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07 06:01
수정 : 2019.06.07 19:38
윤비의 이미지에 숨은 정치
⑩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 예배당의 루드 스크린의 도상
신의 나라를 상징하는 제단과 성가대석의 구역으로 이어지는 문의 한가운데에 헨리의 이름을 새겨넣는다는 것은 국왕이 곧 성과 속을 연결하는 매개이며, 오로지 국왕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신의 나라와 인간의 나라를 매개하는 존재는 교황이라고 주장했던 로마가톨릭에 대한 도발이다.
영국의 케임브리지에 처음 간 것은 2005년이었다. 피터버러라는 곳에 있는 어느 중세 기사 거주지의 벽화들을 연구하러 가던 길이었다.(그 벽화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 연재 중에 다시 하게 될 것이다.) 한 주를 머무는 동안 그곳에 사는 한국인 가족들의 파티에 초대받게 되었다. 지금도 케임브리지의 여름 밤공기를 마시며 나눈 그날의 대화를 즐겁게 떠올린다. 그때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파티를 연 선배는 사람들에게 도상학이 무엇인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후배가 무슨 공부를 하길래 베를린에서 케임브리지까지 오는지 사람들이 묻자 덜컥 “예…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그 교수 같은 공부를 한대요”라고 대답해 버렸던 것이다. 단연코 말하지만, 그날 저녁만큼 기대에 차서 눈을 반짝이는 ‘청중들’을 만난 적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 나는 그날 성배의 전설부터 장미십자회와 성당기사단을 거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까지 이어지는 질문들(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 온갖 질문에 대한 답들을 내가 모두 알 리가 없다!)의 포화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마침내 스러졌다. 오늘은 케임브리지에서 보냈던 그 유쾌한 날들에 우연히 만났던 도상들의 이야기이다.
루드 스크린의 ‘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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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킹스칼리지 예배당 루드 스크린. 신도석에서 본 모습. ⓒ seier+se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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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독특하고 아름답게 생긴 교회 하나를 기억한다. 킹스칼리지 예배당(King’s College Chapel)이다. 1446년 7월 헨리 6세가 초석을 놓았다고 전해지는 이 교회는 오늘날 유럽 전체에서 가장 화려하고 우아한 종교건축물 중의 하나로 꼽힌다. 예배당은 십자가 모양이 아니라 긴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천장을 장식한 부채꼴 궁륭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그 못지않게 아름다운 것은 예배당을 둘로 구분하고 있는, 참나무로 만든 짙은 밤색의 루드 스크린(rood screen)이다.(사진 1) 루드 스크린이란 간단히 설명한다면 제단과 성가대석이 있는 구역 앞에 놓인 일종의 차단구조물이다. 여기서 루드는 영어 ‘로드’(rod)에서 비롯된 말로,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를 의미한다. 루드 스크린은 중세의 교회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그 모습도 여러가지이고 재료도 석재부터 시작해서 매우 다양하다. 그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기능과 의미는 한가지다. 지난 8회에서 우리는 교회의 상징구조에서 제단과 성가대석이 있는 구역이 신의 나라, 천상의 예루살렘을 의미하며 성직자가 아니면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으로 여겨졌다고 이야기하였다. 루드 스크린은 바로 이 신성한 구역을 물리적으로 교회의 다른 공간으로부터 구분한다.
킹스칼리지 예배당의 루드 스크린 위에는 오르간이 있고 그 어깨에는 나팔을 불고 있는 천사들이 일반 신도들 쪽을 바라보며 서 있다. 이들은 루드 스크린의 상징적 의미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오르간 위 높은 곳에 서서 나팔을 부는 천사들의 모습을 우러러보며 예배자들은 도래할 신의 나라를 상상하고 염원한다.(나팔을 부는 천사의 모습은 최후의 심판과 신의 나라의 도래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자주 등장한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세상 나라는 우리 주님과 그분이 세우신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영원무궁토록 군림하실 것이다.”) 스크린 너머로부터 퍼져나오는 성가대의 화음은 오르간의 음률과 어울려 신의 나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아름다움과 조화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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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킹스칼리지 예배당 루드 스크린 문양. 왼쪽부터 HR, HA, 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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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루드 스크린은 대략 1530년쯤 헨리 8세의 후원하에 세워진 것이다. 그 표면에는 후원자가 헨리 8세임을 알리는 여러 글자와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국왕 헨리라는 의미의 ‘HR’(Henricus Rex)라는 양각문자이다. 이외에도 ‘HA’와 ‘RA’라는 문자의 조합이 곳곳에서 등장한다.(사진 2) 여기서 HA는 헨리쿠스(Henricus)와 안나(Anna)의 머리글자를 따 조합한 것으로서 헨리와 그 두번째 부인인 앤 불린(Anne Boleyn)을 말하며, RA는 레기나 안나(Regina Anna), 즉 앤 여왕이라는 두 단어의 머리글자를 합쳐놓은 것이다.
헨리와 앤의 꽤나 알려진 연애담을 여기서 길게 설명할 여유는 없다. 앤은 원래 헨리의 왕비인 캐서린의 시녀였다. 그러나 헨리는 후사를 이어주지 못하는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과 결혼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를 로마 교회가 허락하지 않자 로마 교회와 결별하고 영국 교회를 독립시켜 자신이 그 수장으로 앉았다.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1536년 앤은 헨리에 의해 사형을 당한다. 헨리와 앤의 이름을 새긴 양각문자들은 이 아름다운 루드 스크린이 16세기 전반기 영국을 뒤흔들었던 정치 종교적 변동 속에서 태어났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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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킹스칼리지 예배당의 루드 스크린 문에 새겨진 HR 양각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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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킹스칼리지 예배당의 루드 스크린은 당시의 정치 종교적 변동의 의미와 깊이를 가늠하게 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루드 스크린 한가운데, 신도들이 앉는 공간과 성가대석을 이어주는 통로의 문 한가운데 새겨진 HR라는 양각을 보자.(사진 3) 루드 스크린의 도상을 해석하는 입장에서 아쉬운 것은 이 문이 원래의 것이 아니라 1636년에 재설치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튜더 초기의 문의 스타일을 놀랍도록 비슷하게 재현했음을 보면 HR가 원래의 문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거나 심지어 원래 문에 붙어 있던 것을 떼어내어 다시 붙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로마가톨릭에 대한 도발
문에 새겨진 HR는 국왕이 교회의 수장이라는 헨리의 종교개혁의 핵심 주장을 집약하고 있다. 신의 나라를 상징하는 제단과 성가대석의 구역으로 이어지는 문의 한가운데에 헨리의 이름을 새겨넣는다는 것은 국왕이 곧 성과 속을 연결하는 매개이며, 오로지 국왕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신의 나라와 인간의 나라를 매개하는 존재는 교황이라고 주장했던 로마가톨릭에 대한 도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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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대성서(Great Bible) 표지. 그림은 1539년 그래프턴 휫처치(Grafton and Whitchurch) 인쇄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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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유사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예로서 비교해 볼 수 있는 것이 1538년 9월5일 헨리 8세의 수석장관인 토머스 크롬웰이 영국의 모든 성직자들에게 보낸 명령서에서 발간이 시작된 대성서(Great Bible)의 표지이다.(사진 4) 이 표지에서 헨리는 신의 말씀을 영국의 신민들에게 전달하는 역할로 맨 위쪽에 묘사되어 있다. 그의 왼쪽에는 캔터베리 대주교인 크랜머가, 오른쪽에는 크롬웰이 서서 성경을 넘겨받고 있고 이들 뒤에는 한 무리의 성직자들과 귀족들이 각각 서 있다. 여기에도 킹스칼리지 예배당 루드 스크린에 새겨진 HR처럼 헨리 8세야말로 구원을 향한 도정에서 인간을 신과 연결하는 으뜸의 매개자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둘은 세속권력의 우두머리이자 영국 교회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권력에 대한 헨리의 주장의 시각적 표현이다.
종교적·신학적 개념 및 사고와 정치공동체 및 정치권력에 대한 이해의 혼종을 흔히 정치신학, 혹은 신학적 정치론이라고 부른다.(물론 요즘 정치신학이라는 개념은 이보다 더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일종의 학문적 유행이 되었기 때문이다. 유행에 유독 민감한 한국의 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서유럽의 역사에서 정치신학, 혹은 신학적 정치론의 전성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중세였다. 그러나 중세와 더불어 정치신학도 소멸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이슬람만이 아니라 서구에서도 다시 힘을 얻고 있는 종교 근본주의는 그 가장 분명한 증거이다. 다음 글은 중세교회의 상징을 다루는 마지막 회가 될 것이다.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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