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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7 16:22 수정 : 2019.12.18 02:35

한완상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이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고명섭 논설위원 직격인터뷰한완상 3·1운동·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

‘금강산·개성’ 밀어붙였으면 남북관계 진전됐을 것
개성공단 최고의 제품은 냄비도 의복도 아닌 ‘평화’
방위비 분담 증액 압박은 국가 자존심 상처내는 일
‘한-미 군사동맹, 평화동맹으로 발전’ 적극 제안 필요
반도의 운명 이용해 대륙-해양 완충지대 역할 해야

3·1운동은 공공성·감동성·변혁성 지닌 빛나는 저항
유관순 순국 정신 전태일-박종철-이한열로 이어져

한완상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이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일을 대체로 마무리한 한완상 위원장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한 위원장의 관심사는 3·1운동을 넘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포괄했다. 한 위원장은 북-미 대결이 심화하고 남북관계가 막힌 상황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해 9월 평양 능라도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한반도’를 역설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던 때를 떠올리며 “그 직후에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하겠다고 미국에 통보하고 실천해냈더라면 남북관계가 이렇게 악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심정을 밝혔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가슴에 호소하는 공감 외교를 펼쳐야 한다며 한-미 군사동맹을 진전시켜 평화동맹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해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중국이 부상하는 시기에 대륙과 해양 사이에 끼인 반도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남북 공조를 통해 평화의 완충지대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말도 했다. 인터뷰는 16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3층 한 위원장의 집무실에서 했다.

―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이루기 위해 3·1운동에서 얻어야 할 역사적 동력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100년 전 일어난 3·1운동에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시위가 대단히 공공적이었습니다. 독립을 향한 순수한 함성이었고, 사익 추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감동이 컸습니다. 또 당시 세계의 상황으로 보아 대단히 급진적인 변혁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3·1운동의 공공성·감동성·변혁성이 후대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일제강점이 남북분단으로 이어진데다 친일냉전 세력이 분단 후 대한민국을 지배했기 때문에 공교육을 통해 3·1운동의 울림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3·1운동이 일어날 당시 서방 사회는 약육강식의 논리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강점하고 수탈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동방의 작은 나라가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저항한 것은 굉장히 빛나는 일입니다.”

― 말씀하신 대로 3·1운동 하면 비폭력 저항 정신을 떠올리게 됩니다.

“유관순 열사가 남긴 유언에서 3·1정신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코가 잘리는 아픔, 손과 다리가 부러지는 아픔은 이길 수 있으나 조국을 빼앗기는 것은 견디기 어렵다. 빼앗긴 조국을 위해 바칠 몸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소녀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 3·1운동의 울림이 컸다는 게 놀랍습니다. 이화학당 교장이 서대문형무소장에게 유관순 시신을 달라 하니 소장이 거부했다고 합니다. 세계 언론에 알리겠다고 하니까 그제서야 상자를 내주었는데, 유관순의 시신이 토막 나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유관순이 그 시절 손정도 목사의 설교를 들었는데 나라 사랑과 하느님 사랑이 같은 것임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이런 신앙에 따라 비폭력 저항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3·1정신은 분단 상황에서 민주화와 정의를 위한 운동에도 맥이 닿아 흘러왔습니다. 전태일을 비롯해 박종철, 이한열 등 정의와 민주화를 위해 죽은 많은 이들의 정신, 냉전체제에 맞서 투쟁했던 이들의 정신에 유관순이 살아 있다고 봅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동력으로서 3·1운동의 정신을 다시 확인했으면 합니다.”

―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가 참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북-미 관계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아직도 하노이 결렬 이후 새로운 해법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부족해 보입니다. 싱가포르 선언을 보면, 미국이 북한에 안전보장을 해주고 북한은 비핵화를 하는 게 ‘동시에’ 이루어지는 걸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 미국이 ‘비핵화부터 하라’며 선후 관계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건 새로운 방식이 아닙니다. 미국과 북한이 ‘동시에’ 하는 게 중요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 나도 내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위기 국면이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진심을 담아 이렇게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훈이므로 간단히 무시하면 안 된다. 유훈의 진정성이 있다. 그 진정성을 살려서 미국과의 관계가 좋아지게 하려면 초강대국인 미국이 먼저 양보해야 한다. 힘센 사람이 양보해야 일이 되지, 약한 자에게 무릎 꿇으라 하면 일은 더 꼬인다. 북한이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으로 바꾸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시절처럼 주민들을 또 굶겨서는 안 되기 때문에 민생경제 해결이 매우 절박하다. 그 점을 미국이 진정성 있게 봐야 한다.’ 이 논리를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가슴에 대고 설득해야 합니다. 최고지도자끼리는 이런 공감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 대통령의 장점은 ‘따뜻한 가슴’이 있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질로 보아 문 대통령이 진심을 다해 말하면 들을 것이라고 봅니다.”

― 한반도 정세가 워낙 어두워 문 대통령의 어깨가 무거워 보입니다.

“지난해 평양 능라도 연설 때 저도 현장에 있었는데 문 대통령의 7분간의 연설은 정말로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15만 평양시민이 ‘핵 없는 한반도를 자손에게 물려주자’는 저 연설에 과연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어 초조했습니다. 연설이 끝나고 2초 정도 뒤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한반도 냉전체제가 이제 비로소 무너지고 있구나’ 하고 안심했지요. 그쪽 사람들도 그때 뭔가 새로운 조처,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같은 조처가 금방 나올 것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사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유엔 제재 대상도 아닙니다. 개성공단 만들 때 김정일 위원장이 군부가 반대하는데도 인민군 최정예 부대를 후방으로 빼라고 했습니다. 말 안 듣는 군부를 야단쳐서 성사시킨 게 개성공단입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가장 값비싼 제품은 냄비도 의복도 아니고 바로 평화입니다. 또 금강산관광도 정부가 한 게 아니라 정주영 회장이 주도하고 남북 두 정부가 협조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민간 주도 사업입니다. 우리가 미국에 유엔 제재에 걸리는지를 물은 건 신중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이야 당연히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도 통제수단으로 쓰고 싶겠죠. 우리가 결단해 밀고 나갔어야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 한-일 관계도 지난 수십년 이래로 가장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도 조건부 연장 상태이고, 강제징용 배상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일 관계 문제를 풀려면, 역사적으로 불행한 관계를 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불행의 본질은 한쪽은 가해자, 다른 한쪽은 피해자였다는 역사적 사실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해자가 먼저 양보하고 그 잘못을 시인해야 합니다. 아베 총리가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공감 수준까지 못 가더라도 메르켈 독일 총리 정도까지는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 없이 양국 간 화해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 주한일본대사관의 관계자와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3·1운동이 한-일 관계를 어렵게 하는 문제여서 제가 한-일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들까봐 저를 초대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본은 우리를 부당하게 강점하고 착취하고 통제하고 우리 성과 말까지 빼앗아갔다. 나는 일본이 우리에게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알기에 일본을 미워했다. 나는 일본을 계속 미워하면서 죽고 싶지는 않다. 나는 증오의 감옥에 오래 갇혀 있었다. 나를 좀 그 감옥에서 풀어달라.’ 그랬더니 그 관계자가 ‘위원장님께서 감옥에서 나오시면 된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그 감옥은 가해자들이 만든 감옥이어서 열쇠는 당신들이 가지고 있다. 당신들이 열어주어야 증오의 감옥에서 나올 수 있으니 제발 나에게 그 열쇠를 달라. 그래서 풀려나 일본을 껴안고 싶다. 진정 어린 사과를 안 하니 용서할 길이 없지 않은가.’ 그러자 그분이 말없이 가만히 있는데 왼쪽 눈에 물방울이 고이는 게 보였습니다. 무언가 느끼고 그 느낌이 전달됐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그런 일이 있었군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도 한-미 사이에 뜨거운 현안입니다. 미국은 지금의 다섯 배가 넘는 50억달러를 내라고 하는데요.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2019년에 펴낸 연구보고서 ‘세계적 도전에 직면한 민주주의’를 보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나라로 나옵니다. 세계를 민주화 척도로 나누었을 때 우리는 상위 10% 국가 중에서도 최상위이고, 특히 인구 5천만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의 ‘30-50클럽’ 선진 7개국 중에서 한국은 가장 민주적인 국가로 평가됐습니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스스로 노력해서 이렇게 이루었는데, 분담금 문제 때문에 다시 후진국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분담금 인상 압박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 많은 국민이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자긍심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분담금 문제도 그만 강요하고, 이 기회에 한-미 군사동맹을 평화동맹으로 진화·발전시켜 가자.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동아시아에서부터 평화를 만드는 일을 같이 하고 싶다.’ 남북 경제협력에 필요한 비용을 포함해 평화동맹을 위한 비용은 우리가 더 대겠다고 하자는 것입니다. 군사동맹을 평화동맹으로 진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군사동맹을 평화동맹으로 발전시키면 미-중 관계도 훨씬 좋아질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동맹 체제를 대승적으로 수용한다면 평화 흐름이 아시아·태평양, 인도양 지역에서도 약동하게 될 것입니다.”

― 한-중 사이에 여전히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인한 껄끄러움이 남아 있습니다.

“역사를 보면 해양을 지배한 것은 모두 백인 서방국가였습니다. 지난 2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이라는 비백인 대륙 강대국이 나타났습니다. 세계를 지배해온 미국 중심 해양 체제가 주춤하는 형세가 된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게 사드 문제입니다. 중국이 미국을 군사적으로 이길 힘은 아직 없지만 추세는 중국이 강해지는 쪽입니다. 이런 추세 속에서 중국을 포위·견제하겠다는 게 미국의 생각이고 그게 사드 배치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반도여서 대륙에도 해양에도 다 속합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가 강대국에 둘러싸여 너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다시 한쪽만 조건반사적으로 편드는 일은 그만두어야 합니다. 바다와 대륙을 다 함께 보아야 합니다. 반도의 운명은 기묘합니다. 대륙과 바다가 충돌할 때 평화를 만들 수 있는 민족이 바로 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북 간 공조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유지하고 통일을 추진하면서 평화의 완충지대 역할을 우리 민족이 해야 합니다.”

michael@hani.co.kr

한완상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이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고명섭 논설위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완상 위원장은 누구?

통일·교육 부총리 지낸 원로 지식인

“분단모순 극복에 더 많은 관심 쏟길”

한완상 위원장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원로 지식인이다. 미국 에머리대학에서 정치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76년 유신체제 비판 성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했다. 1980년 3월 복직했으나 그해 5월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고 감옥생활을 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초대 통일부총리를 맡았으나 보수세력의 집요한 공격으로 그해 12월 물러났다. 2001년 김대중 정부 때 교육부총리를 지냈다.

한 위원장이 해직 시절 쓴 <민중과 지식인>(1978)은 유신 말기와 1980년대 대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한 위원장은 자신의 영향을 받고 자란 ‘86세대’ 정치인들이 기득권 세력이 됐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젊었을 때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헌신했던 것을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86세대가 권력체제에 편입되면서 나태해진 점을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우리 사회에 계급모순, 젠더모순 같은 중요한 모순이 있지만, 한반도의 특수한 모순인 분단모순을 극복하지 않고는 이런 문제들도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며 분단 극복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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