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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2 06:01 수정 : 2019.04.12 19:33

중국 현대문학 작가 다이허우잉(1938~1996)의 생전 모습. 출처 바이두

[책과 생각] 이현우의 언어의 경계에서

중국 현대문학 작가 다이허우잉(1938~1996)의 생전 모습. 출처 바이두

한국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동시대 중국 작가는 위화로 보이지만 중국 당대 문학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던 1990년대에는 단연 다이허우잉이었다. 1991년 신영복 선생의 번역으로 나온 <사람아 아, 사람아!>(1980)가 작가뿐 아니라 당대 중국 문학의 대표작으로 수용되어서다. 비단 중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이 작품에 대한 열독 현상을 낳은 것은 아니다.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역사의 상처와 그 치유과정을 담고 있는 이야기가 한국 독자에게도 강한 호소력을 가졌던 것은 남의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리라(누구보다도 역자인 신영복 선생이 이 작품을 그렇게 읽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는 <노르웨이의 숲>)도 그런 면에서는 같이 묶일 수 있다. 두 베스트셀러는 공통적으로 중년의 시점에서 젊은 시절의 경험과 상처를 되돌아보고 화해와 치유를 모색한다. 물론 차이도 간과할 수는 없는데 다이허우잉의 소설에는 작가적 체험이 훨씬 많이 반영되어 있고 더불어 정치적 이념에 냉소적인 하루키와는 달리 다이허우잉은 대단히 열정적이다.

중국 안후이 성의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집안의 7남매 가운데 넷째로 출생한 다이허우잉은 집안에서 최초로 학교에 들어간 딸이었고 대학졸업자였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로 재탄생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때문에 학생 시절부터 당과 사회주의에 대한 다이허우잉의 지지와 충성은 확고했고, 1957년 반우파 투쟁에서도 선두에서 활약했다. 휴머니즘을 주창했던 스승을 공개 비판하면서 “나는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더 좋아하는 것은 진리입니다!”라고 발언하여 박수갈채를 받은 경력도 있다.

그렇지만 1966년부터 불어닥친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다이허우잉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이 우파로 내몰려 비판받는 처지가 된다. 게다가 남편으로부터는 이혼 요구를 받는다. 자신이 열애하던 당과 의지하던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다이허우잉은 시련의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면서 문화대혁명은 종식되고 다이허우잉도 복권되어 대학에 자리 잡는다. 이제는 중년이 되어 지난 20년을 되돌아보게 된 그는 과거와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놀란다. 무엇을 겪은 것이고 이 경험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아 아, 사람아!>는 그 정산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다이허우잉의 변화와 깨달음은 11명의 인물이 저마다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형식을 고안하게 한다. 사회주의문학의 전범인 리얼리즘에 대한 도전이자 파격이다. 통상 리얼리즘에 견주어 부르주아계급의 예술기법이라고 비판받았지만 모더니즘 역시 예술적 진실을 추구한다고 다이허우잉은 옹호한다. 이 진실은 시점적 진실이고 저마다의 진실이며 복수의 진실이다. 각 인물이 가진 고유한 생각과 감정이 이러한 장치를 통해서 드러난다. 이를 통해서 다이허우잉은 인간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자 한다. 소위 휴머니즘의 발견이다. 한때 휴머니즘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이름을 얻은 그가 휴머니즘 문학의 기수로 변신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변신이 사회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정체성까지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작중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이란 책의 출간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데, 책의 핵심적인 주장은 다이허우잉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마르크스주의가 바로 휴머니즘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휴머니즘은 사회주의 체제에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통상적인 휴머니즘, 곧 부르주아적 휴머니즘에서는 소수의 자유와 개성만을 긍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서 다이허우잉은 상처를 치유하고 역사와 화해한다. 더불어서 사회주의자로 남는다. <사람아 아, 사람아!>는 문화대혁명을 비판하면서도 굳건한 사회주의자로 남을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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