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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9 09:35 수정 : 2019.06.30 13:25

[토요판] 조기원의 100세 시대 일본
⑦ 죽음의 방식

집에서 숨 거둔 남편 간호 경험 바탕
‘죽음의 과정’ 알리는 간호사 출신 승려
“병원에서 최후 맞지 않는 선택도 있다”

대학병원 정년 뒤 왕진 시작한 의사
“입원 상태의 죽음, 고독사일지도”
‘다사사회’ 일본, 죽음의 방식 고민

일본은 ‘다사사회’에 접어들면서 죽음의 방식과 장소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일본 도쿄 마치다시에 있는 수목장 묘지 ‘벚꽃장’의 모습. ‘엔딩센터’ 제공.
“나무가 말라가듯이 자연스럽게 죽는 방법도 있어요. 병원에서 최후의 최후까지 링거를 맞아가면서 죽는 방식 외에도 다른 죽음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 에도가와구 커피숍에서 만난 다마오키 묘유(53)는 검은색 승려복을 입고 있었다. 간호사 출신 승려인 그는 연명 치료를 하지 않고 집에서 자연사하는 방법도 있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올해 초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서기>라는 책도 냈다.

그는 자신의 의료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이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을 책과 강연을 통한 설명한다. 그는 사람이 죽음을 향해 “착지 상태”에 들어갈 경우 보통 석 달 전부터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먼저 흔히 일어나는 현상은 내향성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지도 않고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려는 노력이 강해진다고 한다. 식욕도 없어진다. 숨지기 한 달 전에는 혈압과 심박 수가 불안정해진다. 2주 전에서 1주 전에는 가래가 많이 끓고, 24시간 전부터는 턱을 상하로 움직이면서 호흡을 하는 현상이 많이 일어난다.

그가 이런 세세한 설명을 하는 이유는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이 과거와 비교해서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는 경우가 많아서, 가족들이라고 해도 죽음의 과정을 세세하게 지켜보기 어렵다. 그는 “만일 누군가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고자 한다면 죽음의 기본적인 과정을 아는 게 가장 먼저다. 먹지 못한다든지 호흡 상태가 바뀌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다음 가족과 친척들에게 자신의 결심을 확실히 이야기하는 게 좋다. 친척 중에는 병원에 가는 게 좋다고 말하는 이가 반드시 있다. 그런 경우에 왜 집에 있으려 하는지를 말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연간 사망 및 출생 수 추이
암 치료 거부하고 집에서 죽은 남편

간호사였던 그는 원래 “환자의 죽음은 패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계기는 남편의 암 투병 때문이었다. 그의 남편은 57살 때 대장암이 발견돼 한 차례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그도 안심했다. 하지만 약 3년 뒤 암 재발이 의심돼 재수술을 받았다. 실제로 암은 재발해 있었다. 남편은 재수술 뒤 더 이상의 입원과 항암 치료를 받기를 거부했다. 그는 처음에는 항암 치료를 계속하자고 남편을 설득했으나 소용없었다. 남편은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사진가였는데 암 수술 뒤 취미로 식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적극적 암 치료 거부 뒤에는 식물을 찍고 그 사진을 정리하기에 몰두했다. 결국 그는 집에서 남편을 간호했고, 재수술 약 2년 뒤인 2011년 남편은 자신의 바람대로 집에서 숨을 거뒀다. 남편의 죽음 뒤 그는 승려가 됐다.

그는 남편과의 사별로 죽음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다고 했다. “죽음은 금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언젠가 죽게 돼 있기 때문에 죽음을 정면에서 마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죽음의 이미지가 부드러워졌다.” 의료계에 종사했지만 그도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입원 치료를 받지 않은 상태의 죽음은 남편의 경우 때 처음 봤다고 했다.

다마오키처럼 병원에서 연명 치료를 받다가 숨지는 대신에 집에서 숨을 거두는 방식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일본에서는 늘고 있다.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 모리 오가이의 손자이며 외과의사인 고보리 오우이치로(81)는 지난해 355명 방문 진료 체험을 바탕으로 한 책 <죽음을 살아간 사람들>을 펴냈다. 고보리는 65살 정년 때까지 대학병원과 국립의료기관에서 주로 근무했다. 정년 뒤 수도권인 사이타마현에 있는 호리노우치 병원에 부임했다. 호리노우치 병원 부임 몇 년 뒤 지인에게 부탁을 받고 거동할 수 없는 상태로 접어든 환자 2명에 대한 방문 진료, 이른바 ‘왕진’을 시작했다. 이후 담당하는 환자가 백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고보리는 <죽음을 살아간 사람들>에서 자신은 외과의사로서 정년 전 40년 근무 동안 환자의 치료와 생명 연장을 늘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고령으로 인한 노환인 경우에도 기본적인 생각은 같았다. 하지만 고령자를 방문 진료하게 된 뒤부터 이런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환자가 음식물이나 수분을 섭취하지 못하는 것은 노환으로 삼킬 힘이 없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병원에서 링거를 꽂아서 수분을 보충해도 한계에 다다른 환자의 심장과 폐에 부담을 준다”고 환자 가족들에게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로 101살 여성 환자의 죽음을 들었다. 노환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환자를 장남이 병원에 입원시켰고,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링거를 꽂아서 영양을 공급하고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 입원 뒤 한 달 정도는 가족들이 자주 찾아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들 발길이 뜸해졌다. 입원 10개월 뒤 야근을 하던 간호사가 심장박동을 나타내는 기계의 표시가 멈춘 것을 보고 환자의 죽음을 알았다. 그는 이 환자의 사례를 “입원 상태의 죽음이라는 이름 하의 고독사”일지도 모른다며 “환자가 맞아야 했을 바람직한 죽음은 가족과 주치의 등에 둘러싸여 있던 (입원) 10개월 전의 죽음이었다”고 적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일본에서 죽음의 방식에 대한 논의가 늘어난 배경에는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넘는 ‘다사(多死) 사회’ 현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136만9000명이 숨졌다. 출생자 92만1000명을 훨씬 넘어섰다. 지난해 한 해 1000명당 11명이 숨진 셈이다. 한국은 지난해 1000명당 5.8명이 숨졌다. 일본 연간 사망자 수는 2002년 98만2379명이었으며, 이듬해 100만명을 넘었다. 2005년을 기준으로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넘어섰다. 2038년에는 한해 약 170만명이 숨져 정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죽음을 접하는 상황이 늘면서 죽음의 방식과 장소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일본에서 사망 장소는 병원을 비롯한 각종 의료기관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최근에는 변화가 조금씩 일고 있다. 자택에서 사망한 경우가 2004년 12만7445명에서 2017년 17만7473명으로 늘어났다. 이는 일본 정부가 최근 고령자가 병원이 아닌 집에서 진료를 받는 ‘재택 의료’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한 영향으로 보인다. 정부의 정책 추진 배경에는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려는 의도도 있다.

집에서 죽음을 맞는 것과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것 중 어느 한쪽이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누구나 죽음은 피할 수 없고 어차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라는 점을 다마오키나 코보리 모두 강조한다. 다마오키는 “지금 사람들은 죽음을 타인에게 맡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병이 걸리면 의사가 고쳐주고 죽을 것 같으면 병원이 어떻게 해주겠지 하는 식으로 생각한다. 죽음도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대처할 수 있는데, 타인에게 맡긴다. 그런데 타인에게 맡기기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다마오키는 현재 죽음이 가까워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을 정리하는 작업을 돕는 ‘스피리추얼 케어’(spiritual care)에 종사하고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한 주에 한 차례 30분~1시간 정도 이야기를 들어준다. 일상적으로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죽음은 나도 무섭다.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일이지 않나. 그렇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결국은 그래서 지금을 어떻게 살아갈지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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