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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22 05:59 수정 : 2019.02.22 19:19

미국 북동부 최대 고분인 몽크스고분의 모습. 강인욱 제공

[책과 생각] 강인욱의 테라 인코그니타
⑤신대륙 원주민 기원 논쟁

아메리카 신대륙 원주민(소위 인디언)의 기원은 신대륙이 서구 사람들에게 처음 발견된 이래 400여년을 끌어온 논쟁이다. 초창기 신대륙의 풍물을 기록한 호세 데 아코스타(1540~1600) 예수회 신부가 <신대륙 문화사>에서 이들을 아시아 어딘가에서 난파된 사람들이라고 말한 이래, 원주민이 아시아 대륙에서 건너왔다는 것은 정설이 되었다. 이를 들어서 중국에서는 신대륙의 발견자가 중국인이라는 주장이 꽤 강하게 등장하고 있다. 한편, 미국에 정착한 백인 이주민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미국 북동부 최대 고분인 몽크스고분의 모습. 강인욱 제공
아메리카 신대륙 원주민(소위 인디언)의 기원은 신대륙이 서구 사람들에게 처음 발견된 이래 400여년을 끌어온 논쟁이다. 초창기 신대륙의 풍물을 기록한 호세 데 아코스타(1540~1600) 예수회 신부가 <신대륙 문화사>에서 이들을 아시아 어딘가에서 난파된 사람들이라고 말한 이래, 원주민이 아시아 대륙에서 건너왔다는 것은 정설이 되었다. 실제로 마야문명에서 보이는 여러 유물의 특징은 동북아시아의 선사시대와 많은 유사점이 보인다. 이를 들어서 중국에서는 신대륙의 발견자가 중국인이라는 주장이 꽤 강하게 등장하고 있다. 한편, 미국에 정착한 백인 이주민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신대륙의 기원을 두고 엇갈리는 다양한 이야기의 속사정을 살펴보자.

미국 무덤의 미스터리

1620년 메이플라워호가 기착한 이래 신대륙의 백인 이주민들은 원주민들을 미개하고 열등한 사람들로 간주했다. 우리가 서부영화에서 봐왔듯이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몰아냈다. 그런데 초기 정착민들이 주로 거주했던 미국 동북부 지역에서 이해할 수 없는 유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마치 뱀처럼 긴 모양을 한 무덤과 다양한 거대한 고분들이 발견되는 것이 아닌가. 그중에는 황남대총의 1.5배 정도인 엄청난 규모도 있었다. 백인 이주민들로서는 미개하고 열등한 원주민들이 문명의 흔적인 거대한 고분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에 백인 이주민들은 이 무덤을 만든 사람들은 현재의 아메리카 원주민이 아니라 지금은 사라져버린 백인들이라는 설을 주장했다. 그 유력한 후보는 바다에 침몰한 아틀란티스 대륙의 후예설, 히브리인, 스키타이인, 바이킹 등이었다. 19세기 중반에 미국에서 시작된 모르몬교는 기원전 6세기경에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서 1천년간 살았다는 교리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의 시대 배경을 엿볼 수 있다.

세계 주민 이주 확산도를 보면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출처 내셔널 지오그래픽
‘마운드 빌더’(무덤을 만든 사람)라는 이 황당한 논쟁이 정작 미국에서는 진지하게 200여년간 이어졌다. 심지어 미국 제3대 대통령을 역임한 토머스 제퍼슨마저 자기 농장에 있는 고분을 직접 발굴할 정도였다. 20세기 초반이 되어서야 북미에 남겨진 거대한 고분은 바로 그들이 경멸하던 원주민들의 조상이 만들었다는 당연한 사실이 인정되었다. 미국같이 실용적이며 과학 문명이 발달한 나라에서도 이렇게까지 어처구니없는 미신에 집착했을까 어이가 없다. 아마도 백인 이주민들은 신대륙을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라는 확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멕시코 이민자들을 장벽을 쌓아서라도 막겠다는 미국 정부와 그를 옹호하는 백인 지지층의 머릿속에 그런 인식은 여전히 숨어있다.

또 다른 신대륙 발견자를 자처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청나라 말기부터 신대륙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면서 ‘진시황에게 불사약을 구하겠다고 하고 사라져 버린 서복(徐福 또는 서불)의 기착지가 신대륙’이라는 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고대 중국의 지리서인 <산해경>에 기록된 동쪽 바닷속 해 뜨는 나라인 ‘부상’(扶桑)이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런 막연한 추정은 1928년에 은허(殷墟)에서 발굴된 상나라의 청동기였다. 미국의 고고학자들은 미국 북서부 인디언 예술품과 상나라의 청동기가 너무나 유사하다는 점에 놀랐다. 저명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자는 구체적인 이동 경로가 없기 때문에 인류의 문화발달 과정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이라는 해석을 했다. 하지만, 이후 신대륙에서 기원전 1200년경에 갑자기 등장해서 사라진 올멕 문명이나 암각화를 상나라와 연결하는 등 “상나라 미국 이주설”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정화의 원정대가 아프리카뿐 아니라 전 세계를 탐험했다는 연구와 함께 거대한 중국을 지향하는 중국인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한편, 일본과의 관련성도 일찍이 1960년대에 제기된 바가 있다. 1960년대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메거스-에번스 부부 고고학자는 에콰도르의 발디비아 문화가 일본 조몬토기에서 기원했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사실 이들이 말하는 조몬토기는 한국에서 주로 출토되는 빗살무늬토기과 번개무늬토기에 더 가깝다. 이 역시 미국 고고학계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었다. 다만 최근에 환태평양의 문화교류에 대해 다시 논의가 일어나며 시베리아의 신석기 연구자들 사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냉전이 사라지고 지역 간 교류가 활발해진 덕분이다.

고고학과 유전자의 연구는 일관되게 남부 시베리아의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기원전 1만5천년을 전후해서 베링해를 넘어가 점진적으로 미 대륙으로 퍼져나갔다고 증명한다. 즉, 시베리아 기원설인 셈이다. 게다가 신대륙으로 넘어간 기원전 1만5천년 전후의 사람들은 이미 구석기시대에 제사, 토기, 예술 등 문명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니 양 대륙에서는 동일한 후기 구석기시대의 문화적 배경에서 발원한 유사한 유물들이 나올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중국고고학을 전공했던 대만 출신의 장광즈 교수는 두 대륙 간의 공통점을 모두 샤먼을 주축으로 하는 제사 중심의 사회라는 차원에서 접근했다. 세계 문명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근동과 인더스의 문명은 전쟁, 행정 그리고 교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반면에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신대륙 일대는 제사와 그것을 주관하는 신관, 즉 샤먼이 문명의 주축이 되었다. 구석기시대 이래 종교적 전통이 잘 남아 있는 두 대륙의 예술품과 종교에 유사점이 보이는 것이다. 이를 ‘아시아-아메리카 샤먼문화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콜롬비아에서 출토된 샤먼 인물상과 곡옥 장식. 안드레이 타바레프가 설명을 붙였다. 강인욱 제공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구석기 시대 이후 다양한 시기에서 유사한 유물들이 돌출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극동 시베리아와 신대륙 사이의 섬들을 따라 이루어지는 해상 교류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 측의 학자들은 신석기시대 극동과 캄차카 지역의 조각상들이 마야와 북미의 조각상들과 유사하다는 연구를 내어놓고 있다. 아직 대륙 간 해상교류는 여전히 초보적이고 너무나 광활한 지역에서 단편적인 비교이다. 그렇지만 최근까지도 환태평양의 원주민들은 사할린에서 캄차카반도를 거쳐서 알류샨열도와 알래스카로 이어지는 네트워크를 형성해왔다. 이렇게 연해주와 캄차카를 따라 신대륙으로 이어지는 환태평양의 문화교류는 두 대륙 사이의 문화교류에 해답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에쿠아도르와 조몽토기를 비교한 논문과 그 예.jpg
이제 연구는 시작이다

사실 아시아와 신대륙의 문화 교류관계는 이제 초보적인 연구 단계이다. 한동안 미국 고고학계에서는 원주민들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에 극도의 저항감을 보였다. 미국 주요 도시나 대학의 박물관들은 유럽과 근동의 유물들은 미술관에 전시했고, ‘인디언’으로 부르던 신대륙 원주민의 유물은 자연사박물관에서 전시했다. 신대륙의 선사시대 연구는 자기들이 몰아낸 원주민의 역사이기 때문에 백인들의 역사와 분리하여 역사학이 아닌 인류학과에 소속시켰다. 게다가 신대륙 원주민의 고향인 시베리아와 중국은 냉전 시기 그들과 대립하던 공산주의권 나라였으니 제대로 된 연구가 어려웠다. 다행히도 21세기에 들어서 각 지역의 정보가 풍부해지고 지역 간 장벽이 사라지면서 원거리의 교류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지고 있다. 게다가 유전자 분석으로 지역 간 교류의 흔적은 꽤 구체적으로 추적되고 있다.

18세기 프랑스화가가 그린 미국 플로리다 원주민들의 사슴을 매개로 한 샤먼의식
대륙 간의 문화교류를 선입견으로 색안경을 낄 필요는 없다. 유라시아에서 만리장성 북쪽의 흉노가 동유럽까지 가고 고구려의 기마술이 유라시아 각지로 확산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신대륙에도 수많은 사람의 문화가 교류했을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다만 교류의 구체적인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연구와 논증이 필요하다. 해상을 기반으로 한 대륙 간 문화교류의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이다. 신대륙은 면적만 한반도 200배에 달한다. 그러니 신대륙의 고대 문화는 엄청나게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한 국제적인 연구이다.

마야 팔렌케 석관의 뚜껑(왼쪽)과 중국 한나라 마왕퇴 관의 덮개(오른쪽). 시공을 초월하여 뱀을 매개로 한 천상세계를 묘사한 유물. 출처 K. C. Chang의 저서

하지만 신대륙의 동아시아 기원설을 주장하는 연구자 중에서 제대로 신대륙의 고고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의욕만 앞섰는지, 무리하게 몇 가지 언어적 유사성을 주장하여 그 신빙성에 의심이 가게 하는 경우도 많다. 전 세계적인 고대 문화의 네트워크를 밝힐 수 있는 실마리를 어설프게 엮는 것은 오히려 연구에 장애가 된다. 궁극적으로 신대륙이라는 고대 문화 연구의 ‘미지의 땅’을 ‘무지의 땅’이 되게 하지 않으려면 선입견이 없는 신중한 연구가 필요하다.

뉴멕시코 앨버커키 암각화. 일부 학자는 한자와 닮았다고 주장하나 시베리아 및 극동지역 암각화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모티브임. 2015년 7월 9일 보도. 강인욱 제공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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