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06 06:01
수정 : 2019.09.06 20:29
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나무연필(2017)
남북한 긴장이 고조되면 대한해협 너머 일본의 조선인 학생이 피해를 입는다. 민족, 민족의식이란 저절로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그로 인한 피해가 있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1987년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2002년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 등이 발생할 때마다 재일조선인 학교에는 시시때때로 학생들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온다. 때로는 학생들이 통학하는 버스에 혐한 메시지를 담은 전단이 붙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묵인하거나 조장하는 일본 정부의 법적·제도적 차별이다. 조선학교에는 기부를 해도 세금 감면 혜택이 없고, 학생의 통학안전을 위한 스쿨존도 설치해주지 않는다.
지난 8월29일, 한국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일본 최고재판소가 정부의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것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2010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고교 무상화 정책은 공립고교는 무상교육, 사립고교 학생에게는 한 사람당 연간 12만~24만엔의 학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외국인학교 학생들도 지원 대상이지만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조선학교에 대한 적용이 중단되었다. 제2차 아베 정권이 출범하면서 조선학교가 북한 정부 및 총련과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교육지원금이 다른 용도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지원 대상에서 아예 제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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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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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접한 뒤 내가 아는 몇몇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중 한 사람인 서경식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나 60년 이상을 일본에서 살았다. 그에게 일본이란 국가는 ‘인권·평등·평화·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가르쳐 주었던,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평화주의’를 실천하겠다고 외쳤던 나라였다. 그런 일본, 전후 일본은 어째서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그는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에서 반성이 불철저했던 일본이라거나 리버럴의 한계라고 손쉽게 단정 짓지 않는다. 물론 전후 일본이 과거와 단절하여 새로운 근대국가로 출발할 수 있었던 여러 차례의 호기를 놓쳤다거나 새로운 보편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일본’은 근대의 시초부터 우리에게 어려운 질문이었고, 현재도 여전히 그렇다. 1919년 3·1운동은 일본에 의해 잔혹하게 탄압당했다. “일본은 근대 이후 ‘문명화(유럽적 보편주의)’를 구실로 삼아 자기중심적인 국가주의에 입각한 침략”을 거듭했다. 그들은 이와 같은 ‘일본적 보편주의’를 ‘팔굉일우’라고 칭했는데, “이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 신도(神道) 사상에 따라 일본을 정점에 둔 국제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이며, 중국·조선 등 아시아 민족들은 이런 보편주의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독립을 요구하는 피지배 민족의 바람은 ‘민족주의적 편견’이라 해서 탄압”했다.
한국에서 나고 성장한 사람에겐 한국의 보편이 상식일 터이고,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한 사람들은 일본의 보편을 당연한 것으로 배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국민, 민족의 일원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 민족주의적 편견을 보편으로 설정한 사회에서 교육이란 ‘민족주의적 편견’을 재확인하는 과정이다. 남이 누른 승강기 버튼을 자신이 내려야 할 층으로 착각하여 나도 모르게 따라 내리는 것처럼 스스로 따져보고 판단해서 선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아우슈비츠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윤리적 주체로서의 개인은 자신의 책임을 망각하거나 방기하지 않으면서도 집단의 문화·사회·국가에 저항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따져 묻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의 일본을 바라보며 또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이유이다.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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