 것이라 착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심각한 위험이다.”

―가업 승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크지 않은가?

“천연자원을 갖고 비즈니스하는 기업은 혁신할 필요가 없다. 이런 사업은 물려줘도 된다. 우리나라에 그런 비즈니스나 산업, 기업은 없다.”

황 회장은 “우리는 전문 경영인, 사업가, 기업가의 구분도 못 한다” 고 말했다. 경제 전반의 발전 모델과 연관되는 진단이다. “기업가는 기술 혁신, 창업, 새 시장 개척으로 인프라를 만드는 역할이다. 사업가는 그 인프라의 바탕 위에서 기술·시장·노동력을 융합해 회사를 이끌고, 이익을 추구한다. 기업가·사업가가 만든 회사를 효율적으로 운영해서 이익을 창출하는 게 경영인이다.”

황 회장은 과거 30년 한국의 경제 발전은 ‘경영인 방식’이었다고 덧붙였다. “경영인은 인프라를 만들거나 혁신하는 사람이 아니고 효율을 높여서 기업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한국은 30년 동안 노동을 짜기만 했다. 씨앗도 안 뿌리고, 물도 안 주고, 키우지 않고, 열매만 따 먹었다. 이제 더는 따 먹을 열매가 없다.”

― 기업가 정신을 발휘한 예가 있지 않은가?

“대부분 그러지 못했다. 기업가 정신을 모범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드물다. 그런 사람이 많았으면 기업인들이 왜 사회로부터 존경을 못 받겠나. 기업인들이 대우를 못 받는 게 그런 정신, 철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혁신은 노동의 혁신이었다. 지금 베트남이 성장하는 것과 같다. 이제 그 노동의 혁신은 끝났다. 노동의 혁신은 곧 헝그리 정신이다. 지금 헝그리 정신을 말할 때는 아니지 않나. 이제는 기업가 정신으로 가야 한다.”

― 상생협의회가 기업가 정신을 살리는 실마리일 수는 없는가?

“대기업이라고 혼자서 다 잘할 수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혼자서는 속도와 시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극복하려면 협력해야 한다. 협력하지 않으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둘 다 죽는다. 소재·부품·장비의 경쟁력 강화라는 시대적 화두가 나와 대-중소기업의 협력과 상생을 통해 성장하자는 컨센서스가 만들어졌다. 국운이다. 아베 정부가 시작한 일이지만 우리의 대응도 적절했다고 본다.”

― 일본의 수출규제 조처가 아니었더라도 대-중소기업의 협력은 필요했던 것 아닌가?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필요성을 절실하게 못 느꼈을 것이다. 일본이 잠자고 있는 우리의 의식을 깨우쳐 줬다. 대·중소기업, 대학, 연구기관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 국운이고,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좋은 파트너와 지속가능한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기업의 경쟁력인 시대다. 대-중소기업 상생, 분업적 협력이 새 시대에 맞는 성공 전략이 될 거다. 우리는 그동안 이걸 잊고 지냈다.”

kimyb@hani.co.kr

황철주 회장. 백소아 기자

대-중소기업 상생에 앞장선 ‘벤처 1세대’

황철주 회장은 누구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했고, 현대전자(에스케이(SK)하이닉스 전신)와 네덜란드계 반도체 장비 회사인 한국에이에스엠(ASM)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1993년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해 6년 만에 코스닥에 상장시킬 정도로 괄목할 성과를 거뒀다. 1세대 벤처기업인의 대표 격으로 꼽히는 배경이다. 벤처기업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비를 만드는 주성엔지니어링은 현재 중견기업 반열에 올라 있다. 주력 제품은 화학증착장치(CVD), 원자층 증착장치(ALD), 반도체 웨이퍼의 표면을 깎아내는 장비 드라이에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장치다. 반도체 원천기술 18건, 관련 특허 2151건을 확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수출규제 조처 뒤 집중 관심 업체로 떠올랐다. 작년 기준 임직원 457명,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640억원, 414억원 수준이다. 2001년부터 삼성전자와 맺었던 거래 관계가 끊겨 존립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에스케이하이닉스와 엘지(LG)디스플레이, 국외 업체를 주요 고객사로 삼아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업황과 내년 전망을 묻자 황 회장은 “경기가 좋든 안 좋든 무방하다”며 “혁신하는 기업은 경기가 안 좋을 때 더 빛난다”고 말했다. 대·중소기업 상생협의회에 대해선 “한국의 새 성장 동력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새 시대에 맞는 성공 전략은 대-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이다.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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